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4장 노아·다니엘·욥도 자기만 구원할 것

우상을 마음에 품은 자들

1 이스라엘 장로 몇 사람이 내게 와서 내 앞에 앉았다.

2 야훼의 말씀이 내게 임했다.

3 “사람아, 이 사람들은 자기 우상들을 마음속에 들여놓고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세워 두었다. 내가 과연 그들의 물음에 응답하겠느냐?

4 그러므로 그들에게 말하여라. 주 야훼가 이렇게 말한다고. 이스라엘 족속 중 자기 우상들을 마음속에 들여놓고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세우고서 예언자에게 오는 자마다 나 야훼가 그를 위해 내가 직접 응답하겠다. 그의 많은 우상들대로.

5 이는 내가 이스라엘 족속의 마음을 잡으려 함이니 그들이 자기 우상들로 인하여 다 나를 떠났음이라.”

“우상을 마음속에 들여놓고” — 에스겔은 이것을 마음의 문제로 진단한다. 가나안 신상을 문자 그대로 집에 모시지 않아도 된다. 마음 안에 들여놓으면 이미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 이 개념은 마음의 내적 상태를 종교의 핵심으로 보는 에스겔 신학의 특징이다. 36장의 “새 마음”과 “새 영”의 약속이 이 진단에서 시작된다.


예언자도 덫에 걸린다

6 “그러므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여라. 주 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돌아와라. 너희 우상들에게서 돌아서고 너희 모든 가증한 것에서 얼굴을 돌려라.

7 이스라엘 족속 중 누구든지 또는 이스라엘에 거류하는 이방인 중 누구든지 나를 떠나서 자기 우상들을 마음속에 들여놓고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세우고 예언자에게 가서 나에게 물으면 나 야훼가 친히 그에게 응답하겠다.

8 내가 그를 향하여 내 낯을 세우겠다. 그를 표적과 속담거리로 삼고 내 백성 가운데서 끊어버리겠다. 그제야 너희는 내가 야훼임을 알 것이다.

9 예언자가 꾀임을 받아 어떤 말을 하면 그를 꾀인 것은 나 야훼다. 내가 그 예언자를 향하여 내 손을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를 멸하리라.

10 그들이 함께 자기 죄악을 짊어질 것이다. 묻는 자의 죄악과 예언자의 죄악이 같을 것이다.”

“예언자가 꾀임을 받으면 나 야훼가 그를 꾀인 것” — 이 구절은 신학적으로 까다롭다. 야훼가 거짓 예언을 조장한다는 뜻이 아니다. 고대 히브리어는 ‘허락하다’와 ‘행하다’를 동일한 능동 동사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우상을 섬기는 자가 원하는 것을 원하도록 내버려두심 — 심판의 한 형태다. 열왕기상 22장에서 미가야 선지자가 본 환상과 같은 신학적 논리다.


노아·다니엘·욥 세 사람

11 “이스라엘 족속이 다시는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다시는 자기 죄악으로 더럽히지 않게 하고 그들이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게 하려 함이다. 주 야훼의 말씀이다.”

12 야훼의 말씀이 내게 임했다.

13 “사람아, 한 땅이 나를 대항하여 범죄할 때 내가 내 손을 그 위에 펴서 그것의 양식 의뢰를 끊고 기근을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가운데서 끊는다고 하면

14 거기에 비록 노아(Noah)다니엘(Daniel)욥(Job)이 있어도 그들은 자기 의로움으로 자기 생명만 건질 것이다. 주 야훼의 말씀이다.”

노아·다니엘·욥 — 구약에서 의인의 상징으로 꼽히는 세 인물이다. 그런데 여기서 지목된 “다니엘”이 누구인가는 학계에서 논란이 있다. 에스겔서는 기원전 593–571년에 기록되었다. 다니엘서의 다니엘은 에스겔과 거의 동시대 인물이지만, 에스겔이 그를 노아·욥과 나란히 오랜 전통의 의인으로 언급하는 것은 어색하다. 1929년 시리아 라스 샴라(Ras Shamra — 고대 우가릿)에서 발굴된 기원전 14세기 우가릿 서사시에는 ‘단엘(Dan’el)‘이라는 의로운 왕이 등장한다. 그는 고아와 과부를 보살피는 정의로운 통치자로 묘사된다. 많은 학자들은 에스겔 14장의 ‘다니엘’이 성경의 다니엘이 아니라 고대 근동에 잘 알려진 이 신화적 의인 단엘을 가리킨다고 본다. 고유명사 철자도 히브리어 원문에서 에스겔의 ‘다니엘(דָּנִאֵל)‘과 다니엘서의 ‘다니엘(דָּנִיֵּאל)‘이 약간 다르다는 점도 이 논의의 근거가 된다.

15 “혹 내가 사나운 짐승들을 그 땅에 통과하게 하여 그 땅을 황폐하게 하고 그것이 그 짐승들로 인하여 황폐하여 사람이 지나가지 못하게 한다면

16 비록 그 세 사람이 거기에 있어도 주 야훼가 살아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기 생명만 건지겠고 자녀들은 건지지 못하리라. 그 땅은 황폐하게 될 것이다.

17 혹 내가 칼을 그 땅에 가져다가 ‘칼아, 그 땅을 통과하라’ 하여 사람과 짐승을 그 땅에서 끊는다면

18 비록 그 세 사람이 거기에 있어도 주 야훼가 살아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기 생명만 건지겠고 자녀들은 건지지 못하리라.

19 혹 내가 그 땅에 전염병을 내리고 내 분노로 그것에 피를 쏟아 사람과 짐승을 거기서 끊는다면

20 비록 노아와 다니엘과 욥이 거기에 있어도 주 야훼가 살아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기 의로움으로 자기 생명만 건지겠다.”

네 가지 심판 — 기근, 사나운 짐승, 칼, 전염병. 이 네 가지는 레위기 26장과 요한계시록 6장의 “네 기사(騎士)” 심판과 평행한다. 에스겔은 이것을 하나씩, 반복적으로, 리듬감 있게 전개한다. 반복 자체가 돌이킬 수 없다는 강조다. 의인 세 명을 반복해서 등장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의인의 존재조차 집단 심판을 막을 수 없다. 개인의 의는 개인만 구한다.


예루살렘을 향한 네 가지 심판

21 “주 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예루살렘에 내 네 가지 혹독한 심판을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전염병을 내릴 때는 어떠하겠느냐? 이것으로 사람과 짐승을 거기서 끊으려 함이다.

22 그럼에도 거기서 살아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다. 끌려 나오는 자녀들 — 아들과 딸. 보라, 그들이 너희에게 나아오겠고 너희가 그들의 행동과 행실을 보면 내가 예루살렘에 내린 재앙에 대하여 내가 행한 모든 것에 대하여 너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다.

23 그들이 자기 행동과 행실로 너희를 위로할 것이다. 그제야 너희는 내가 예루살렘에 행한 모든 것이 이유 없이 행한 것이 아님을 알 것이다. 주 야훼의 말씀이다.”

다음 장 — 이스라엘이 포도나무에 비유된다. 열매도 없고 가구나 기둥으로도 쓸 수 없는, 오직 불쏘시개로만 쓰이는 포도나무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