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41장 리워야단

갈고리로 잡겠느냐

1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Leviathan · ㉸ 레비아탄)을 낚을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묶을 수 있겠느냐?

2 갈대 꼬챙이를 그 코에 꿸 수 있겠느냐? 가시로 그 턱을 꿸 수 있겠느냐?

3 그것이 네게 간청하겠느냐? 부드럽게 네게 말하겠느냐?

4 그것이 너와 언약을 맺겠느냐? 그것을 영원히 네 종으로 삼겠느냐?

5 새처럼 그것과 놀겠느냐? 네 여자 종들을 위하여 그것을 묶겠느냐?

6 장사꾼들이 그것을 두고 흥정하겠느냐? 그것을 나누어 상인들에게 팔겠느냐?

7 네가 작살을 그 껍질에 가득히 꽂겠느냐? 작은 창으로 그 머리를 찌르겠느냐?

8 그것에게 손을 얹어보라. 싸울 것을 생각하겠지만 다시는 하지 않으리라.

9 보라, 그것을 잡으려는 소망이 헛되리라. 그것을 보기만 하여도 넘어지지 아니하겠느냐?”

리워야단은 욥기에서 가장 긴 묘사를 받는 피조물이다. 베헤못이 여덟 절이라면 리워야단은 34절이다. 고대 근동 신화에서 리워야단의 위치는 분명하다 — 우가릿 신화(BC 14세기)에서 신(神) 바알과 싸우는 얌(Yam)의 형상인 롯단(Lotan)이 이 이름의 원형이다. 히브리어 리위야탄(לִוְיָתָן)과 우가릿어 롯단(lôtān)은 어원이 같다. 구약에서 리워야단은 이사야 27:1(“비틀어진 뱀 리워야단”), 시편 74:14, 104:26에도 등장한다. 하나님이 혼돈의 바다 괴수를 지으셨고, 그것을 다루신다는 신학이 여기 전개된다.


아무도 감히

10 “그것을 일으킬 만큼 용감한 자가 없나니 그렇다면 누가 내 앞에 서겠느냐?

11 누가 먼저 내게 주었으므로 내가 그에게 갚겠느냐? 하늘 아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11절이 40-41장 전체의 신학적 핵심이다. “누가 먼저 내게 주었으므로 내가 그에게 갚겠느냐?” 하나님은 아무에게도 먼저 빚진 것이 없다. 이것은 인과응보 신학의 근거를 무너뜨린다. 욥이 의로움을 ‘먼저 드렸으므로’ 복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신다면 그것은 의무가 아니라 은혜다. 바울이 로마서 11:35에서 이 절을 인용한다 —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그것의 부분들

12 “내가 그것의 지체와 그 강한 힘과 그 아름다운 구조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13 누가 그것의 겉가죽을 벗기겠으며 누가 그것의 두 턱 사이로 들어가겠느냐?

14 누가 그것의 얼굴의 문들을 열겠느냐? 그 이빨 가장자리가 두려우니라.

15 그 등의 비늘은 그것이 자랑하는 것이요 촘촘히 봉해져 있도다.

16 하나씩 밀착되어 있어서 바람도 들어갈 수 없느니라.

17 서로 붙어 있어서 나뉘지도 않느니라.

18 그것이 재채기를 하면 빛이 발하며 그 눈은 새벽의 눈꺼풀 같도다.

19 그것의 입에서는 횃불이 나오며 불꽃이 튀어나오느니라.

20 그 코에서는 연기가 나오나니 끓는 가마나 갈대를 태우는 것 같도다.

21 그것의 입김이 숯불을 피우며 그 입에서 불꽃이 나오느니라.

22 그것의 목에는 힘이 깃들어 있고 그것 앞에서 무서움이 춤추도다.

23 그것의 살점들은 서로 합하여져서 흔들리지 아니하느니라.

24 그 마음은 돌처럼 단단하고 맷돌 아랫짝처럼 굳도다.”

리워야단이 불과 연기를 내뿜는다는 묘사가 흥미롭다. 이것을 악어의 코에서 나오는 물안개와 태양빛의 조합으로 설명하는 자연주의 해석이 있다. 그러나 이 묘사는 단순한 자연 현상 이상이다 — 신화적 괴수의 언어다. 욥기는 악어의 생물학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혼돈의 신화적 상징을 사용하여 창조주의 통제력을 보여준다.


두려움 없이

25 “그것이 일어나면 용사들도 두려워하고 경황이 없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느니라.

26 칼로 그것을 쳐도 소용이 없고 창과 화살촉과 작살도 마찬가지니라.

27 그것은 쇠를 짚처럼 여기고 놋을 썩은 나무처럼 여기며

28 화살이 그것을 도망가게 하지 못하고 무릿매 돌도 그것에게는 지푸라기가 되고

29 몽둥이도 지푸라기로 여기며 단창이 날아와도 그것은 웃는도다.

30 그것의 아랫배는 날카로운 도기 조각 같아서 진흙 위에 타작하듯 자국을 남기느니라.

31 그것은 깊은 물을 솥의 물처럼 끓게 하며 바다를 기름 냄비처럼 만드느니라.

32 그것이 지나간 뒤에는 흔적이 빛나니 깊은 바다가 백발이 된 듯하도다.

33 땅 위에는 그것처럼 두려움 없는 것이 없으니 그것은 두려움 없이 태어났도다.

34 그것은 모든 자랑스러운 것들을 내려다보고 교만한 짐승들의 왕이 되느니라.”

41장의 결말 — “교만한 짐승들의 왕.” 리워야단이 가장 강하고 두려운 피조물이다. 그러나 그것이 피조물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하나님이 그것을 지으셨고, 그것의 경계를 아신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다루신다. 이 논증의 방향이 욥을 향한다 — 너의 고난도, 너의 이해 너머에 있는 것들도, 그 안에서 작동하는 질서가 있다.

리워야단과 신약 — 요한계시록 12:9, 20:2에서 용(龍)이 등장한다. 고대 사탄 개념이 리워야단의 이미지를 흡수한 것이다. 욥기에서 하나님이 리워야단을 다스리신다는 선언이, 신약의 언어에서 그 용을 결박하신다는 선언으로 이어진다.


다음 장 — 욥의 두 번째 응답. “이제 눈으로 봅니다.” 그리고 야훼가 친구들을 꾸짖고 욥의 잃은 것을 두 배로 회복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