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장 다메섹 도상
사울의 회심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떠나 다메섹(Damascus · ㉸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7 사울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 예수는 신도들을 박해하는 것을 자신을 박해하는 것으로 말씀하셨다. 교회와 그리스도가 하나라는 이 짧은 문장이, 사도행전 전체의 신학 중 하나를 담고 있다. 스데반을 죽이는 자리에서 옷을 지키던 청년이, 이제 도상에서 멈추어 선다.
사울의 회심은 사도행전에 세 번 기록된다 — 9장(누가의 서술), 22장(유대인 무리 앞 사울의 변호), 26장(아그리파 왕 앞 바울의 변호). 수사 전략 차이설: C.W. 헤드릭(Charles Hedrick, 1981 JBL 논문 “Paul’s Conversion/Call”)과 벤 위더링턴 III가 세 차례 반복을 청중 맞춤형 변호 — 동족 유대인, 로마 관리, 분봉왕 — 의 차이로 본다. 자료 모순설: 에른스트 헨헨(1956)은 “동행자들이 음성을 들었다”(9:7) vs “보았으나 음성은 듣지 못했다”(22:9)의 충돌을 누가가 다른 자료를 봉합한 흔적으로 본다. 반복 수사학설: 고대 수사학에서 핵심 사건의 삼중 반복(트리콜론)은 강조 장치였다 — 롤랜드 알렌(Loveday Alexander, 『사도행전의 머리말』 1993)이 이 관점을 정교화했다.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가다
10 다메섹에 아나니아(Ananias)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이르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환상으로 보았느니라.”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에게서 받았나이다.”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신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다메섹과 예루살렘에서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더욱 힘을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함께 꾀하더니,
24 그 계략이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는지라.
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가마에 담아 성벽으로 달아 내리더라.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들 그를 두려워하여 제자인 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것과 그가 다메섹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한 것을 전하니라.
28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제자들과 함께 출입하며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29 또 헬라파 유대인들과 말하며 변론하니, 그들이 죽이려 하거늘,
30 형제들이 알고 그를 가이사랴(Caesarea · ㉸ 카이사리아)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Tarsus · ㉸ 타르수스)로 보내니라.
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애니아와 다비다
32 베드로가 각처로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3 거기서 애니아(Aeneas · ㉸ 에네아스)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가 중풍으로 침상에 누운 지 팔 년이나 되었더라.
34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그가 곧 일어나니,
35 룻다(Lydda · ㉸ 리다)와 사론(Sharon)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36 욥바에 다비다(Tabitha · ㉸ 타비타)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Dorcas · ㉸ 도르카)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38 룻다(Lydda · ㉸ 리다)가 욥바(Joppa · ㉸ 야파)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청하되 “지체 말고 우리에게 와 달라” 하니.
39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다락으로 데리고 가니, 모든 과부가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자기들과 함께 있을 때에 만든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40 베드로가 모든 사람을 내어보내고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거늘,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들여 그녀가 산 것을 보이니,
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43 베드로가 욥바에서 피장 시몬(Simon)의 집에서 여러 날 있으니라.
다비다(아람어) = 도르가(그리스어) = 가젤(영어). 욥바 공동체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그가 만든 옷들을 들어 보이는 장면에 담겨 있다. 옷은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 한 행동의 증거였다. 베드로는 모두를 내보내고 혼자 기도했다 — 예수가 야이로의 딸을 살릴 때도 같은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