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복음서 22장 성전의 마지막 가르침과 종말 강화

누가 너에게 이 권세를 주었느냐

1 다음 날 예수가 다시 성전 뜰을 거니셨다. 백성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셨다.

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네가 무슨 권세로 이 일들을 행하느냐? 누가 너에게 이 권세를 주었느냐?”

3 예수가 대답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그것을 답하면 내 권세가 어디서 왔는지 말하겠다.

4 세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5 그들이 자기끼리 의논했다.

“하늘로부터라 하면 ‘왜 그를 믿지 않았느냐’라고 할 것이고,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우리를 돌로 칠 것이다. 모두가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기 때문이다.”

6 그래서 그들이 답했다.

“우리는 모르겠다.”

7 예수가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유대 성전의 권위 구조에서 누군가의 가르침이 정당한지 가리는 일은 산헤드린의 핵심 기능이었다. 가르치는 자에게 권세가 있느냐를 묻는 것은 곧 그가 산헤드린의 인준을 받았느냐는 질문이었다. 예수의 반문은 그 권위 구조 자체를 흔든다.


두 아들과 포도원 농부

8 예수가 비유 하나를 들려주셨다.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었다. 맏이에게 가서 말했다. ‘아들아,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여라.’ 맏이가 답했다. ‘안 가겠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뉘우치고 갔다.

9 둘째에게 가서 같은 말을 했다. ‘예, 가겠습니다.’ 그러나 가지 않았다.

10 두 아들 중 누가 아버지의 뜻을 행한 자냐?”

“맏이입니다.”

11 예수가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요한이 의의 길로 너희에게 왔으나 너희가 믿지 않았다. 세리들과 창녀들은 믿었다. 너희가 그것을 보고도 끝내 회개하지 않고 그를 믿지 않았다.”


12 다른 비유 하나를 또 말씀하셨다.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었다. 둘레에 울타리를 두르고 즙 짜는 틀을 파고 망대를 세웠다.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먼 길을 떠났다.

13 열매 거둘 때가 가까이 오자 주인이 종들을 보내 자기 몫을 받아오게 했다.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한 사람은 때리고 한 사람은 죽이고 한 사람은 돌로 쳤다.

14 주인이 다른 종들을 더 보냈다. 더 많이 보냈다. 그들도 같은 꼴을 당했다.

15 마지막으로 자기 아들을 보냈다. ‘내 아들은 존중하겠지.’

16 농부들이 아들을 보고 자기끼리 말했다. ‘이 자가 상속자다. 자, 그를 죽이자. 그러면 그의 유산이 우리 것이다.’ 그들이 그를 잡아 포도원 밖으로 끌어내 죽였다.

17 포도원 주인이 돌아오면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18 그들이 답했다.

“그 악한 자들을 무참히 멸하고, 포도원은 다른 농부들에게 줄 것입니다.”

19 예수가 말씀하셨다.

“너희가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지 못하였느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이것은 주께서 행하신 일이다.’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 나라가 너희에게서 빼앗겨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에게 주어질 것이다.”

21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가 자기들을 가리켜 비유를 들으신 줄 알고 잡고자 했다. 그러나 무리를 두려워했다.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포도원 비유 — 이사야 5:1-7의 포도원 노래를 직접 인용한 구조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좋은 포도가 아닌 들포도를 맺었다고 한탄했다. 예수는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농부들 — 곧 종교 지도자들 — 이 주인의 아들까지 죽인다. 듣는 자들이 자기 처지를 알아챘다. “우리를 가리킨 것이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22 그 때 바리새인들이 그를 말로 옭아매려고 의논했다. 헤롯당과 함께 제자 몇을 보냈다.

23 그들이 와서 말했다.

“선생님, 우리는 당신이 진실하시고 하나님의 길을 진리로 가르치시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으신다는 것을 압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24 그러니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25 예수가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위선자들아, 왜 나를 시험하느냐? 세금으로 내는 동전 하나를 내게 보여라.”

그들이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왔다.

26 예수가 물으셨다.

“이 형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

“가이사의 것입니다.”

27 예수가 말씀하셨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라.”

그들이 듣고 놀라 그를 떠나갔다.

데나리온 — 1세기 로마 은화. 한쪽 면에 황제 티베리우스(Tiberius · ㉸ 티베리오)의 얼굴과 “신적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티베리우스 가이사”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유대인에게 황제 형상이 새겨진 동전은 우상이었다. 예수의 답은 미묘한 균형이었다. 동전은 가이사가 발행한 것이니 돌려주라.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으니 하나님께 돌리라. 한 문장에 두 차원이 겹친다.


부활 논쟁

28 그 날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개인(Sadducees · ㉸ 사두카이)들이 와서 물었다.

“선생님, 모세가 기록하기를 어떤 사람이 자녀 없이 죽으면 그 형제가 그의 아내를 취해 형의 후사를 세우라 했습니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첫째가 아내를 얻고 자녀 없이 죽었습니다. 둘째도 셋째도 일곱째까지 다 그랬습니다.

30 마지막에 여인도 죽었습니다. 부활 때 그 여인은 일곱 중 누구의 아내가 됩니까? 일곱 다 그녀를 가졌으니까요.”

31 예수가 답하셨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다.

32 부활 때에는 사람들이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는다. 하늘의 천사들과 같다.

33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해서는 너희가 모세의 가시덤불 단락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다.

34 그분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 너희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다.”

사두개인 — 성전 사제 계급의 핵심. 모세 오경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부활·천사·영혼을 부정했다. 부활을 비웃기 위해 만든 일곱 형제 이야기를 예수가 출애굽기 3장으로 받아낸다. 사두개인이 권위로 인정하는 그 본문에서 부활을 끌어낸다.


첫째 되는 계명

35 한 율법 교사가 다가와 물었다.

“선생님,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가장 큽니까?”

36 예수가 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주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37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38 이 두 계명에 모든 율법과 선지자가 달려 있다.”

39 율법 교사가 말했다.

“선생님, 옳습니다. 그분이 한 분이시고 그 외에는 없다는 말씀이 진실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지각을 다하고 힘을 다해 그분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와 제사보다 낫습니다.”

40 예수가 그가 슬기롭게 답하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네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

이 후로는 누구도 감히 묻는 자가 없었다.

큰 계명의 결합 — 신명기 6:5(“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와 레위기 19:18(“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이 두 본문을 한 쌍으로 묶는 것은 1세기 유대 윤리 요약의 한 전통이었다. 랍비 힐렐(Hillel)이 한 이방인에게 “당신이 싫어하는 것을 이웃에게 행하지 말라. 이것이 토라 전부다”라고 답한 일화(바빌로니아 탈무드 샤바트 31a)와 평행한다. 예수의 새로움은 두 계명을 결합한 것 자체가 아니라, 둘이 떨어질 수 없다고 못 박은 것이다.


다윗의 자손

41 바리새인들이 모여 있을 때 예수가 그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다윗의 자손입니다.”

42 예수가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를 ‘주’라 부르느냐?

43 ‘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셨다.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라고 했다.

44 다윗이 그를 ‘주’라 불렀는데, 어떻게 그가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

45 누구도 한 마디 답하지 못했다. 그 날부터 더는 감히 묻는 자가 없었다.


일곱 화

46 예수가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따르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다.

47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들의 어깨에 지우고, 자기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48 그들이 행하는 일은 모두 사람에게 보이려는 것이다. 경문 띠를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잔치에서 윗자리, 회당에서 높은 자리를 좋아한다. 시장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랍비’라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49 “너희는 랍비라 불리지 마라. 너희 선생은 한 분이시고 너희는 다 형제다.

50 땅에 있는 누구도 너희 아버지라 부르지 마라. 너희 아버지는 한 분,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시다.”


51 “위선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사람들 앞에서 천국 문을 닫는다.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52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한 사람을 개종시키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닌다. 그러다 한 사람을 얻으면 너희 자신보다 두 배 더 지옥의 자식으로 만든다.

53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성전을 두고 맹세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성전의 금을 두고 맹세하면 지킬 의무가 있다’고 한다.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크냐?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만든 성전이냐?

54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율법의 더 중요한 것 — 정의, 자비, 신실 — 은 버렸다. 이것을 행하면서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했다.

55 눈먼 인도자들아, 모기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킨다.

56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잔과 접시 바깥은 깨끗이 닦지만 안은 강도와 방종으로 가득하다. 눈먼 바리새인아, 잔 안을 먼저 닦아라. 그래야 바깥도 깨끗해진다.

57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회칠한 무덤 같다.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안은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움으로 차 있다.

58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선지자들의 묘를 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민다. 그리고 말한다. ‘우리가 조상들의 시대에 살았다면 그들과 함께 선지자들의 피를 흘리지 않았을 것이다.’ 너희가 스스로 증언한다. 너희는 선지자들을 죽인 자들의 자식이다.”

일곱 화 — 마태 23장에 집중적으로 모인 예수의 가장 강한 책망. 누가는 11장에 짧게 분산해 두었다. 마가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마태가 23장 한 자리에 모은 것은 편집의 결과로 보인다(한스 콘첼만, 『누가의 신학』 1954 / W.D. 데이비스 & 데일 앨리슨 『마태복음 주석』 1988). 그러나 책망의 무게는 어느 복음서에서도 동일하다. 종교가 외면을 가꾸느라 내면을 잊었다는 고발이다. 회칠한 무덤 — 1세기 유대인은 무덤을 흰 회로 칠해 부정한 시신을 표시했다. 멀리서 보이도록. 예수는 그 표시를 위선의 상징으로 뒤집는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59 예수가 헌금함 맞은편에 앉아 사람들이 어떻게 돈을 넣는지 보고 계셨다. 부자들이 많이 넣었다.

60 한 가난한 과부가 와서 두 렙돈(lepton · ㉸ 렙톤)을 넣었다. 한 푼어치였다.

61 예수가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넣은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62 다른 사람들은 다 풍족한 데서 넣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자기 가난 가운데서 가진 모든 것 — 살림 전부 — 을 넣었다.”

렙돈 — 당시 유통된 가장 작은 동전. 한 데나리온의 1/128. 두 렙돈은 하루치 식량도 못 산다. 헌금함은 성전 여인의 뜰에 놓인 13개의 나팔 모양 통이었다. 부자가 큰 동전을 떨구면 소리가 컸다. 두 렙돈은 거의 소리도 나지 않았다. 예수가 그 소리 없는 동전을 보셨다.


성전이 무너질 것이다

63 예수가 성전을 떠나 가실 때 한 제자가 말했다.

“선생님, 보십시오. 이 돌들이 어떻습니까. 이 건물이 어떻습니까.”

64 예수가 답하셨다.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지 않을 것이다. 다 무너질 것이다.”

65 예수가 감람산에서 성전 맞은편에 앉으셨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따로 와서 물었다.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 일이 언제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 어떤 표징이 있겠습니까.”


66 예수가 답하셨다.

“누구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나다’라고 하며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다.

67 너희가 전쟁과 전쟁 소문을 들을 것이다. 놀라지 마라. 그런 일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끝은 아직 아니다.

68 민족이 민족을 대적해 일어나고 나라가 나라를 대적해 일어날 것이다.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은 산고의 시작이다.

69 너희를 잡아 환난에 넘기고 죽이며 모든 민족이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미워할 것이다.

7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넘어지고 서로 배반하며 미워할 것이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다.

71 불법이 많아져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72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도록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다. 그 후에야 끝이 올 것이다.”


멸망의 가증한 것

73 “예루살렘이 군대에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것이 황폐할 때가 가까운 줄 알아라.

74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 성안에 있는 자들은 떠나가고, 시골에 있는 자들은 성으로 들어가지 마라.

75 임신한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 그 날에 큰 환난이 임할 것이다. 칼날에 쓰러지고 모든 민족 가운데로 사로잡혀 갈 것이다.

76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에게 짓밟힐 것이다.

77 그 환난의 날들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이다.

78 그 때에 인자의 표징이 하늘에 나타날 것이다. 땅의 모든 족속이 가슴을 칠 것이다.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으로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79 그가 천사들을 큰 나팔 소리와 함께 보낼 것이다. 천사들이 그가 택한 자들을 사방에서, 하늘 끝에서 끝까지 모을 것이다.”

AD 70년 성전 파괴 — 예수가 이 말씀을 하신 약 40년 뒤, 로마 장군 티투스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쌌고 8월에 성전이 불탔다.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 6권에 그 광경이 자세히 적혀 있다. 학자들의 입장이 둘로 나뉜다 — 루돌프 불트만, 한스 콘첼만(1954)은 사건 후 예언(vaticinium ex eventu) 가설을 따른다. 누가 21:20의 “예루살렘이 군대에 에워싸이는 것” 같은 구체적 표현은 작성자가 사건을 본 뒤에 썼다는 증거라는 것이다(에른스트 헨헨, 『사도행전』 1956). 반면 F.F. 브루스(『예수의 말씀』 1983), N.T. 라이트(『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1996)는 예수가 1세기 묵시 언어의 흐름 안에서 진짜로 예언한 것으로 본다. 본문 자체는 어느 입장도 강요하지 않는다.


무화과나무의 비유

80 “무화과나무에서 한 가지 비유를 배워라.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을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안다.

81 그처럼 너희가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그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와 있는 줄 알아라.

82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나기까지 이 세대가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

83 천지는 사라질 것이지만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84 그러나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른다.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85 깨어 있어라. 그 때가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치 사람이 멀리 여행을 가면서 자기 종들에게 권한을 주고 각각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한 것과 같다.

86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집 주인이 언제 올지 — 저녁이든, 밤중이든, 닭 울 때든, 새벽이든 — 모르기 때문이다.

87 갑자기 와서 너희가 자고 있는 것을 발견하지 않도록.

88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열 처녀의 비유

89 “그 때 천국은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다섯은 미련했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90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졌으나 기름은 가지지 않았다. 슬기로운 자들은 등과 함께 그릇에 기름을 가졌다.

91 신랑이 늦게 오자 모두 졸려 잠이 들었다.

92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보라, 신랑이다. 나가서 맞아라.’

93 모든 처녀가 일어나 등을 손질했다. 미련한 자들이 슬기로운 자들에게 말했다. ‘너희 기름을 좀 나눠다오. 우리 등이 꺼져간다.’

94 슬기로운 자들이 답했다. ‘안 된다. 너희와 우리가 다 부족할까 두렵다. 가게에 가서 사 와라.’

95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된 자들이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이 닫혔다.

96 나중에 다른 처녀들이 와서 외쳤다.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십시오.’

97 그가 답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98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그 날과 그 시를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달란트의 비유

99 “어떤 사람이 먼 길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겼다. 한 사람에게 다섯 달란트(talent · ㉸ 탈렌트), 한 사람에게 두 달란트, 한 사람에게 한 달란트를 각각 그 능력대로 주고 떠났다.

100 다섯 달란트 받은 자가 곧 가서 일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다. 두 달란트 받은 자도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다.

101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자기 주인의 돈을 묻어두었다.

102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셈을 했다.

103 다섯 달란트 받은 자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말했다. ‘주인님, 다섯 달란트를 제게 맡기셨는데 제가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104 주인이 말했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많은 것을 네게 맡기겠다. 네 주인의 기쁨에 들어와라.’

105 두 달란트 받은 자에게도 같이 했다.

106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와서 말했다. ‘주인님, 저는 당신이 굳은 사람이어서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쳐놓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습니다. 두려워서 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 당신의 것이 있습니다.’

107 주인이 답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쳐놓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환전상에게 맡겼어야 한다. 그러면 내가 와서 내 것을 이자와 함께 받았을 것이다.

10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길 것이다.

109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둠에 내쫓아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양과 염소

110 “인자가 자기 영광 안에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

111 모든 민족이 그 앞에 모일 것이다. 그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 그들을 갈라놓을 것이다.

112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둘 것이다.

113 그 때에 왕이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은 자들아, 와서 세상이 창조될 때부터 너희를 위해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아라.

114 내가 주릴 때 너희가 내게 먹을 것을 주었다.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다.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다. 헐벗었을 때 옷 입혔다. 병들었을 때 돌보았다. 옥에 갇혔을 때 와 보았다.’

115 그 때에 의인들이 답할 것이다. ‘주여, 우리가 언제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먹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했습니까. 언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습니까. 언제 병드신 것을 보고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갔습니까.’

116 왕이 답할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117 그리고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라. 마귀와 그의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118 내가 주릴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지 않았다.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지 않았다. 헐벗었을 때 옷 입히지 않았다. 병들고 옥에 갇혔을 때 돌보지 않았다.’

119 그들이 답할 것이다. ‘주여, 언제 주께서 주리시고 목마르시고 나그네 되시고 헐벗으시고 병드시고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우리가 돕지 않았습니까.’

120 왕이 답할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121 그들은 영원한 형벌에 들어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것이다.”

“지극히 작은 자(엘라키스토이)” — 이 표현이 누구를 가리키는가에 대한 학자들의 입장이 갈린다. 대중적 해석: 가난하고 굶주리고 옥에 갇힌 모든 사람. 이것이 일반 그리스도인의 상식적 독법이다. 선교적 해석: 클라이브 루이스 이래로 데일 카슨(『마태복음 주석』 1984), R.T. 프랜스(NICNT 마태복음 2007)는 “내 형제 중에”라는 한정사를 근거로 그리스도의 제자들 — 복음을 들고 박해받는 사역자들 — 로 본다. 이 입장에서는 양과 염소의 갈림은 박해받는 제자를 어떻게 대했느냐의 문제가 된다. 본문 자체는 둘을 명확히 가르지 않는다.


출처 매핑

이 장은 마태 21:23-22:46, 마가 11:27-12:44, 누가 20:1-21:4의 성전 권위 논쟁을 통합했다. 권위 질문은 세 복음서가 거의 동일하게 보고한다. 두 아들 비유는 마태 21:28-32 — 마태 고유. 포도원 농부 비유는 마태 21:33-46, 마가 12:1-12, 누가 20:9-19. 가이사 세금은 마태 22:15-22, 마가 12:13-17, 누가 20:20-26. 부활 논쟁은 마태 22:23-33, 마가 12:18-27, 누가 20:27-40. 큰 계명은 마태 22:34-40, 마가 12:28-34. 마가의 보고가 가장 우호적이다 — 율법 교사가 동의하고 예수가 그를 칭찬한다. 마태와 누가는 짧게 줄였다. 다윗의 자손 질문은 마태 22:41-46, 마가 12:35-37, 누가 20:41-44. 일곱 화는 마태 23장에 집중되어 있다. 마가 12:38-40, 누가 20:45-47에는 짧은 평행 구절만 있다. 가난한 과부는 마가 12:41-44, 누가 21:1-4 — 마태에 없다. 감람산 강화는 마태 24-25, 마가 13, 누가 21을 통합했다. 마태가 가장 길다 — 열 처녀, 달란트, 양과 염소 비유는 모두 마태 고유다. 마가 13은 가장 짧고 묵시적 종말 강조가 강하다. 누가 21은 예루살렘 함락 묘사가 가장 구체적이다. “예루살렘이 군대에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누가 21:20)은 마태·마가의 “멸망의 가증한 것”보다 직접적이다.

다음 장 — 유다가 어둠 속으로 빠져나가 대제사장들에게 흥정을 건다. 다락방의 식탁에서 발 씻기심이 시작되고, 마지막 만찬의 빵과 잔이 들어 올려진다. 그리고 고별 강화의 긴 말씀이 흐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