통합복음서 23장 마지막 만찬과 고별 강화
음모
1 유월절이 이틀 앞이었다. 무교절도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 모였다.
3 그들이 어떻게 예수를 속임수로 잡아 죽일까 의논했다.
“명절에는 안 된다. 백성 중에 소동이 날까 두렵다.”
4 그 때 열둘 중 하나인 가룟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
5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물었다.
“내가 그를 당신들에게 넘기면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6 그들이 기뻐하여 은화 서른 개를 달아 주기로 했다. 유다가 허락했다. 그 때부터 무리가 없을 때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았다.
은화 서른 개 — 출애굽기 21:32에 따르면 노예 한 명의 값. 스가랴 11:12-13에서 목자가 받은 삯이기도 하다. 마태 27:9-10이 이 거래를 예레미야 예언의 성취로 인용하지만 실제 인용은 스가랴다. R.T. 프랜스(NICNT 마태복음 2007)와 마이클 노울즈(『예레미야 본문과 마태』 1993)는 마태가 예레미야 19장(피의 토기장이 골짜기)과 32장(밭 매입)을 스가랴 11:12-13의 은 30 모티프와 의도적으로 결합한 인용으로 해석한다.
다락방을 준비하다
7 무교절 첫날, 유월절 양을 잡는 날이었다.
8 예수가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며 말씀하셨다.
“가서 우리를 위해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라.”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십니까?”
9 예수가 답하셨다.
“성안에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진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 사람을 따라 들어가서 그 집 주인에게 말하여라.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때가 가까웠으니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킬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셨다.’
10 그가 자리를 마련한 큰 다락방을 보여줄 것이다. 거기서 준비하라.”
11 두 사람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나고 유월절을 준비했다.
물 동이를 진 남자 — 1세기 유대 사회에서 물 긷는 일은 거의 여성의 일이었다. 남자가 물 동이를 진 모습은 눈에 띄는 표시였다. 예수가 어떻게 그를 미리 아셨는지 본문은 말하지 않는다. 약속된 신호였을 가능성, 미리 안 표적이었을 가능성, 둘 다 본문은 가르지 않는다.
발 씻기심
12 저녁이 되었다. 예수가 열두 제자와 함께 자리에 앉으셨다. 자기가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13 마귀가 이미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넘겨주려는 생각을 집어넣었다.
14 예수가 아버지가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셨음을, 그리고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아셨다.
15 식사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가져다 허리에 두르셨다.
16 대야에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17 시몬 베드로 차례가 오자 베드로가 말했다.
“주님, 주님이 제 발을 씻기십니까?”
18 예수가 답하셨다.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한다.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19 베드로가 말했다.
“제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
20 예수가 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21 베드로가 말했다.
“주님,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주십시오.”
22 예수가 답하셨다.
“이미 목욕한 사람은 발 외에는 씻을 필요가 없다. 온몸이 깨끗하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는 아니다.”
23 자기를 넘겨줄 사람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다는 아니다”라고 하신 것이었다.
24 그들의 발을 다 씻기시고 겉옷을 다시 입으시고 자리에 앉으셨다.
25 “내가 너희에게 한 것을 알겠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님, 주님이라 부른다. 그것이 옳다. 내가 그렇기 때문이다.
26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 발을 씻겼다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야 한다.
27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도록 본을 보였다.
28 종이 주인보다 크지 않고, 보냄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않다.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다.”
세족식 — 1세기 유대 사회에서 발 씻기는 일은 가장 낮은 노예의 일이었다. 유대인 종은 면제되었고 이방인 노예의 의무였다. 자녀가 부모에게, 제자가 스승에게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 반대 — 스승이 제자에게 — 는 전례가 없었다. 요한복음에는 공관복음의 성찬 제정 기사가 없다. 그 자리에 이 세족식이 있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넘겨줄 것이다
29 식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예수가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넘겨줄 것이다.”
30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여 서로 보았다. 누구를 가리키는지 몰랐다. 한 사람씩 묻기 시작했다.
“주여, 저입니까?”
31 예수가 답하셨다.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은 자가 나를 넘겨줄 것이다.
32 인자는 자기에 관해 기록된 대로 가지만, 인자를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 화가 있다. 그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33 제자들 가운데 예수가 사랑하시는 한 제자가 예수의 품 가까이에 기대어 있었다.
34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누구에 관한 말씀인지 물어보라고 했다.
35 그 제자가 예수의 가슴 쪽으로 기대며 물었다.
“주님, 누구입니까?”
36 예수가 답하셨다.
“내가 빵 조각을 적셔서 주는 자다.”
빵 조각을 적셔서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에게 주셨다.
37 유다가 물었다.
“랍비여, 저입니까?”
“네가 말하였다.”
38 빵 조각을 받은 뒤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예수가 말씀하셨다.
“네가 하는 일을 빨리 하여라.”
39 식탁에 앉아 있던 자들 가운데 아무도 왜 그 말씀을 하셨는지 알지 못했다. 유다가 돈주머니를 맡고 있었으므로 어떤 이들은 명절에 필요한 것을 사라거나 가난한 자들에게 무언가 주라는 말씀인 줄 생각했다.
40 유다가 빵 조각을 받고 즉시 나갔다. 밤이었다.
“밤이었다” — 세 글자. 요한복음에서 빛과 어둠의 상징이 여기서 절정에 달한다. 1:5의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했다”의 거울상이다. 유다가 어둠으로 걸어 나간다.
이것은 내 몸이다
41 그들이 먹는 동안 예수가 빵을 가지시고 감사기도 후에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가져다 먹어라. 이것은 너희를 위해 주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42 식사 후에 잔을 드시고 감사기도 후에 그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너희 모두 이것을 마셔라. 이것은 죄를 용서하기 위해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나의 피, 새 언약의 피다.
43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이 포도나무 열매를 다시 마시지 않겠다.”
“이것은 내 몸이다(투토 에스틴 토 소마 무)” — 이 한 문장이 1천 년 교리 논쟁을 만들었다. (1) 실체 변화(transubstantiation): 9세기 파스카시우스 라드베르투스가 정식화하고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학대전』 III.q75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유성/실체 구별로 체계화.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와 1551년 트렌트 공의회에서 가톨릭 교의로 확정. (2) 공재설: 마르틴 루터가 『그리스도의 만찬에 관하여』(1528)에서 변호 — 빵과 함께(in, with, under) 그리스도가 실재한다. (3) 영적 임재설: 장 칼뱅이 『기독교 강요』 IV.17에서 종합 — 그리스도가 영적·실재적으로 임재한다. (4) 기념설: 1525년 취리히의 울리히 츠빙글리가 정식 주장 — 빵은 기념일 뿐이다. 1529년 마르부르크 회담에서 루터와 츠빙글리가 직접 충돌해 결렬되고 개신교 분열이 굳어졌다. 같은 본문, 네 해석.
만찬 날짜 — 공관복음(마태·마가·누가)은 이 만찬을 유월절 식사로 기록한다(니산 14일 저녁). 요한복음은 유월절 전날(니산 13일 저녁)로 기록한다(요한 13:1, 18:28, 19:14). 학자들의 해법이 갈린다. 조아킴 예레미아스의 『예수의 성찬 말씀』(1949)은 공관복음을 우선시하며 요한이 신학적으로 시간을 옮겼다고 본다. 아니 자우베르(Annie Jaubert, 1957)는 사해 사본의 두 달력 — 공식 달력과 쿰란 공동체의 달력 — 사이의 불일치로 설명한다(수요일 만찬, 금요일 십자가). 콜린 험프리스(Colin Humphreys, 2011)는 3일 압축 가설로 화요일 밤 만찬을 제안한다. 본문은 어느 해법도 강요하지 않는다.
누가 크냐
44 제자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큰 자냐는 다툼이 일어났다.
45 예수가 말씀하셨다.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 위에 군림하고, 권세를 부리는 자들은 은인이라 불린다.
46 너희는 그렇지 않다. 너희 중에 큰 자는 어린 자같이 되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같이 되어라.
4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가운데 있다.
4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이다. 내 아버지께서 내게 나라를 맡기신 것처럼 나도 너희에게 맡긴다.
49 그래서 너희가 내 나라에서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릴 것이다.”
닭이 울기 전에
50 “시몬아, 시몬아. 사탄이 너희를 밀처럼 까부르려고 요구하였다.
51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해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했다.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들을 굳게 하라.”
52 베드로가 답했다.
“주님, 주님과 함께라면 옥에도 가고 죽음에도 가겠습니다.”
53 예수가 답하셨다.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한다.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 할 것이다.”
54 베드로가 말했다.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모두 같이 말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55 예수가 말씀하셨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마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56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너희에게 말했을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해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
57 가서 너희를 위해 거처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겠다.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려는 것이다.
58 내가 가는 곳, 그 길을 너희가 안다.”
59 도마가 물었다.
“주님, 우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60 예수가 답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수 없다.
61 너희가 나를 알았다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고 보았다.”
62 빌립이 말했다.
“주님,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만족하겠습니다.”
63 예수가 답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도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하느냐.
64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심을 믿지 못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계신 아버지가 자기 일을 하신다.”
보혜사를 보내겠다
6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66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실 것이다 — 진리의 영이다.
67 세상은 그를 받지 못한다. 보지도,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안다. 그가 너희와 함께 거하시며 너희 안에 계실 것이다.
68 내가 너희를 고아로 두지 않겠다.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보혜사(παράκλητος, 파라클레토스) — 1세기 그리스어에서 법정에서 변호하는 자 또는 곁에 불려 와 위로하는 자를 가리켰다. 라틴어 advocatus가 같은 어원이다. 요한복음은 이 단어를 성령에게만 사용한다. 한국어 ‘보혜사’는 ‘돕는 자’에 가까운 의역. 변호자, 위로자, 권면자, 모든 의미가 한 단어 안에 있다.
내가 참 포도나무다
69 예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씀하셨다.
“일어나라. 가자.”
70 그들이 다락방을 나섰다. 가는 길에 예수가 계속 말씀하셨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시다.
71 내 안에 있어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는 다 잘라내신다. 열매 맺는 가지는 더 많이 맺게 하시려고 깨끗하게 하신다.
72 내가 너희에게 일러준 말씀으로 너희가 이미 깨끗하다.
73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그렇다.
74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면 그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75 “사람이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76 너희가 내가 명한 것을 행하면 너희는 내 친구다.
77 이제부터 나는 너희를 종이라 부르지 않겠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 불렀다. 내 아버지께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면
7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 알아라.
79 너희가 세상에 속했다면 세상이 자기 것을 사랑할 것이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고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했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
80 종이 주인보다 크지 않다. 사람들이 나를 박해했다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다.
81 내가 보혜사 곧 진리의 영을 너희에게 보내면 그가 나를 증언할 것이다.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니 너희도 증언한다.”
82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가지 않으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지 않는다. 내가 가면 그를 너희에게 보내겠다.
83 그가 와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할 것이다.
84 진리의 영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가 자기 마음대로 말하지 않고, 듣는 것을 말하며 장차 올 일을 너희에게 알리실 것이다.”
85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86 제자들 중 몇이 서로 말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이냐.”
87 예수가 그들이 묻고 싶어하는 것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울고 슬퍼할 것이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슬프겠으나 그 슬픔이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88 여인이 해산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한 사람이 세상에 났다는 기쁨에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않는다.
89 지금은 너희가 근심한다. 그러나 다시 너희를 보겠다.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누구도 빼앗지 못한다.
90 내가 세상에서 너희에게 환난을 당할 것을 일러둔다. 그러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91 예수가 이 말씀들을 마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향해 말씀하셨다.
“아버지여, 때가 왔습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셔서 아들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도록 해주십시오.
92 아버지가 아들에게 모든 육체에 대한 권한을 주셨으니, 아들이 아버지가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게 해주십시오.
93 영원한 생명은 이것입니다 — 오직 참되신 하나님인 아버지와, 아버지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94 나는 아버지가 내게 하도록 주신 일을 완성해서 이 땅에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했습니다.
95 아버지여, 세상이 있기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그 영광으로 이제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해주십시오.”
96 “나는 아버지가 세상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고, 그들이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97 거룩하신 아버지여, 아버지가 내게 주신 이름으로 그들을 지켜주십시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도록.
98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자로부터 지켜주시기를 구합니다.
99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소서.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100 아버지가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101 “내가 이 사람들만을 위해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말을 통해 나를 믿을 사람들을 위해서도 구합니다.
102 아버지여, 그들 모두가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처럼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세상이 아버지가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도록.
103 아버지여, 아버지가 내게 주신 사람들이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나를 사랑하셔서 내게 주신 내 영광을 그들이 보도록.
104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했지만 나는 알았습니다. 이 사람들도 아버지가 나를 보내신 것을 알았습니다.
105 나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렸고 앞으로도 알릴 것입니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도록.”
고별 강화 — 요한 13–17은 공관복음에 평행이 거의 없는 요한 고유 자료다. 마태·마가·누가는 만찬 후 곧장 겟세마네로 가지만, 요한은 다섯 장에 걸쳐 긴 작별 가르침을 보존한다. 17장은 신학자들이 ‘대제사장의 기도’라고 불러왔다 — 히브리서가 묘사하는 중재자 대제사장의 역할이 이 기도에서 실천된다. 기도가 열두 제자에서 “그들의 말을 통해 나를 믿을 사람들”로 확장된다 — 곧 2천 년 후의 독자.
출처 매핑
이 장은 마태 26:1-35, 마가 14:1-31, 누가 22:1-38, 요한 13–17을 통합했다. 음모와 유다의 결단은 마태 26:1-5, 14-16, 마가 14:1-2, 10-11, 누가 22:1-6, 요한 13:2 일부. 만찬 준비는 마태 26:17-19, 마가 14:12-16, 누가 22:7-13. 배신자 지목은 마태 26:20-25, 마가 14:17-21, 누가 22:14, 21-23, 요한 13:18-30. 발 씻기심은 요한 13:1-17 — 요한 고유. 성찬 제정은 마태 26:26-29, 마가 14:22-25, 누가 22:15-20에 평행이 있고, 가장 이른 보고는 고린도전서 11:23-26(AD 54년경) — 복음서들보다 앞선다. 자리 다툼은 누가 22:24-30 — 누가 고유. 베드로 부인 예고는 누가 22:31-34, 요한 13:36-38. 마태 26:31-35, 마가 14:27-31은 다락방을 떠난 후 감람산 길에서 일어난 일로 배치한다. 고별 강화는 요한 14–17 — 요한 고유. 요한복음에는 성찬 제정 기사가 빠져 있는 대신 6장에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한다”는 빵의 강화가 그 자리를 채운다. 이 통합본은 공관복음의 성찬 제정과 요한의 고별 강화를 시간 순서로 엮었다.
다음 장 — 만찬을 마친 일행이 감람산을 향해 걸어간다. 겟세마네 동산에 다다른다. 예수는 세 사람을 데리고 깊숙이 들어가 엎드린다. 동산 어귀에는 횃불을 든 무리가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