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9장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어둠 속의 빛
1 그러나 고통받던 자에게 어둠이 없을 것이다. 전에는 그가 스불론(Zebulun · ㉸ 즈불룬)의 땅과 납달리(Naphtali · ㉸ 납탈리)의 땅을 낮추셨으나 나중에는 바닷길, 요단 강 저편, 이방인의 갈릴리(Galilee · ㉸ 갈릴래아)를 영화롭게 하셨다.
2 어둠 속에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늘진 땅에 살던 자들에게 빛이 비쳤다.
마태복음 4:14-16이 이 구절을 직접 인용한다. 예수가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할 때, 마태는 이사야의 이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스불론과 납달리는 갈릴리 북부 지역이다. 이사야 시대에 아시리아의 티글랏-빌레셋 3세가 기원전 732년경 이 지역을 속주로 만들었다 — “낮추셨다”의 역사적 배경이다.
3 주께서 나라를 크게 하시고 기쁨을 크게 하셨다. 그들이 추수 때처럼 기뻐하며 노략물을 나눌 때처럼 즐거워한다. 당신 앞에서.
4 이는 그들에게 짐 지운 멍에와 어깨의 막대와 억압자의 지팡이를 미디안(Midian)의 날처럼 꺾으셨기 때문이다.
5 전쟁 중에 신는 모든 신발과 피에 젖어 뒹구는 군복이 불에 태울 연료가 될 것이다.
한 아이
6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이 우리에게 주어졌음이라. 통치가 그의 어깨에 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이러하다.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
7 그 통치와 평강의 증가가 끝이 없을 것이다. 다윗의 보좌와 그 나라에서 그것이 공의와 의로 세워지고 지금부터 영원까지 유지될 것이다. 만군의 야훼의 열심이 이것을 이루실 것이다.
이 구절은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1741)” 2부 12번 합창의 본문이다. “For unto us a Child is born, unto us a Son is given.” 기독교 전통은 이 구절을 메시아 예언으로 읽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적용한다. 히브리어 원문의 이름들은 사실 히스기야 왕 같은 이상적 왕에 대한 즉위 찬가일 수 있다. 고대 근동에서 왕의 즉위 때 신적 칭호를 부여하는 관습이 있었다. 두 독서 — 당대의 왕에 대한 즉위 찬가, 그리고 종말론적 메시아에 대한 예언 — 가 이 구절을 두고 오랫동안 공존해 왔다.
북이스라엘을 향한 심판
8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셨다. 그것이 이스라엘 위에 임했다.
9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주민이 교만하고 자랑하는 마음으로 알 것이다.
10 “벽돌이 무너졌지만 우리가 다듬은 돌로 세울 것이다. 뽕나무가 베였지만 우리가 백향목으로 대체할 것이다.”
11 그러므로 야훼께서 르신의 대적을 높이시고 그의 원수들을 자극하셨다.
12 동쪽의 아람과 서쪽의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입을 벌려 먹을 것이다. 이 모든 것 가운데서도 그의 진노가 돌이켜지지 않고 그의 손이 여전히 펼쳐져 있다.
13 백성이 자기를 치신 이에게로 돌아오지 않고 만군의 야훼를 구하지 않는다.
14 그러므로 야훼께서 하루 만에 이스라엘의 머리와 꼬리, 종려나무 가지와 갈대를 끊으셨다.
15 장로와 존귀한 자는 머리다. 거짓을 가르치는 예언자는 꼬리다.
16 이 백성을 인도하는 자들이 그들을 잘못 이끌고 인도함을 받는 자들이 멸망 당한다.
17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의 소년들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이 모두 위선자요 악을 행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입이 어리석음을 말한다. 이 모든 것 가운데서도 그의 진노가 돌이켜지지 않고 그의 손이 여전히 펼쳐져 있다.
꺼지지 않는 불
18 악이 불처럼 타올라 찔레와 가시나무를 삼키고 숲의 덤불을 불태운다. 연기 기둥들이 소용돌이친다.
19 만군의 야훼의 진노로 땅이 불타고 백성은 불에 타는 연료다. 아무도 자기 형제를 아끼지 않는다.
20 오른쪽에서 베어 먹어도 굶주리고 왼쪽에서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다. 그들이 각각 자기 팔의 살을 먹는다.
21 므낫세가 에브라임을 먹고 에브라임이 므낫세를 먹는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 유다에 대항한다. 이 모든 것 가운데서도 그의 진노가 돌이켜지지 않고 그의 손이 여전히 펼쳐져 있다.
“그의 진노가 돌이켜지지 않고 그의 손이 여전히 펼쳐져 있다” — 이 후렴구가 9:12, 9:17, 9:21, 10:4에 반복된다. 연속적 심판 단락의 구분선이다. 반복이 누적될수록 그 무게가 쌓인다. 그러나 이 후렴구 직전에 항상 백성이 돌아오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심판은 돌이킴의 거부에 뒤따른다.
다음 장 — 야훼의 진노의 막대기, 아시리아. 그러나 막대기도 심판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