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40장 입에 손을 얹다
욥의 첫 번째 응답
1 여호와가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2 “비난하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책망하는 자는 대답할지어다.”
3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였다.
4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5 내가 한 번 말하였사오나 다시는 대답하지 않겠사오며 두 번 말하였사오나 더 이상 거기에 덧붙이지 않겠나이다.”
욥의 첫 번째 응답이 짧다. 두 절이다. 이것을 굴복으로 읽을 수도 있고, 충격으로 읽을 수도 있다. 욥은 “내가 틀렸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비천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입을 가린다. 이것은 항복이 아니라 압도됨이다. 38-39장의 말씀 앞에서 욥이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진 것이다.
두 번째 물음
6 여호와가 폭풍 가운데서 욥에게 말씀하셨다.
7 “이제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으라. 내가 네게 묻겠으니 너는 내게 대답할지니라.
8 네가 정말로 내 공의를 폐하려느냐? 내가 옳지 않다고 하여 나를 정죄하고 네가 의롭다 하려느냐?
9 네가 하나님처럼 팔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우레 소리로 울릴 수 있겠느냐?”
두 번째 도전이 더 직접적이다. “내 공의를 폐하려느냐?” 욥이 하나님의 정의를 무효화하려 했다는 이 지적은 날카롭다. 그러나 욥이 실제로 요구한 것은 정의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실현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질문은 욥의 항변을 단순화하는 위험이 있다. 혹은 욥이 자신도 모르게 그 경계를 넘었다는 경고일 수 있다.
만약 네가 하나님이라면
10 “그러면 영광과 존귀로 단장하고 위엄과 영화를 입으라.
11 네 분노를 쏟아 놓아서 모든 교만한 자를 보아 낮추고
12 모든 교만한 자를 보아 낮추어서 악인들을 그 자리에서 밟아 뭉개어
13 그들을 티끌 속에 함께 묻어버리며 그들의 얼굴을 숨겨진 곳에 가두어라.
14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
하나님의 논거다. 만약 욥이 나라면 — 교만한 자를 낮추고, 악인을 정죄하고, 세상을 제대로 다스려보라. 할 수 있느냐? 이 도전은 욥에게 불공평하게 보인다. 욥은 하나님이 되겠다고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 도전이 가리키는 것은 욥의 능력이 아니라 욥기 전체의 질문이다 — 공의를 실현하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 일인가.
베헤못
15 “이제 소 같은 풀을 먹는 베헤못(Behemoth)을 보라. 내가 너를 만든 것처럼 그것도 만들었도다.
16 그의 허리의 힘을 보며 그의 배 근육의 힘을 보라.
17 그것이 꼬리를 백향목처럼 움직이며 넓적다리의 힘줄은 굵게 얽혀 있도다.
18 그 뼈는 놋관 같고 그 팔다리는 쇠막대기 같으니라.
19 그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 가운데 첫째이니 그것을 만드신 이가 그것에게 칼을 주셨느니라.
20 온 산의 짐승들이 그것과 함께 노닐고 들짐승들도 거기서 노느니라.
21 그것이 연꽃 아래에 누우며 갈대 숲과 늪 속에 숨느니라.
22 연꽃 나무 그늘이 그것을 덮으며 시내 버드나무가 그것을 두르고 있느니라.
23 보라, 강물이 넘쳐도 그것은 놀라지 않으며 요단 강이 그 입까지 차도 태연하니라.
24 그것이 깨어 있는 동안 누가 그것을 잡을 수 있겠느냐? 누가 갈고리로 그것의 코를 꿸 수 있겠느냐?”
베헤못의 정체를 두고 두 입장이 맞선다. 히브리어 베헤못(בְּהֵמוֹת)은 ‘짐승’의 복수형으로 거대한 짐승을 가리킨다.
하마설: 17세기 사무엘 보샤르트(Samuel Bochart) 의 『히에로조이콘(Hierozoicon, 1663)』 이래 표준이 된 자연사적 독법. 19세기 프란츠 델리치(Franz Delitzsch) 가 잇는다. 강가에 살고 풀을 먹고 물이 넘쳐도 태연한 묘사가 나일 하마와 들어맞는다.
신화적 혼돈수설: 마빈 포프(Marvin Pope · Anchor Bible 1965) 와 존 데이(John Day · 『God’s Conflict with the Dragon and the Sea』 1985) 는 19절 “하나님이 지으신 것 가운데 첫째”와 “칼을 주셨다”는 표현, 41장 리워야단과 한 쌍을 이루는 구조를 근거로 가나안 우가릿 신화의 혼돈수 차용으로 본다. 하나님이 혼돈의 힘마저 다스리신다는 신학적 선언으로 읽는다.
“나를 만든 것처럼 그것도 만들었도다” — 욥과 베헤못이 같은 창조주에게서 나왔다. 욥은 이 거대하고 통제 불가능한 피조물과 창조주 앞에서 동등하다. 이것이 위로인지 경고인지 — 욥기는 양쪽 모두일 수 있게 열어둔다.
다음 장 — 리워야단. 베헤못보다 훨씬 길고 압도적인 묘사가 이어진다. 바다 괴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