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장 반복된 배신의 역사

장로들이 묻다

1 제칠 년 다섯째 달 십일에 이스라엘 장로들 몇이 야훼께 물으러 와서 내 앞에 앉았다.

2 야훼의 말씀이 내게 임했다.

3 “사람아,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말하여라. 주 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나에게 물으러 왔느냐? 주 야훼가 살아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너희에게 응답하지 않겠다.

4 너희가 그들을 심판하겠느냐? 사람아, 그들을 심판하겠느냐? 그들에게 그들 조상들의 가증한 일들을 알게 하여라.”

“제칠 년 다섯째 달 십일” — 기원전 591년이다. 에스겔이 바빌로니아에서 포로 생활을 한 지 7년째다.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약 5년 전이다. 장로들이 야훼의 말씀을 물으러 왔지만, 야훼는 대답하기를 거부하신다. 먼저 역사를 돌아보게 하신다.


이집트에서의 배신

5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여라. 주 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스라엘을 택하는 날에 야곱 집안의 자손들에게 내 손을 들어 맹세하고 이집트 땅에서 그들에게 나를 알게 하여 내 손을 들어 말했다. 나는 야훼, 너희 하나님이다.

6 그 날에 내가 이집트 땅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어 내가 그들을 위해 정탐한 땅 —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모든 땅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내 손을 들어 그들에게 맹세하였다.

7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말했다. 각 사람은 자기 눈의 가증한 것들을 던져버리라. 이집트의 우상들로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 나는 야훼, 너희 하나님이다.

8 그러나 그들이 내게 반역하고 내게 귀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각 사람이 자기 눈의 가증한 것들을 던져버리지 않고 이집트의 우상들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분노를 쏟겠다고 하였다. 이집트 땅에서 내 분노를 그들에게 완전히 쏟겠다고.

9 그러나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행하였다. 그것이 더럽혀지지 않게 하려고. 내가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겠다고 그 민족들의 눈 앞에서 내가 알리었기 때문이다.”

“내 이름을 위하여 행하였다” — 이 구절이 에스겔 20장의 핵심 동기다. 야훼가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은 이스라엘이 충실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미 이집트에서 반역했다. 야훼가 구원한 이유는 야훼 자신의 이름, 곧 야훼의 신실함과 명성을 위해서다. 이 신학은 신명기와 다르다. 신명기는 이스라엘의 순종을 조건으로 강조하지만, 에스겔은 야훼의 일방적 신실함을 전면에 내세운다. 에스겔 36장이 이것을 더 직접적으로 말한다: “이스라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광야에서의 배신

10 “내가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로 데리고 갔다.

11 내가 내 규례들을 그들에게 주고 내 법도들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다. 사람이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 것이다.

12 또 내가 그들에게 내 안식일들을 주었다. 나와 그들 사이의 표징이 되도록. 내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야훼임을 알게 하려고.

13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광야에서 내게 반역하였다. 내 규례대로 행하지 않고 내 법도를 거부하였다 — 사람이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 것인데. 내 안식일들을 심히 더럽혔다. 그래서 내가 분노를 쏟겠다고, 광야에서 그들을 없애겠다고 하였다.”

안식일 — 에스겔에게 안식일은 단순한 예식 규정이 아니다. 야훼와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표징이다(출애굽기 31:13).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언약 자체를 거부하는 행위다. 에스겔서에서 안식일 위반은 여러 번 이스라엘의 핵심 죄악으로 거론된다(20:13, 16, 21, 24; 22:8, 26; 23:38).

14 “그러나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행하였다. 내가 그들을 이끌어 낸 것을 민족들의 눈 앞에서 보였기 때문에 그것이 더럽혀지지 않게 하려고.

15 그러나 또 나는 광야에서 그들에게 내 손을 들어 맹세하였다. 내가 그들에게 준 땅 — 젖과 꿀이 흐르고 모든 땅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땅으로 데려가지 않겠다고.

16 그들이 내 법도를 거부하고 내 규례를 따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이 그들의 우상들을 따랐기 때문이다.

17 그러나 내가 그들을 아끼는 눈으로 보아 멸하지 않고 광야에서 그들을 다 없애지 않았다.”


두 번째 세대의 반역

18 “내가 광야에서 그들의 자녀들에게 말했다. 너희 조상들의 규례를 따라 행하지 말고 그들의 법도를 지키지 말며 그들의 우상들로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

19 나는 야훼, 너희 하나님이다. 내 규례를 따라 행하고 내 법도를 지켜 행하여라.

20 내 안식일들을 거룩하게 하여라. 그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표징이 되어 내가 야훼, 너희 하나님임을 알게 하리라.

21 그러나 자녀들도 내게 반역하였다. 내 규례대로 행하지 않고 내 법도를 지켜 행하지 않았다. 사람이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 것인데. 내 안식일들을 더럽혔다. 그래서 내가 분노를 쏟겠다고, 광야에서 그들에게 내 분노를 완전히 쏟겠다고 하였다.

22 그러나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손을 거두었다. 그것이 더럽혀지지 않게 하려고. 민족들의 눈 앞에서 내가 그들을 이끌어 낸 것을 보였기 때문에.”


선물이 저주로

23 “또 나는 광야에서 그들에게 내 손을 들어 맹세하였다. 민족들 가운데 그들을 흩고 여러 나라들에 그들을 뿌리겠다고.

24 그들이 내 법도를 행하지 않고 내 규례를 거부하고 내 안식일들을 더럽혔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이 조상들의 우상들을 따랐기 때문이다.

25 내가 또 그들에게 선하지 않은 규례를 주었다. 살 수 없는 법도를 주었다.

26 장자를 불에 통과시키는 그들의 헌물로 그들을 더럽혔다. 내가 그들을 황폐하게 하여 그들이 내가 야훼임을 알게 하려고.”

“선하지 않은 규례를 주었다” — 신학적으로 가장 다투어지는 본문 중 하나다. 야훼가 악한 규례를 직접 주셨다는 뜻인가?

허용·내버려둠 해석: 12세기 이븐 에즈라 와 13세기 라드락(David Kimhi) 은 “주었다”를 야훼가 그들의 우상 숭배를 막지 않으셨다는 허용의 언어로 읽었다. 발터 침멀리(Walther Zimmermann)의 1969년 BKAT 에스겔 주석도 같은 노선이다 — 로마서 1:24의 “내버려두셨다(παρέδωκεν)“의 신학적 논리다.

출애굽기 22:29의 재해석으로 보는 해석: 존 레벤슨(Jon D. Levenson)의 1993년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과 부활(The Death and Resurrection of the Beloved Son)』은 이 구절이 출애굽기 22:29의 장자 헌상 명령(자녀 희생을 포함하는 듯 읽히는)을 에스겔이 재해석한 흔적이라 본다 — 그 옛 명령은 본래 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셰 그린버그(Moshe Greenberg)의 1997년 AB 주석은 야훼가 의도적으로 이스라엘이 살아남을 수 없는 율법(자녀 헌상 등)을 주어 그들의 반역의 끝을 보게 하셨다는 강한 해석을 채택한다.


포로 중에서도 반역

27 “그러므로 사람아,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이것에서도 너희 조상들이 나를 모독하였다. 그들이 내게 반역하는 것으로.

28 내가 그들을 데리고 내가 주겠다고 내 손을 들어 맹세한 땅으로 갔을 때 높은 언덕들과 무성한 나무들을 보고 거기서 희생 제물을 드리고 거기서 노엽게 하는 제물을 드리고 거기서 향기로운 제물을 드리고 거기서 전제를 쏟았다.

29 그러면서 내가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가 가는 그 산당이 무엇이냐고. 그래서 오늘날까지 그 이름을 ‘바마(Bamah — 산당)‘라 한다.”


지금 너희에게

30 “그러므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여라. 주 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너희 조상들의 방식으로 자신을 더럽히느냐? 그들의 가증한 것들을 따라 음행하느냐?

31 너희 헌물을 드리고 너희 아들들을 불에 통과하게 하면서 오늘날까지 너희 모든 우상들로 더럽혀지고 있다. 그런데 내가 너희에게 응답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주 야훼가 살아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응답하지 않겠다.

32 ‘우리가 나무와 돌을 섬기는 민족들처럼 되겠다’고 네 마음에 오른 것이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출애굽의 약속

33 “주 야훼가 살아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강한 손과 편 팔과 쏟아진 분노로 너희를 다스릴 것이다.

34 내가 강한 손과 편 팔과 쏟아진 분노로 너희가 흩어진 민족들과 나라들에서 너희를 이끌어 낼 것이다.

35 내가 너희를 민족들의 광야로 데려가 거기서 얼굴 대 얼굴로 너희와 심판하겠다.

36 내가 이집트 땅 광야에서 너희 조상들과 심판한 것처럼 너희와 심판하겠다. 주 야훼의 말씀이다.

37 내가 너희를 지팡이 아래로 통과시키고 언약의 매임으로 너희를 들어오게 할 것이다.

38 너희 중에서 반역하는 자들과 내게 죄를 범한 자들을 가려낼 것이다. 그들이 거류한 땅에서 내가 그들을 내어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제야 너희는 내가 야훼임을 알 것이다.”

두 번째 출애굽 — 에스겔의 회복 예언은 새 출애굽의 모티프를 사용한다. 이집트에서의 출애굽처럼, 포로에서의 귀환이 있을 것이다. “민족들의 광야”는 디아스포라 상황을 가리키며, 그 가운데서 야훼가 정제하고 가려낼 것이다. 이사야 40장의 “광야에서 야훼의 길을 예비하라”와 같은 신학적 흐름이다.


이스라엘 산에서의 예배

40 “주 야훼의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산, 높은 내 산에서 이스라엘 족속 온 땅이 나를 섬길 것이다. 거기서 내가 그들을 받겠고 거기서 너희 봉헌물과 너희 가장 좋은 헌물과 너희 모든 거룩한 것들을 구할 것이다.

41 내가 너희를 민족들 가운데서 이끌어 내고 너희가 흩어진 나라들에서 모을 때 너희에게서 향기로운 냄새를 받겠다. 내가 너희로 인하여 민족들의 눈 앞에서 거룩하게 될 것이다.

42 내가 너희를 이스라엘 땅으로, 곧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주기 위해 내 손을 들어 맹세한 그 땅으로 데려올 때 그제야 너희는 내가 야훼임을 알 것이다.

43 거기서 너희는 너희 길과 더럽힌 모든 행동을 기억할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너희 자신을 혐오할 것이다.

44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악한 길과 더럽힌 행동대로가 아니라 내 이름을 위하여 너희를 대할 때 너희는 내가 야훼임을 알 것이다. 주 야훼의 말씀이다.”


남방 숲에 대한 예언

45 야훼의 말씀이 내게 임했다.

46 “사람아, 네 얼굴을 남쪽으로 향하고 남방을 향하여 예언하여라. 남방의 숲에 대해 야훼의 말씀을 선포하여라.

47 남방의 숲에게 말하여라. 야훼의 말씀을 들어라. 주 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보라, 내가 네 안에 불을 피우리니 그것이 네 안의 모든 생 나무와 마른 나무를 태울 것이다. 타오르는 불꽃이 꺼지지 않을 것이다. 남쪽에서 북쪽까지 모든 얼굴들이 불에 그을릴 것이다.

48 모든 육체가 나 야훼가 그것을 피웠음을 볼 것이다. 그것이 꺼지지 않을 것이다.”

49 그 때 내가 말했다. “아, 주 야훼여. 그들이 나에 대해 말하기를 ‘그는 비유로만 말하는 자가 아니냐’고 합니다.”

에스겔의 탄식 — 예언자 자신이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는 고백이다. “비유로만 말하는 자” —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를 늘어놓는 사람으로 취급받고 있다는 뜻이다. 에스겔이 자신의 청중과 얼마나 단절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드문 자기 노출이다. 에스겔 33:32에서 야훼도 이것을 확인한다: “그들에게 너는 악기를 잘 치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자가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여겨진다.” 말이 예술로 즐겨지지만 삶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다음 장 — 야훼의 칼이 선포된다. 방향을 돌리고, 빛나고, 날카롭게 갈린 칼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노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