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37장 마른 뼈들아, 살아라

골짜기의 환상

1 야훼의 손이 내 위에 임했다. 야훼의 영이 나를 이끌어 내고 한 골짜기 가운데 두었다. 그 골짜기에는 뼈가 가득했다.

2 그가 나를 그 뼈들 사이를 지나가게 하셨다. 보니 그 골짜기에 뼈가 심히 많았고 심히 말랐다.

“심히 말랐다” — 헬라어 칠십인역(셉투아긴타)은 여기에 “매우 마른(ξηρά σφόδρα)“을 쓴다. 생명의 기척이 전혀 없는 상태다. 사람이 죽으면 살이 먼저 썩고 뼈가 남는다. 그 뼈들도 말라 뒤틀리고 흩어져 있다. 에스겔이 본 것은 전쟁터에 버려진 이스라엘의 패배 — 예루살렘 함락(기원전 587년) 이후 바벨론으로 끌려간 포로 공동체의 자화상이다. 그들 스스로는 “우리의 뼈가 말랐다, 우리의 소망이 끊어졌다”(11절)고 탄식한다.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3 그가 내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내가 대답했다.

“주 야훼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주께서 아시나이다” — 이것은 회피가 아니라 신앙의 응답이다.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불신앙이고,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이다. 에스겔은 그 사이의 유일하게 정직한 자리에 선다. 야훼에게 돌리는 것 — 불가능의 판단을 인간이 내리지 않는 것 — 이것이 예언자적 태도다.

4 그가 내게 말씀하셨다.

“이 뼈들에게 대언하여라. 말하여라 — 마른 뼈들아, 야훼의 말씀을 들어라.

5 주 야훼가 이 뼈들에게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생기를 불어넣겠다. 너희가 살 것이다.

6 내가 너희에게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겠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생기를 불어넣겠다. 너희가 살 것이다. 그 때 너희가 내가 야훼임을 알 것이다.”


뼈들이 움직이다

7 내가 명령받은 대로 대언했다. 내가 대언할 때 소리가 났다. 보니 떨리는 소리가 났고 뼈들이 서로 가까이 오고 있었다. 뼈가 제 뼈에 맞닿았다.

소리(קוֹל — 콜)와 진동(רַעַשׁ — 라아쉬) — 창조의 언어다. 야훼가 말씀하실 때 혼돈이 질서가 되고, 죽음이 생명의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에스겔의 대언은 주술이 아니다. 야훼의 말씀을 전달하는 관(管)이다. 말씀이 뼈를 제자리로 데려간다.

8 내가 보니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그 위를 덮었다. 그러나 그 안에 생기는 없었다.

9 그가 내게 말씀하셨다.

“생기에게 대언하여라. 사람의 아들아, 대언하여라. 생기에게 말하여라 — 주 야훼가 말한다. 생기야, 사방에서 와서 이 죽임을 당한 자들에게 불어서 그들이 살게 하여라.”

10 내가 명령받은 대로 대언했다.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갔다. 그들이 살아나서 발로 서니 심히 큰 군대였다.

창조의 반향 — 창세기 2:7, 야훼가 흙으로 사람을 빚고 그 코에 생기(נִשְׁמַת חַיִּים — 니쉬마트 하이임)를 불어넣었다. 에스겔 37장의 언어는 창조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되풀이한다. 파멸은 창조의 역순이다. 회복은 창조의 재연이다. 이 군대는 새 창조다.

흑인 영가 「Dem Bones」 — 1928년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곡가 제임스 웰던 존슨(James Weldon Johnson)의 형 로저나스 존슨(Rosamond Johnson)이 이 본문을 바탕으로 만든 영가다. “발뼈가 발목뼈에 연결되고…” 노예제와 해방의 역사 속에서 에스겔 37장은 절망한 공동체의 부활 노래가 되었다. 흑인 영가는 이 본문을 개인의 부활이 아니라 민족 전체의 부활로 읽었다 — 에스겔 자신의 의도와 일치한다.


해석 — 이스라엘의 부활

11 그가 내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다. 그들이 말하기를 — ‘우리의 뼈가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며 우리는 끊어졌다’고 한다.

12 그러므로 대언하여라. 그들에게 말하여라 — 주 야훼가 말한다.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를 거기서 올라오게 하겠다.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

13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를 거기서 올라오게 할 때 너희가 내가 야훼임을 알 것이다.

14 내가 내 영을 너희 속에 두겠다. 너희가 살 것이다. 내가 너희를 너희 땅에 두겠다. 그 때 너희가 알 것이다. 나 야훼가 말했으며 나 야훼가 행한 것을.”

야훼의 말씀이다.

37장의 환상은 개인 부활론(몸의 부활)에 대한 언급이 아니다 — 적어도 에스겔의 첫 의도에서는. 11절이 직접 해석을 준다: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다.” 민족 공동체의 회복이 주제다. 그러나 유대교 묵시 문학(다니엘 12장)과 기독교 신학이 이 본문을 개인 부활의 근거로도 확장한다. 본문 자체는 두 독법을 모두 지지할 구조를 갖고 있다.


두 막대기 — 하나의 나라

15 야훼의 말씀이 내게 임했다.

16 “사람의 아들아, 너는 막대기 하나를 집어서 ‘유다(Judah)와 그와 함께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라고 써라.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집어서 ‘요셉(Joseph)의 막대기, 곧 에브라임(Ephraim · ㉸ 에프라임)과 이스라엘 온 족속을 위해’라고 써라.

17 그것들이 하나가 되도록 서로 잇고 네 손에 하나가 되게 하여라.”

18 네 백성이 네게 물을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19 그들에게 말하여라. 주 야훼가 말한다. 내가 요셉의 손에 있는 막대기, 곧 에브라임과 그와 함께한 이스라엘 지파들을 가져다가 유다의 막대기와 합쳐서 하나의 막대기로 만들겠다. 그들이 내 손에서 하나가 될 것이다.

20 그 막대기들이 — 네가 쓴 것들이 — 그들이 보는 앞에서 네 손에 있을 것이다.

두 왕국 분열 — 솔로몬 사후 기원전 930년경, 이스라엘은 유다(남)와 이스라엘(북)로 갈라졌다. 북왕국은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 멸망하며 흩어졌고 “잃어버린 열 지파”가 되었다.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 시절 그 두 조각이 다시 하나가 되는 환상을 본다. 모르몬교(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이 두 막대기를 성경과 모르몬경으로 해석한다. 정통 유대교와 기독교는 이를 통일 메시아 왕국의 예언으로 읽는다.

21 그들에게 말하여라. 주 야훼가 말한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이 간 이방 나라들에서 가져오겠다. 사방에서 모아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겠다.

22 이스라엘 산들 위에서 내가 그들을 한 나라로 만들겠다. 한 왕이 그들 모두의 왕이 될 것이다. 그들이 두 나라가 되지 않을 것이고 두 왕국으로 나뉘지 않을 것이다.

23 그들이 우상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가증한 일들로도, 그들의 모든 범죄로도. 내가 그들을 그 모든 죄에서 구원하겠다. 그들을 정결하게 하겠다. 그들이 내 백성이 될 것이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24 내 종 다윗(David)이 그들의 왕이 될 것이다.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을 것이다. 그들이 내 법도를 따라 행하고 내 율례를 지키고 행할 것이다.

25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그들의 조상이 살던 땅에 그들이 살 것이다. 그들과 그들의 자손과 그들 자손의 자손이 영원히 거기 살 것이다.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왕이 될 것이다.

26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우겠다. 영원한 언약이 될 것이다. 내가 그들을 세우고 번성하게 하겠다. 내 성소를 영원히 그들 가운데 두겠다.

27 내 처소가 그들 위에 있겠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28 이방 나라들이 알 것이다. 내가 나의 성소를 이스라엘 가운데 영원히 둘 때 나 야훼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자임을.”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될 것이다”(24절) — 다윗 왕은 기원전 970년경에 죽었다. 에스겔이 미래의 다윗을 말할 때 그것은 다윗 왕조의 메시아 왕을 가리키는 문학적 표현이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메시아 언어의 근거가 여기에 있다. 기독교는 이 왕을 예수로, 유대교는 아직 오지 않은 메시아로 읽는다.


다음 장 — 곡과 마곡, 북방 먼 땅에서 오는 마지막 적의 침공이 예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