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3장 찔린 자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가 주 앞에서 자라기를 마른 땅에서 나온 연한 순 같이 했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다.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

3 그가 멸시를 받아 사람들이 그를 외면했다. 슬픔의 사람, 고통을 익히 아는 자. 마치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는 자 같아서 멸시를 받았다. 우리가 그를 귀히 여기지 않았다.

53장 — 구약에서 신약이 가장 많이 인용한 본문이다. 사도행전 8장에서 에티오피아 내시가 마차 위에서 이 본문을 읽고 있었고, 빌립이 달려가 “이것이 누구에 대한 말씀이냐”고 묻는다. 내시가 묻는다. “이것이 선지자 자신에 대한 것이냐, 다른 누군가에 대한 것이냐.”

해석은 노선이 갈린다. 타르굼 이사야(아람어 의역본, 늦어도 5세기 정착)는 53장 시작부에 “보라, 내 종 메시아”라는 표현을 명시적으로 넣어 메시아 해석을 채택한다. 16세기 사페드의 랍비 모셰 알셰크(Moshe Alshich) 도 “현자들이 이 본문을 메시아에게 적용한다는 데 만장일치였다”라고 주석한다. 반면 11세기 라쉬(Rashi) 는 종을 이스라엘 민족 전체로 풀이했고, 이 집단적 해석이 중세 이후 유대교 주류가 됐다. 1QIsaa(쿰란 대(大)이사야 두루마리, BC 2세기)는 11절 본문에 “빛을 보고”라는 표현을 추가하는데, 70인역과도 일치하여 부활 신앙적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기독교 전통은 사도행전 8장 이래 예수에게 직접 적용해 왔다.


우리 죄 때문에

4 그러나 실로 그가 우리의 질고를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했다. 우리는 생각했다.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당한다고.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다. 그가 상한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한 징계가 그 위에 있었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다.

6 우리는 모두 양같이 길을 잃었다. 각자 자기 길로 갔다. 여호와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

“찔린 것은 우리의 죄 때문” — 히브리어 ‘할랄(חָלַל)‘은 꿰뚫다, 찌르다는 뜻이다. 5절의 평행 구조: “우리의 죄 때문 — 우리의 죄악 때문 — 우리의 평화를 위해 — 우리가 나음을 받았다.” 네 번 ‘우리’가 나온다. 5절은 고통의 원인과 방향을 한꺼번에 진술한다. 신약에서 베드로전서 2:24가 이 구절을 예수의 십자가에 적용한다.


도살장으로 가는 양

7 그가 괴롭힘을 당했고, 그가 고통 속에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처럼 그의 입을 열지 않았다.

8 그가 억압과 심판으로 끌려갔다. 그 세대 사람들 중에 누가 생각하겠느냐. 그가 살아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끊어진 것을. 내 백성의 죄 때문에 그가 맞았다는 것을.

9 그가 악인들과 함께 무덤을 받았고,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다. 그가 폭력을 행하지 않았고, 그의 입에 속임이 없었는데.

“그 세대 사람들 중에 누가 생각하겠느냐” — 히브리어 원문은 해석이 어려운 구절이다. 새번역은 “그가 살아 있는 사람의 세계에서 끊어졌다”로 읽는다. 고난받는 자의 고독이 핵심이다. 아무도 그를 위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여호와의 뜻

10 그러나 그를 상하게 하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었다. 그가 그를 병들게 하셨다. 그의 영혼이 속죄제물을 드리게 하면, 그가 자손을 볼 것이고, 그의 날을 길게 할 것이다. 여호와의 뜻이 그의 손에서 형통하리라.

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를 보고 만족할 것이다. 내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겠다. 그들의 죄악을 그가 짊어지겠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큰 자들과 함께 분깃을 주며, 강한 자들과 함께 탈취물을 나누게 하리라.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사망에 부어주었기 때문이다. 범죄자들과 함께 세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들을 위해 중재하였기 때문이다.

마지막 절 — “범죄자들을 위해 중재하였다”는 히브리어 ‘야프기아(יַפְגִּיעַ)‘다. ‘달려가 중재하다, 간청하다’는 뜻이다. 누가복음 23:34의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와 맞닿는 장면이다. 이사야는 고난받는 종의 마지막 행위가 가해자들을 위한 중재라고 말한다.

53장의 울림 — 사해사본 1QIsaa(BC 약 125년)에 53장 전문이 그대로 들어 있다. 마소라 본문과 거의 일치한다. 예수보다 100여 년 앞선 시점에 본문이 이미 굳어져 있었다는 물증이다. 우연인지, 예언인지 — 그것은 읽는 자가 결정한다.

다음 장 — 잉태하지 못했던 여인의 노래. 자녀 없는 자에게 더 많은 자녀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