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2장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리
첫 번째 종의 노래
1 “보라, 내가 붙드는 내 종을. 내 마음이 기뻐하는 내가 선택한 자를. 내가 그 위에 내 영을 두었다. 그가 민족들에게 공의를 가져올 것이다.
2 그가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는다. 그 소리를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 않는다.
3 상한 갈대를 꺾지 않을 것이다.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을 것이다. 그가 진실로 공의를 가져올 것이다.
4 그가 쇠하지도 낙심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가 땅에 공의를 세울 때까지. 섬들이 그의 가르침을 기다린다.”
이 네 구절이 ‘종의 노래’ 첫 번째다. 이사야서에 네 편이 있다(42:1-9, 49:1-13, 50:4-11, 52:13-53:12). 이 종이 누구인지를 놓고 유대교와 기독교 해석이 갈려 왔다.
유대교 전통은 종을 이스라엘 민족으로, 또는 선지자 이사야 자신으로 본다. 고난받는 이스라엘이 민족들에게 공의의 길을 보여준다는 해석이다.
기독교 전통은 종을 예수 그리스도로 읽는다. 마태복음 12:17-21은 이 구절 전체를 인용하며 예수의 치유 사역에 적용한다. 요한복음 1:29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과 이어진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다” — 이미 부러지기 시작한 것, 이미 꺼져가는 것을 더 꺾거나 더 끄지 않는다. 완전히 기능하지 못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 종의 특징이다. 강한 자가 아니라 약한 자와 함께한다.
창조주의 선언
5 하나님 여호와, 하늘들을 창조하고 펼치신 분, 땅과 그 소산들을 펼치신 분, 거기 사는 백성에게 숨을 주신 분, 그 위를 걷는 자들에게 영을 주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다. 내가 네 손을 잡을 것이다. 내가 너를 지킬 것이다. 내가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민족들의 빛으로 세울 것이다.
7 눈 먼 눈들을 열기 위해. 옥에서 포로를 끌어내기 위해. 어둠의 집에서 감옥에 앉은 자를 끌어내기 위해.
8 나는 여호와다. 이것이 내 이름이다. 내 영광을 다른 이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내 찬양을 조각한 우상들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9 보라, 이전 것들이 왔다. 새 것들을 내가 선포한다. 그것들이 싹트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한다.”
새 노래를 불러라
10 여호와께 새 노래를 불러라. 땅 끝에서 그의 찬양을. 바다로 내려가는 자들아, 그 안에 가득한 것들아, 섬들아, 그 주민들아.
11 광야와 그 안의 성읍들이 목소리를 높여라. 게달(Kedar — 아라비아 유목 부족)이 사는 마을들이. 셀라(Sela — 에돔의 바위 도시, 훗날의 페트라)의 주민들이 노래하라. 산들의 꼭대기에서 즐겁게 소리쳐라.
12 그들이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라. 섬들에서 그의 찬양을 선포하라.
13 여호와께서 용사처럼 나가신다. 전사처럼 그의 열정을 불러일으키신다. 외치고, 고함치신다. 그의 원수들을 이기신다.
오래 침묵했다, 이제 울부짖겠다
14 “나는 오래 침묵하고 잠잠했다. 억제했다. 산모처럼 울부짖을 것이다. 헐떡이고 숨을 몰아쉴 것이다.
15 산들과 언덕들을 황폐하게 만들 것이다. 그것들의 모든 식물을 말리겠다. 강들을 섬들로 만들겠다. 못들을 말리겠다.
16 눈 먼 자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에서 인도하겠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경로로 이끌겠다. 어둠을 그들 앞에서 빛으로 만들겠다. 구부러진 곳을 곧게 하겠다. 이것들을 내가 그들에게 행하겠다. 버리지 않겠다.
17 그러나 조각한 우상들을 신뢰하는 자들, 주조한 것들에게 ‘당신들이 우리의 신들이다’라고 말하는 자들은 뒤로 물러나 크게 부끄러워할 것이다.”
듣지도 못하는 종
18 귀먹은 자들아, 들어라. 눈 먼 자들아, 보기 위해 바라보라.
19 내 종처럼 눈 먼 자가 누가 있느냐? 내가 보내는 내 전령처럼 귀먹은 자가 누가 있느냐? 나와 화평한 자처럼 눈 먼 자가 누가 있느냐? 여호와의 종처럼 눈 먼 자가 누가 있느냐?
20 너는 많은 것을 보았지만 주의하지 않는다. 귀는 열렸지만 듣지 않는다.
21 여호와는 그의 의 때문에 기뻐하셨다. 율법을 크고 영화롭게 하시기를.
22 그러나 이것은 약탈당하고 빼앗긴 백성이다. 그들이 다 구덩이에 올무가 되어 있고, 감옥 집에 숨겨져 있다. 약탈물이 되었으나 건지는 자가 없다. 빼앗겼으나 “돌려보내라”고 말하는 자가 없다.
23 너희 중 이것에 귀를 기울일 자가 있느냐? 이후 것들을 들으려고 주의를 기울일 자가 있느냐?
24 약탈물이 되도록 야곱을 준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약탈자들에게 준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냐? 우리가 그분께 죄를 지었다. 그들이 그의 길에서 걸으려 하지 않았다. 그의 율법에 순종하지 않았다.
25 그가 불타는 진노를 그들에게 쏟아부었다. 전쟁의 강력함을. 그것이 그들 주위를 불태웠지만 그들이 알지 못했다. 그것이 그들을 불살랐지만 그들이 마음에 두지 않았다.
42장에서 이상한 긴장이 있다. 앞부분의 종(1-9절)은 완전히 헌신된, 눈 먼 자를 보게 하는 자다. 뒷부분의 종(18-25절)은 스스로 눈 멀고 귀 먹어 있는 이스라엘이다. 이 두 ‘종’이 같은 히브리어 단어를 쓴다. 이스라엘은 부름받은 종이지만 아직 그 부름에 합당하게 살지 못한다. 이 긴장이 이사야 42-53장을 끌고 간다.
다음 장 —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구속했다. 내가 너를 이름으로 불렀다. 너는 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