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0장 전쟁 앞에 선 사람들
두려워하지 마라
1 네가 원수들과 싸우러 나가서 말과 병거와 군대를 보더라도 — 그들이 너보다 많다 해도 — 두려워하지 마라. 이집트 땅에서 너를 이끌어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2 전쟁에 나갈 때 제사장이 나아와 군대에게 말해야 한다.
3 “이스라엘이여, 들어라. 오늘 너희가 원수들과 싸우려 한다. 용기를 잃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떨지 마라. 그들 앞에서 겁먹지 마라.
4 여호와 네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가신다. 원수들과 싸워 너희를 구원하신다.”
군종 제사장의 역할 — 고대 이스라엘의 전쟁에서 제사장은 군사 지도자가 아니라 신학적 역할을 담당했다. 전쟁 전 하나님의 뜻을 묻고, 군대의 사기를 신학으로 유지했다. 고대 근동의 다른 민족들도 전쟁 전 신탁을 구하는 방식이 있었다.
전쟁에서 돌아갈 수 있는 사람들
5 관리들은 군대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집을 새로 지었는데 아직 낙성식을 못 한 사람이 있는가? 집으로 돌아가라. 전쟁에서 죽어 다른 사람이 낙성식을 할까 봐.”
6 “포도원을 심었는데 아직 열매를 먹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집으로 돌아가라. 전쟁에서 죽어 다른 사람이 그 열매를 먹을까 봐.”
7 “여자와 약혼했는데 아직 아내로 맞이하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집으로 돌아가라. 전쟁에서 죽어 다른 사람이 그 여자와 결혼할까 봐.”
8 관리들이 또 군대에게 말해야 한다. “두려워하여 용기를 잃은 사람이 있는가? 집으로 돌아가라. 형제들의 마음도 자기처럼 낙담하게 할까 봐.”
9 관리들이 군대에게 말하기를 마치면, 군대장관들을 군대 앞에 세운다.
이 규정의 독특함 — 고대 세계에서 병역 기피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기드온이 미디안과 싸울 때 두려운 자를 돌려보냈더니 3만 2천 명 중 2만 2천 명이 돌아갔다는 기록(사사기 7장 3절)이 있다. 군사력보다 하나님의 구원을 신뢰하는 신학이 이 규정 뒤에 있다.
낙성식(히브리어 ‘하누카’) — 새 집을 짓고 드리는 헌납 의식이다. 시편 30편 제목에 “성전 낙성 노래”라는 표현이 나온다. 하누카(유대교 빛의 절기)도 같은 어근에서 나왔다 — BC 2세기 마카베오 시대 성전 재봉헌을 기념하는 절기다.
먼 성읍에 대한 법
10 어떤 성읍에 가까이 가서 공격하려 할 때, 먼저 화평을 선언해야 한다.
11 그 성읍이 화평을 받아들이고 문을 열면 —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이 너희에게 공물을 바치고 섬겨야 한다.
12 그러나 화평에 동의하지 않고 전쟁을 선택하면, 그 성읍을 포위해야 한다.
13 여호와 네 하나님이 그것을 네 손에 넘기시면, 거기 있는 남자들을 모두 칼로 쳐라.
14 여자들, 유아들, 가축들, 성읍 안의 모든 것은 네 전리품으로 차지할 수 있다. 여호와 네 하나님이 준 원수들의 물건을 먹어도 된다.
15 멀리 있는 성읍들 —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않은 성읍들에는 이렇게 해라.
가나안 성읍에 대한 법
16 그러나 여호와 네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 숨 쉬는 것을 하나도 살려두면 안 된다.
17 헷 사람, 아모리 사람, 가나안 사람, 브리스 사람, 히위 사람, 여부스 사람 — 여호와 네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완전히 진멸해야 한다.
18 그들이 자기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혐오스러운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너희가 여호와 네 하나님께 범죄하게 하지 않도록.
“헤렘(חֵרֶם)” — 완전 진멸 명령. 성경 윤리에서 가장 첨예한 본문이다. 네 갈래의 입장이 있다.
(1) 고고학적 회의설 — 텔아비브 대학의 이스라엘 핀켈슈타인(Israel Finkelstein) 등이 주도한 입장. 1990년대 이후 가나안 주요 도시들의 발굴 결과 — 여리고, 아이, 하솔 — 가 여호수아서가 묘사하는 BC 13세기 대규모 정복과 일치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외부 침략이 아니라 가나안 내부에서 점진적으로 출현한 집단이라는 견해.
(2) 고대 근동 수사 과장설 — 미국 학자 K. 로슨 영거 주니어(K. Lawson Younger Jr.) 가 1990년 저서 『고대 정복 기록(Ancient Conquest Accounts)』에서 정식화한 입장. 헤렘 언어는 아시리아·이집트·히타이트 왕실 비문의 정복 수사 — “한 명도 남기지 않았다”,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다” — 와 같은 양식이며, 문자적 전수 살해가 아니라 결정적 승리의 정형 표현이다.
(3) 종교적 분리설 — 18절 본문 자체의 근거. 이스라엘의 가나안 종교 동화를 막기 위한 경고로 읽는다. 4세기 아우구스티누스가 『칠경 문답(Quaestiones in Heptateuchum)』에서 이미 이 노선의 알레고리 독해를 시도했다.
(4) 점진 계시·발달 윤리설 — 산상수훈(마 5:43-48) 이후 기독교 전통이 헤렘을 시대적 명령으로 한정하고 보편 윤리를 사랑 명령으로 옮긴 입장. 16세기 칼뱅도 『기독교 강요』에서 이 명령이 일회적 신적 사명임을 강조했다.
나무는 사람이 아니다
19 성읍을 오래 포위하여 싸울 때 — 도끼를 들어 그 곳의 나무를 베면 안 된다. 그것으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베지 마라. 들판의 나무가 사람이냐, 네가 포위하려고?
20 나무라는 것을 알면서 먹지 못하는 나무, 과일나무가 아닌 나무는 벨 수 있다. 그것으로 그 성읍을 공격하는 공성 기구를 만들어서 싸워 함락시켜라.
과일나무 보호 규정 — “나무가 사람이냐”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원문에서도 반어법으로 명시적이다. 전쟁 중에도 식량 생산 자원인 과일나무를 베지 말라는 이 규정은 고대 전쟁 관행에서 이례적이다. 아시리아, 바빌론의 군대는 점령지 나무를 조직적으로 베어 황폐화했다. 이스라엘의 전쟁법은 토지와 자원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다.
다음 장 — 들판에서 누군가 죽은 채로 발견됐는데 누가 죽였는지 모를 때 어떻게 하는가. 포로로 잡은 여인을 아내로 삼는 법. 장자권. 그리고 매달린 시체에 대한 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