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6장 내가 누구를 보내리요
웃시야 왕이 죽던 해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나는 주께서 높고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심을 보았다. 그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 찼다.
웃시야 왕이 죽은 해는 기원전 740년경으로 추산된다. 웃시야는 52년을 통치한 유다의 강력한 왕이었다. 그의 죽음은 한 시대의 끝이었다. 정치적 안정이 흔들리는 그 순간, 이사야는 성전에서 다른 왕을 본다 — 옷자락만으로도 성전을 가득 채우는 왕.
스랍들의 노래
2 스랍들이 그 위에 서 있었다. 각각 여섯 날개가 있는데 그 둘로는 자기 얼굴을 가리고 그 둘로는 자기 발을 가리고 그 둘로는 날았다.
3 서로 불러 말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야훼여.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하도다.”
“거룩하다” 셋의 반복 — 히브리어에서 셋의 반복(삼중 반복, 트리사기온)은 최상급 강조다. 후대 기독교 예전에서 이것은 “상투스(Sanctus)“라고 불리며 미사와 예배의 중심 송영이 되었다. 스랍(שְׂרָפִים — 세라핌)은 “불타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날개 여섯 중 둘로 얼굴을 가리는 것은 야훼의 임재 앞에서의 극도의 경외를 보여준다. 신도 그 얼굴을 가린다.
4 부르는 자의 소리에 의해 문지방의 터가 흔들렸다. 성전이 연기로 가득 찼다.
”화로다, 나여”
5 그 때 내가 말했다. “화로다, 나여. 망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건만 내 눈이 왕, 만군의 야훼를 보았기 때문이다.”
6 그 때 스랍 하나가 내게 날아왔다. 그 손에 불집게로 제단에서 집은 불타는 숯이 있었다.
7 그것으로 내 입에 대고 말했다. “보라, 이것이 네 입술에 닿았다. 네 죄악이 사하여졌고 네 죄가 속하여졌다.”
정화의 순서 — 이사야는 야훼를 보는 즉시 자신의 부정함을 고백한다. 정화는 그 다음에 온다. 이 순서가 중요하다. 신성한 임재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식하는 것이 먼저, 정화가 그 뒤를 따른다. 불타는 숯으로 입술을 태우는 것은 고통스러운 정화다. 말하는 자를 먼저 정결하게 해야 말이 신뢰를 얻는다.
소명
8 내가 주의 음성을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내리요? 우리를 위하여 누가 갈 것이냐?” 그 때에 내가 말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9 그가 말씀하셨다. “가서 이 백성에게 말하여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너희가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할 것이다.’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고 그들의 귀를 무겁게 하고 그들의 눈을 감게 하여라.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아서서 낫게 되지 않도록.”
이 구절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난해한 구절 중 하나다. 예언자에게 주어진 임무가 듣지 못하게,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니. 이것은 결과의 언어다 — 예언의 거부가 장기화될 때 그것이 강화된다는 뜻으로 읽는다. 마태복음 13:14-15, 마가복음 4:12, 요한복음 12:40에서 예수가 이 구절을 인용하며 자신을 거부하는 군중에게 적용한다. 사도행전 28:26-27에서 바울도 이방인에게 복음으로 전환하는 이유로 이 구절을 든다. 이사야 6:9-10은 신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이사야 본문이다.
”언제까지입니까?”
11 그 때 내가 물었다. “주여, 언제까지입니까?”
그가 말씀하셨다. “성읍들이 황폐하여 사람이 없고 집들에 사람이 없고 그 땅이 완전히 황무지가 될 때까지다.
12 야훼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시고 그 땅 가운데 황폐한 곳이 많게 하실 때까지다.
13 거기에 아직 십분의 일이 있을지라도 그것도 다시 불살라질 것이다. 상수리나무나 참나무가 베임을 당해도 그루터기는 남는 것처럼 거룩한 씨가 그 그루터기다.”
“거룩한 씨가 그루터기” — 이사야 소명 이야기의 결말이 여기 있다. 심판이 완전한 것처럼 들리지만, 그루터기가 남는다. 그 그루터기에서 새 생명이 돋는다. 이사야 11장의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한 싹”이 이 이미지를 이어받는다. 황폐함이 마지막 말이 아니다. 그루터기가 마지막 말이다.
다음 장 — 아하스 왕에게 임마누엘 표적이 주어진다. 아시리아-에브라임 연합의 침공 위협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