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복음서 14장 헤롯의 두려움과 5천 명

분봉왕의 양심

1 그 무렵, 분봉왕 헤롯(Herod · ㉸ 헤로데) 안티파스(Antipas)가 예수의 소문을 들었다.

2 그가 신하들에게 말했다.

“이는 세례 요한이다. 그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났다. 그래서 그에게서 이런 능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3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다”라 했다. 어떤 사람들은 “옛 선지자들 중 하나가 일어났다”라 했다.

4 헤롯이 듣고 거듭 말했다.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

헤롯 안티파스(기원전 4년 ~ 기원후 39년)는 헤롯 대왕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죽은 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결정으로 갈릴리와 페레아의 분봉왕(tetrarch)이 되었다. ‘분봉왕’은 왕 아래 등급의 지방 통치자다. 그는 아버지의 잔혹한 정치 감각을 물려받았으되 격은 떨어졌다. 예수는 한 차례 그를 “여우”라 불렀다(누가 13:32). 그가 자기 형제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빼앗아 결혼한 사건이 1세기 유대 사회를 흔들었다.


헤로디아의 음모

5 헤롯이 자기 형제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Herodias)를 취한 일 때문에, 사람을 보내 요한을 잡아 옥에 묶었다.

6 요한이 헤롯에게 거듭 말했기 때문이었다.

“형제의 아내를 취하는 것은 합법적이지 않습니다.”

7 헤로디아는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려 했다. 그러나 할 수 없었다.

8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여 보호했기 때문이다. 요한의 말을 들을 때 매우 당황하면서도 기꺼이 들었다.

9 마침내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주요 인사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

10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와 춤을 추었다. 헤롯과 함께 앉은 사람들이 모두 기뻐했다.

11 왕이 그 소녀에게 말했다.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구하라. 내가 주리라.”

12 그리고 맹세했다.

“내 나라의 절반이라도 네게 주겠다.”

13 그 소녀가 나가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무엇을 구할까요?”

14 어머니가 말했다.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거라.”

15 소녀가 곧 왕에게 들어가 말했다.

“세례 요한의 머리를 지금 당장 쟁반에 담아 주기를 원합니다.”

16 왕이 심히 근심했다. 그러나 맹세한 것과 함께 앉은 자들 때문에 거절하기 싫었다.

17 왕이 즉시 시위병 하나를 보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그가 가서 옥에서 요한을 목 베었다.

18 그 머리를 쟁반에 담아 소녀에게 주었고, 소녀가 그것을 어머니에게 주었다.

19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신을 가져다 무덤에 두었다. 그리고 예수께 가서 알렸다.

마케루스(Machaerus) 요새 — 사해 동쪽 페레아 지역의 절벽 위에 있던 헤롯 가문의 요새다. 요한이 이곳에서 처형되었다는 것은 1세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37/38 ~ 100경)의 『유대 고대사』 18권이 명시한다. 1968년부터 1981년까지 헝가리 발굴팀이 이 요새를 발굴해 헤롯 궁전 구조와 지하 감옥, 그리고 잔치가 벌어졌을 만한 큰 홀의 흔적을 확인했다. 본문의 잔치와 옥이 한 건물 안에 있었다는 마가의 묘사(6:21-28)와 들어맞는다.

요세푸스의 보고는 마가·마태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요세푸스는 헤롯이 요한을 처형한 이유를 정치적인 것으로 적는다 — 요한의 영향력이 너무 커져서 반란의 조짐이 보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복음서들은 도덕적 이유 — 헤로디아 결혼 비판 — 를 주된 이유로 든다. 학자 존 마이어(『변두리의 유대인』 2권 1994)는 두 보고가 모순이 아니라 한 사건의 다른 측면이라고 본다. 정치적 위협과 도덕적 비판이 같은 사람에게 겹쳤다는 것이다. E.P. 샌더스(『예수의 역사적 모습』 1993)도 같은 입장이다.

헤로디아의 딸 이름 — 본문은 그녀를 이름 없이 적는다. 요세푸스(『유대 고대사』 18.5)가 그녀를 살로메(Salome)라 적었다. 예술 전통에서 ‘살로메의 춤’은 이 본문의 형상이 되었다. 1893년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 1905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가 모두 이 사건을 무대로 삼았다.


광야로 물러나심

20 예수가 이 소식을 들으시고, 또 사도들이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므로,

21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시 쉬어라.”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식사할 겨를도 없었기 때문이다.

22 그들이 배를 타고 한적한 곳, 벳새다(Bethsaida · ㉸ 벳사이다) 근방으로 따로 갔다.

23 무리가 그것을 보고 알아채 모든 고을로부터 육지를 달려 그들보다 먼저 거기에 이르렀다.

24 예수가 배에서 내려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 같았기 때문이다.

25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셨다. 또 그들 중 병든 자들을 고치셨다.

예수가 광야로 물러난 두 가지 이유가 본문에 겹쳐 있다.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한 슬픔, 그리고 사도들의 사역 보고를 듣고 잠시 쉬게 하려는 의도. 마태(14:13)는 첫째에, 마가(6:31)는 둘째에 더 무게를 둔다. 광야는 슬픔의 자리이자 동시에 회복의 자리였다.


다섯 개의 빵, 두 마리의 물고기

26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을 때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말씀드렸다.

“여기는 빈 들이고 시간도 이미 많이 지났습니다.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27 예수가 빌립을 시험하려고 그에게 물으셨다.

“우리가 어디서 빵을 사다가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28 자기 하실 일을 친히 아셨으면서 물으신 것이었다.

29 빌립이 대답했다.

“이백 데나리온의 빵으로도 각 사람에게 조금씩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30 제자 중 하나,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말했다.

31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 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 많은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32 예수가 말씀하셨다.

“사람들을 앉히라.”

그곳에 잔디가 많았다. 사람들이 앉으니 남자만 약 오천 명이었다.

33 사람들이 무리무리 앉았다. 백 명씩, 오십 명씩 앉았다.

34 예수가 다섯 빵과 두 물고기를 가지시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다.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다.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셨다.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받았다.

35 다 먹고 배불렀다.

36 예수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남은 조각을 거두어 버리지 않게 하라.”

37 그들이 거두니, 보리 빵 다섯 개에서 사람들이 먹고 남은 조각을 거둔 것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다.

38 사람들이 예수가 행하신 표적을 보고 말했다.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다.”

39 예수가 그들이 와서 자기를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물러가셨다.

5천 명을 먹이신 사건은 4복음서 모두에 기록된 유일한 기적이다(마태 14:13-21, 마가 6:30-44, 누가 9:10-17, 요한 6:1-15). 다른 기적은 셋 또는 둘의 복음서에만 나타난다. 이 사건의 보존이 4중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초기 교회에서 이 사건이 차지한 중심성을 보여 준다. 기록의 편차도 있다. 빌립과 안드레의 대화는 요한만 보존한다. 풀이 푸르렀다는 디테일은 마가만 적는다(6:39). 사람들이 무리무리 앉았다는 표현도 마가의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를 임금 삼으려 했다는 마지막 장면은 요한 고유의 보고다.

떼어 주었다(클라사스) — 떡을 떼어 나누는 이 표현은 마지막 만찬과 엠마오 도상(누가 24:30, 24:35)의 언어다. 초대 교회는 이 사건을 성찬례와 연결해 읽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그리고 열두 바구니. 숫자 사이의 비례가 무한히 벌어진다.

구약의 평행 — 열왕기하 4:42-44에서 엘리사가 보리 떡 스무 개와 갓 익은 곡식 한 자루로 백 명을 먹였다. 남은 것이 있었다. 예수의 이 기적은 엘리사 이야기의 결을 가지면서도 규모와 풍성함에서 그것을 한참 넘어선다. 학자들은 이 평행이 우연이 아니라 의도된 메아리로 본다. 모르나 후커(『마가복음 주석』 1991), R.T. 프랜스(NICNT 2002)가 이 견해의 표준 변호다.

요한복음의 신학화 — 요한은 이 사건 직후 6장 후반부에 긴 강화를 둔다 —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요 6:3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다”(요 6:55). 공관복음에는 이 강화가 없다. 같은 사건을 두고 4복음서가 어떻게 다르게 보존하고 해석하는지 보여 주는 명료한 사례다. 마태·마가·누가는 사건의 사실 보고에 머물고, 요한은 거기서 신학적 의미를 길게 풀어낸다.


물 위로 걸으심

40 저물 때, 예수가 제자들을 강권하여 배에 태워 먼저 건너편으로 보내셨다. 그동안 무리를 보내셨다.

41 무리를 보내신 후 기도하러 혼자 산에 올라가셨다. 저녁이 되었을 때 그 자리에 혼자 계셨다.

42 배는 이미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인해 고난을 겪고 있었다.

43 밤 사경쯤에 예수가 바다 위로 걸어 그들에게 오셨다. 지나쳐 가려 하셨다.

44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걷는 것을 보고 유령이라 생각했다. 두려워 소리를 질렀다.

45 예수가 즉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46 베드로가 대답했다.

“주여, 만약 당신이라면 나더러 물 위로 걸어 당신에게 오라고 명하십시오.”

47 “오라.”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 예수께로 갔다.

48 그러나 바람을 보고 두려워 빠져들기 시작했다.

“주여, 구원하소서!”

49 예수가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잡으시며 말씀하셨다.

“믿음이 적은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50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51 배 안에 있던 자들이 예수께 절하며 말했다.

“진실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52 그들이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렀다.

53 그곳 사람들이 예수를 알아보고 그 주변 온 지역에 알려 모든 병든 자들을 그에게 데려왔다.

54 그들이 그의 옷 술만이라도 만지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만진 자들은 다 나았다.

‘지나쳐 가려 하셨다’ — 마가만 보존한 기이한 표현이다(6:48). 출애굽기 33:19, 33:22에서 하나님이 모세 앞을 지나가셨다. 열왕기상 19:11에서 하나님이 엘리야 앞을 지나가셨다. 신현(神顯, theophany)의 언어다. 마가는 독자가 그 메아리를 듣기를 기대한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은 일화는 마태에만 있다(14:28-31). 마가에도 요한에도 누가에도 없다. 학자들이 M자료(마태 고유)로 분류하는 자료다.

이 장은 마태 14:1-12, 마가 6:14-29(세례 요한의 죽음), 마태 14:13-21, 마가 6:30-44, 누가 9:10-17, 요한 6:1-15(5천 명), 마태 14:22-36, 마가 6:45-56(물 위 걸으심)을 통합했다. 4복음서가 한 사건을 어떻게 다른 결로 보존했는지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는 단락이다. 마가의 디테일(푸른 풀, 무리무리 앉음, 지나쳐 가려 하심), 마태의 베드로 일화, 누가의 벳새다 지명, 요한의 빌립과 안드레와 보리 빵을 가진 아이, 그리고 임금 삼으려는 무리 — 각 복음서의 결을 모았다.

다음 장 — 광야의 빵을 먹고도 깨닫지 못한 무리가 다시 예수를 찾는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그 말에 많은 제자가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