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3장 그분을 찾을 수만 있다면
욥이 말한다
1 욥이 대답하였다.
2 “내가 오늘도 슬프게 원망하니 내가 탄식하여도 내 손에는 힘이 없구나.
3 그가 어디 계신지 내가 알 수만 있다면 그의 처소에 이르러
4 내가 그 앞에서 내 사정을 말하고 입으로 변론을 가득히 채우리라.
5 그가 내게 무엇을 대답하시는지 내가 알고 그가 내게 하시는 말씀을 내가 깨달으리라.
6 그가 크신 능력으로 나를 향하여 다투실까? 아니라, 도리어 내 말을 들어주시리라.”
욥의 소원은 소박하다. 도망치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만나는 것이다. 법정에 나가는 것처럼 — 변론을 준비하고, 판결을 기다리고, 그 결과를 받겠다는 것이다. 욥은 하나님을 잃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닿지 못하는 것을 고통스러워한다.
동서남북 어디에도
7 “거기서는 정직한 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나니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원히 벗어날 수 있으리라.
8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9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볼 수 없구나.”
히브리 원문에서 동서남북의 방향 표현이 흥미롭다. 동쪽은 ‘앞’, 서쪽은 ‘뒤’, 북쪽은 ‘왼쪽’, 남쪽은 ‘오른쪽’이다. 고대 히브리인이 동쪽을 바라보고 방향을 설정했다는 흔적이다. 욥은 온 우주를 다 돌아보지만 하나님을 찾지 못한다. 신의 부재가 이보다 더 구체적으로 표현된 곳이 욥기 외에는 드물다.
10 “그러나 그가 내가 가는 길을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처럼 나오리라.
11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짝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12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그의 입의 말씀을 내 소중한 것보다 더 귀하게 여겼도다.”
찾지 못한다는 탄식 바로 뒤에 욥은 신뢰를 고백한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이 보신다는 것을 안다. 이 역설이 욥의 믿음의 질감이다 — 증거 없는 확신이 아니라, 부재 속에서도 놓지 않는 신뢰.
두려움
13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그를 돌이키랴? 그가 원하시는 것을 이루시나니.
14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는 많이 있느니라.
15 그러므로 내가 그 앞에서 떨며 이를 생각할수록 두렵고 무서우니라.
16 하나님이 내 마음을 약하게 하시며 전능자가 나를 두렵게 하시도다.
17 이는 내가 어둠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으며 흑암이 내 얼굴을 가리기 때문도 아니로다.”
23장은 두 가지 감정 사이에서 끝난다. 신뢰와 공포. 둘 다 진짜다.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단련하신다고 믿는다(10절). 동시에 하나님의 뜻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두렵다(13절). 하나님의 견고함은 위로이면서 동시에 공포다. 욥기는 그 두 감각이 공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음 장 — 욥은 계속한다. 왜 전능자가 악인을 심판하는 시간을 정해두지 않으시는가? 땅 위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