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8장 술 취한 자들의 면류관
에브라임에게 화 있으리라
1 화 있으리라, 에브라임의 술 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이여.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있는 화려한 아름다움이여, 포도주에 압도된 자들에게.
2 보라, 주께서 강하고 거센 자를 두고 계신다. 쏟아지는 우박 폭풍처럼, 무너뜨리는 폭풍처럼, 온 땅을 범람하는 홍수 같은 폭풍처럼, 그가 힘으로 쳐서 땅에 떨어뜨린다.
3 에브라임의 술 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로 짓밟힐 것이다.
4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의 화려한 아름다움이 무화과 철이 오기 전에 첫 열매처럼 될 것이다. 보는 자가 보자마자 손에 집어 삼킬 것이다.
“에브라임의 술 취한 자들의 면류관” — 에브라임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중심 지파 이름으로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는 데 쓰였다. 수도 사마리아는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워진 도시였다. BC 722년 앗시리아의 사르곤 2세가 사마리아를 무너뜨리기 전에 쓰인 신탁이다.
의로운 면류관
5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 남은 자들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실 것이다.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다.
6 그리고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는 공의의 영이, 성문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힘이 되실 것이다.
7 그러나 이들도 포도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린다. 독주로 말미암아 기우뚱거린다. 제사장과 예언자도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포도주에 취해 혼미하며, 독주로 말미암아 기우뚱거리고, 환상을 볼 때 비틀거리며, 재판할 때 비뚤어진다.
8 모든 상이 토사물로 가득하여 더럽다. 깨끗한 곳이 없다.
사제와 예언자도 취해 있다. 지도층 전체의 도덕적 마비를 이사야는 이렇게 묘사한다. 옳고 그름을 분별해야 할 자들이 가장 깊이 취해 있다.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려는가
9 그가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려는가? 누구에게 메시지를 설명하려는가? 젖 뗀 자들에게냐? 어미 품에서 막 떠난 자들에게냐?
10 “명령에 명령, 명령에 명령. 규칙에 규칙, 규칙에 규칙.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11 그래서 더듬는 입술과 다른 언어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12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안식이다. 피곤한 자에게 안식을 주어라. 이것이 쉬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들으려 하지 않았다.
13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에게 명령에 명령, 명령에 명령, 규칙에 규칙, 규칙에 규칙,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이 될 것이다. 그들이 뒤로 가서 넘어지게 하고, 부러지게 하며, 올무에 걸려 사로잡히게 하기 위해.
9-13절은 백성이 예언자의 말을 어린아이 취급했던 반응을 보여준다. “명령에 명령(צַו לָצָו — 차브 라차브)“은 아마 이사야를 조롱하는 소리를 흉내 낸 것이다. 히브리 원문은 반복되는 짧은 음절로 어린아이 말투처럼 들린다. 하나님은 그 말투 그대로 그들에게 돌려주신다 — 이해 불가한 앗시리아 언어를. 바울은 고린도전서 14:21에서 이 구절을 방언의 표적적 성격을 설명할 때 인용한다.
거짓 피난처
14 그러므로 이 백성을 다스리는 조롱하는 자들아, 예루살렘에 있는 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15 “우리가 죽음과 언약을 맺었다. 사망과 협정을 체결했다. 넘치는 재앙이 지나갈 때 우리를 덮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거짓을 피난처로 삼았고, 속임을 숨는 곳으로 삼았다.”
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시온에 한 돌을 놓는다. 시험받는 돌, 귀하고 견고한 모퉁이 돌. 믿는 자는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믿는 자는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 히브리어 ‘야히쉬(יָחִישׁ)‘는 당황하여 도망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바울은 로마서 9:33, 10:11에서 이 구절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근거로 인용한다. 베드로전서 2:6도 같은 구절을 이어받는다. 기독교 전통에서 이 ‘귀한 모퉁이 돌’은 그리스도의 예표로 읽혀 왔다.
17 “내가 공의를 줄자로, 의를 다림줄로 삼을 것이다.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쓸어버릴 것이다. 물이 숨는 곳을 덮칠 것이다.
18 죽음과의 언약이 취소될 것이다. 사망과의 협정이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넘치는 재앙이 지나갈 때 너희는 그것에 밟힐 것이다.”
농부의 지혜
19 그것이 지나갈 때마다 너희를 취할 것이다. 아침마다, 낮마다, 밤마다. 그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은 공포뿐이다.
20 침대가 너무 짧아 몸을 뻗을 수 없고, 담요가 너무 좁아 몸을 덮을 수 없다.
21 여호와께서 브라심(Perazim — 다윗이 블레셋을 깨뜨린 곳) 산에서처럼 일어나실 것이다. 기브온(Gibeon) 골짜기에서처럼 진노하실 것이다. 당신의 일을 하시기 위해 — 이상한 일을. 당신의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 낯선 사역을.
22 그러므로 이제 조롱하지 마라. 너희의 사슬이 더 단단해지지 않도록. 주 만군의 여호와로부터 나는 들었다. 온 땅에 대한 멸망을 결정하셨다고.
23 귀를 기울이고 내 음성을 들어라. 주의를 기울이고 내 말을 들어라.
24 농부가 씨앗을 심으려고 날마다 밭을 갈기만 하는가? 계속 갈고 씨앗을 뿌리기만 하는가?
25 그가 땅의 표면을 평평하게 하면 소회향(dill)과 대회향(cummin)을 뿌리지 않는가? 밀(wheat)을 심고 보리(barley)와 호밀(spelt)을 그 경계에 심지 않는가?
26 그의 하나님이 그를 올바르게 지도하신다. 그에게 지식을 주신다.
27 소회향은 도리깨로 타작하지 않는다. 대회향 위로 수레 바퀴를 굴리지 않는다. 소회향은 막대기로, 대회향은 지팡이로 친다.
28 빵 곡식은 부서뜨려야 한다. 그가 계속 타작하지는 않는다. 수레 바퀴를 굴리고 말들로 밟지만, 그는 그것을 완전히 부수지는 않는다.
29 이것도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가 경이로운 조언을 하시며, 위대한 지혜를 주신다.
농부의 비유는 이사야가 직접 삽입한 지혜 교훈이다. 농부는 밀과 보리를 심을 때 각각 다른 방식으로 타작한다. 지나치게 두드리면 곡식이 망가진다. 하나님의 심판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을 완전히 부수려는 것이 아니라 알곡을 분리하기 위한 것이다. 파괴가 목적이 아니라 정제가 목적이다.
다음 장 — 예루살렘이 ‘아리엘’로 불린다. 제단의 화덕, 하나님의 도시. 이 백성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가까이하지만 마음은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