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4장 어둠 속의 폭력
왜 때를 정해두지 않으시는가
1 “전능자가 때를 정해두지 않으시는데 그를 아는 자들이 어찌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가?
2 어떤 사람은 지계석을 옮기며 양 떼를 빼앗아 먹이며
3 고아의 나귀를 몰아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 잡으며
4 가난한 자를 길에서 몰아내나니 세상의 가난한 자가 다 스스로 숨는구나.”
욥이 고발하는 폭력의 목록은 에스겔이나 아모스 같은 예언자들의 고발장과 닮았다. 땅의 경계를 옮기고, 약자의 가축을 빼앗고, 과부와 고아를 착취한다. 고대 근동에서 지계석(境界石)은 재산의 법적 표지였다. 이를 몰래 옮기는 것은 무력 없이 토지를 빼앗는 행위였다.
가난한 자들의 삶
5 “저들은 들나귀처럼 나가 일하며 먹을 것을 찾아 광야로 나가니 황량한 들이 자기 자녀들의 양식이 되느니라.
6 밭에서 남의 것을 베며 악인들이 남긴 포도를 따며
7 의복이 없어 밤을 지새우며 추위에도 덮을 것이 없으며
8 산의 비에 젖고 피할 것 없어 바위를 안고 있느니라.”
이 묘사는 경제적 착취가 만들어낸 생존의 최하층을 그린다. ‘들나귀’는 경계 밖, 경작지 밖의 존재다. 욥은 그들을 그렇게 비유한다. 인간이 들나귀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문명의 반대를 말한다. 욥이 번영했을 때 가난한 자를 돌봤다는 기록(29장)과 대조된다.
9 “어떤 사람은 고아를 어머니의 품에서 빼앗으며 가난한 자의 옷을 볼모 잡으며
10 가난한 자는 의복이 없이 다니며 주린 자는 곡식 단을 나르지만
11 그들의 담 안에서 기름을 짜고 목말라 하면서 포도즙 틀을 밟느니라.”
어둠 속에 숨는 자들
12 “성 안에서 사람들이 신음하며 부상자의 영혼이 부르짖으나 하나님이 그 참혹함을 주목하지 않으시느니라.
13 어떤 사람은 빛을 배반한 자로서 빛의 길을 알지 못하며 빛 가운데 머물지도 아니하나니
14 살인자는 새벽에 일어나서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죽이며 밤에는 도둑이 되고
15 간음하는 자의 눈은 어두워지기를 기다리며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고 얼굴을 가리느니라.
16 어두울 때에는 집을 뚫으나 낮에는 문을 닫고 숨어 있나니 그들은 빛을 싫어함이니라.
17 그들에게는 새벽이 다 흑암과 같도다. 그들은 흑암의 두려움을 알기 때문이니라.”
빛과 어둠의 대비가 이 단락을 지배한다. 악인들은 어둠 속에서 활동하고 빛을 두려워한다. 이 이미지는 요한복음 3:19-20의 ‘악한 일을 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한다’는 말과 평행을 이룬다. 욥기는 이 신학적 언어를 욥기 저자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증거다.
그러나 그들은 형통하다
18 “그들은 물 위에 빨리 흘러가며 그들의 소유가 땅에서 저주를 받나니 포도원으로 가는 길로 들어서지 못하리로다.
19 가뭄과 더위가 눈 녹은 물을 소멸하듯이 스올이 범죄자를 소멸하리니
20 그의 어머니는 그를 잊고 구더기가 그를 달게 먹을 것이라. 그는 영원히 기억되지 못하리니 불의가 나무처럼 꺾이리로다.
21 그는 자녀를 낳지 못하는 여자를 해치며 과부를 선대하지 아니하느니라.
22 하나님이 그의 능력으로 강한 자들을 끌어내시나니 그들은 일어나도 생명을 보장하지 못하느니라.
23 하나님이 그들에게 평안한 것을 주고 그들을 지켜주시나 그의 눈이 그들의 길을 살피시느니라.
24 그들은 잠깐 높아졌다가 없어지나니 사라지리라 — 낮아져 다른 모든 사람처럼 되고 곡식 이삭처럼 잘리리로다.
25 가령 그렇지 않다면 내 말이 거짓임을 누가 증명하며 내 말이 아무것도 아니라 누가 반증하겠느냐?”
24장의 구조가 논쟁적이다. 18-24절은 갑자기 어조가 바뀌어 악인의 멸망을 선언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부 학자는 이 부분이 욥의 말이 아니라 세 친구 중 하나(소발)의 말로 잘못 편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본문 전달 과정에서 화자 표시가 흐려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욥기 25-27장의 화자 귀속 문제는 욥기 연구에서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난제다.
다음 장 — 빌닷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말. 불과 여섯 절.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자가 누가 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