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5장 네 의가 하나님께 무엇을 더하랴

욥의 주장을 다시 짚다

1 엘리후가 또 대답하여 가로되,

2 “네가 이것을 옳다고 여기느냐 네가 말하기를 — 내 의로움이 하나님의 의로움보다 더 크다고 하느냐?

3 네가 말하기를 — 그것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며 죄 짓지 않는 것이 내게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하느니라.”

엘리후가 욥의 말을 다시 인용한다. 욥이 실제로 한 말(7:20, 9:30-31, 10:3)을 압축한 것이다. 욥의 핵심 호소는 이것이었다 — 의로움과 보상 사이에 연결이 없다면, 의로움의 의미가 무엇이냐? 엘리후의 답은 질문 자체를 뒤집는다.


하늘을 보라

4 “내가 네게 대답하겠고 또 너와 함께 한 친구들에게도 대답하겠노라.

5 하늘을 우러러보고 너보다 높이 있는 구름들을 바라보라.

6 네가 범죄하면 그에게 무엇을 하겠으며 네 죄가 많으면 그에게 무슨 영향이 있겠느냐?

7 네가 의로우면 그에게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네 손에서 무엇을 받겠느냐?

8 네 악은 너와 같은 사람에게나 영향이 있으며 네 의로움도 인자에게나 영향이 있느니라.”

35장의 핵심 논증이다. 하나님은 너무 높으셔서 인간의 의나 죄가 그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이 신학은 한쪽으로는 맞다 — 하나님의 존재가 인간의 행동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을 극단적으로 밀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 하나님이 인간사에 무관심한 분이 되어 버린다. 욥기 1-2장은 정반대다. 하나님이 욥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갖고, 그를 자랑스러워하며, 사탄과 내기를 수락한다.


왜 울부짖어도 응답이 없는가

9 “사람들이 너무 핍박을 받으므로 부르짖고 강한 자들의 팔이 가하는 것으로 인하여 도움을 외치지만

10 그들을 지으신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말하는 자가 없고 밤에 노래를 주시는 이가 어디 계시냐 하는 자가 없으며

11 땅의 짐승보다 우리를 더 가르치시고 공중의 새들보다 우리를 더 지혜롭게 만드시는 이가 어디 계시냐 하는 자가 없도다.

12 거기서는 그들이 부르짖어도 대답하지 않으시나니 이는 악인들의 교만함 때문이라.

13 진실로 하나님은 허탄한 것은 듣지 않으시며 전능자는 그것을 살펴보시지 않느니라.

14 하물며 네가 말하기를 — 하나님을 뵙지 못하겠다 하느냐? 사건이 그 앞에 있으니 너는 그를 기다릴지니라.

15 그러나 그는 진노하시지 않으시며 벌을 심하게 내리지도 않으시는도다.

16 그러므로 욥이 헛되이 입을 열고 지식 없이 말을 번성케 하는도다.”

“밤에 노래를 주시는 이” — 35:10의 이 표현이 아름답고 외롭다. 고통 속에서도 노래를 줄 수 있는 분을 찾지 않는다고 엘리후는 비판한다. 욥기 30:31에서 욥의 수금은 슬픔 소리를 낸다. 밤의 노래와 슬픔의 수금 — 두 이미지가 35장과 30장에서 서로를 바라본다.

엘리후의 35장 결론이 흥미롭다. 응답이 없는 것은 기도하는 자의 교만과 지식 없음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욥기는 1:1에서 욥을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라고 묘사했다. 엘리후의 진단이 욥기의 전제와 맞지 않는다.


다음 장 — 엘리후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발언이 시작된다. 자연 속의 하나님 — 비와 천둥, 번개와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