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34장 느보산에서
올라가서 보다
1 모세가 모압 평야에서 여리고 맞은편 느보(Nebo)산 — 비스가(Pisgah)산 꼭대기로 올라갔다.
여호와께서 온 땅을 그에게 보여주셨다 — 길르앗(Gilead)에서 단(Dan)까지,
2 온 납달리(Naphtali)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 서쪽 바다까지의 유다 온 땅,
3 네겝(Negeb)과 종려나무 성읍 여리고(Jericho) 평야 — 소알(Zoar)까지.
4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맹세하여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한 땅이다. 네 눈으로 보게 했지만 거기 건너가지는 못할 것이다.”
모세가 올라간 느보산 — 현재 요르단 땅에 있다. 해발 817미터. 날이 맑으면 예루살렘과 사해, 요단강 계곡, 먼 곳은 지중해까지 보인다고 한다. 오늘날 느보산 정상에는 작은 교회가 있고 모세를 기념하는 청동 뱀 조각상이 서 있다. 매년 순례자들이 찾는 곳이다.
“네 눈으로 보게 했다” — 하나님이 약속의 땅을 보여주신 것이다. 직접 밟게 하시지는 않지만, 보게는 하셨다. 이 구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 위로인지 마지막 선물인지 — 본문은 설명하지 않는다. 독자가 느끼는 감정으로 남겨둔다.
모세의 죽음
5 이처럼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었다.
6 그가 모압 땅 벳브올(Beth-peor) 맞은편 골짜기에 장사되었다.
오늘까지 그 무덤을 아는 자가 없다.
“오늘까지 그 무덤을 아는 자가 없다” — 이것은 의도적인 비밀일 수 있다. 유대교 전통에서는 모세의 무덤이 알려지면 이스라엘이 그것을 성지로 삼고 우상숭배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숨기셨다고 설명한다. 탈무드(소타 14a)는 “여호와가 묻으셨다”고 해석한다.
이슬람 전승 — 이슬람에서도 모세(아랍어로 ‘무사 Musa’)는 중요한 예언자다. 꾸란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예언자가 모세다. 이슬람 전승에서도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예언자로 기억된다. 요르단 느보산 근처에는 모세를 기리는 이슬람 성소 ‘마캄 무사’가 있다.
유대교의 모세 이해 — 유대교에서 모세는 ‘라베누(Rabbenu — 우리의 스승)‘로 불린다. 가장 위대한 예언자, 율법 수여자. 유대 전통 기도문에서 모세는 신격화되지 않는다. 반면 그를 능가하거나 대체하는 예언자가 올 수 없다는 입장을 마이모니데스의 13원칙(9번째)에서 천명한다. 이것이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교의 신학적 입장 중 하나다.
백이십 세의 눈
7 모세가 죽을 때 나이가 백이십 세였다. 그러나 눈이 흐리지 않았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
“눈이 흐리지 않았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 — 히브리어 ‘라아브 레아흐’는 “활기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모세는 육체적 노쇠로 죽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명에 따라, 때가 되어 죽었다. 이것이 이 구절이 강조하는 것이다.
8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야에서 모세를 위해 삼십 일 동안 울었다.
그 후에 모세를 위한 애곡의 날이 끝났다.
여호수아로 이어지다
9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지혜의 영이 충만했다. 모세가 그에게 안수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순종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10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 여호와가 그와 얼굴을 맞대고 아셨던 것처럼.
11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어 이집트 땅에서 파라오와 모든 신하와 온 땅에 행하게 하신 모든 표적과 이적,
12 모세가 온 이스라엘의 눈앞에서 행한 크고 두려운 일들에서 — 모세와 같은 예언자는 없었다.
“얼굴을 맞대고” — 출애굽기 33장 11절 “사람이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여호와가 모세에게 얼굴을 맞대고 말씀하셨다.” 민수기 12장 8절에도 같은 표현이 있다. 다른 예언자들은 꿈과 환상으로 하나님을 만났지만, 모세는 직접적으로 만났다. 이 차별성이 모세의 고유한 위치를 만든다.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 이 문장은 회고형이다. 기록 시점에 이미 모세의 죽음 이후 여러 세대가 지났음을 시사한다. 신명기 저자 문제의 가장 오래된 본문 중 하나.
(1) 여호수아 부록설 — 바벨론 탈무드 바바 바트라(Baba Bathra) 14b-15a 가 가장 이른 답을 제시한다. 토라는 모세가 썼지만 마지막 여덟 절(34:5-12)은 여호수아가 썼다는 입장. 전통적 유대·기독교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2) 모세 친저·예언설 — 1세기 요세푸스(『유대 고대사』 4.8.48) 가 모세가 자기 죽음 기사를 직접 미리 기록했다고 적었다. 11세기 라쉬도 같은 입장.
(3) 후대 편집설 — 12세기 스페인의 이븐 에즈라(Ibn Ezra) 가 신명기 1:1 주석에서 “이 비밀을 아는 자는 침묵하라”는 암시로 처음 의문을 제기했다. 17세기 스피노자가 『신학정치론』 8장에서 그 단서를 풀어 모세 친저를 정면 부정했고, 19세기 율리우스 벨하우젠의 문서설 — 신명기는 BC 7세기 요시야 시대의 산물 — 이 비평학의 표준이 됐다.
신명기의 끝, 토라의 끝 — 신명기는 모세 오경(토라)의 마지막 책이다. 유대교에서 토라는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모세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모세의 죽음으로 끝난다. 유대교 회당에서 매년 초막절 마지막 날(심핫 토라, “율법의 기쁨”)에 신명기의 마지막을 읽고, 곧바로 창세기 1장을 펼쳐 다시 시작한다. 끝이 새 시작이다.
모세에서 여호수아로 — 신명기가 끝나고 여호수아서가 시작된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처음 하신 말씀: “내 종 모세가 죽었다. 이제 일어나라”(여호수아 1장 2절). 모세의 죽음이 새 시대의 시작이다. 성경의 서사는 멈추지 않는다.
신명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