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2장 젊은이의 분노
세 친구가 침묵하다
1 욥이 자신을 의롭게 여기므로 세 사람이 욥과 대화하기를 그쳤다.
2 그 때 람(Ram) 족속 부스(Buz) 사람 바라겔(Barachel)의 아들 엘리후(Elihu)가 분노하였다.
그가 욥에게 노한 것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신이 더 의롭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3 또 세 친구에게도 노한 것은 그들이 욥을 정죄하기만 하고 그 대답을 찾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4 엘리후는 그들보다 나이가 어린 까닭에 욥이 말하기를 기다렸다가,
5 세 사람의 입에 대답이 없음을 보고 분노하였다.
욥기의 가장 큰 학술 논쟁 중 하나는 엘리후의 위치다. 32-37장의 엘리후 담화는 욥기의 다른 곳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는다 — 서두에도, 하나님의 회오리바람 응답에도, 42장의 회복 장면에도 엘리후라는 이름이 없다. 문체도 다르고(히브리어에 아람어적 특징이 더 강하다), 욥기 전체 구조에서 엘리후 담화를 제거해도 논리가 이어진다. 이를 근거로 많은 학자가 엘리후 담화를 후대 삽입으로 본다 — 세 친구의 신학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 후대 편집자가 추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후 담화가 고난을 하나님의 교육으로 해석하는 독특한 신학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다른 관점을 추가하는 의도적 배치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이 논쟁은 아직 결론이 없다.
엘리후가 말한다
6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나이 어리고 당신들은 연로하므로 뒤로 물러서서 내 의견을 감히 말하지 못하였노라.
7 나는 생각하기를 — 날이 많으면 말해야 하겠고 나이 많음이 지혜를 가르치겠다 하였노라.
8 그러나 사람 안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그들에게 통찰을 주느니라.
9 장로가 다 지혜롭지 않으며 노인이 다 공의를 깨닫지 못하느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라 — 내 말을 들으라. 나도 내 의견을 말하리라.”
엘리후의 도입 논거가 흥미롭다. 나이가 많다고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영과 숨결이 통찰을 준다고 말한다. 이것은 새로운 권위 근거다 — 경험이나 전통이 아닌 신적 영감. 엘리후는 이 근거로 노인들이 실패한 자리에 자신이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다렸다
11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동안 기다렸노라. 당신들이 말을 찾는 동안 당신들의 논거를 귀 기울였노라.
12 내가 당신들을 주의 깊게 들었더니 보라, 욥을 꺾거나 당신들 가운데서 그의 말에 답한 자가 없구나.
13 당신들이 말하지 말라 — 우리가 지혜를 찾았다고! 하나님이 하셔야지 사람이 그를 이기지 못하리라.
14 이제 욥이 나를 향하여 말하지 않았고 나도 당신들의 말로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리라.
15 그들이 놀라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니 말이 그들을 떠나버렸도다.
16 그들이 말없이 서 있고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니 내가 어찌 기다리겠느냐?
17 나도 내 몫을 대답하겠으며 나도 내 의견을 내놓겠노라.
18 나는 할 말이 가득하고 속에 기운이 나를 압박하기 때문이라.
19 보라, 내 속은 포도주처럼 터지려 하고 새 가죽 부대가 터지는 것 같도다.
20 내가 말해야 쉬겠고 입을 열어 대답해야겠노라.
21 나는 아무 편도 들지 않겠으며 아무에게도 아첨하지 않겠노라.
22 아첨하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만약 그렇게 하면 나를 지으신 이가 나를 들어가게 하시리라.”
“새 가죽 부대가 터지는 것 같다” — 예수도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마태복음 9:17). 엘리후의 이 비유가 그 언어의 배경에 있다. 억제된 말, 터지려는 생각 — 이 에너지가 32장을 가득 채운다. 이후 네 개의 장에서 엘리후의 말이 쏟아진다.
다음 장 — 엘리후가 욥에게 직접 말한다. 하나님이 꿈과 환상으로, 병으로, 고통으로 사람을 가르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