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0장 분열, 채찍과 전갈

세겜에서의 회의

1 르호보암이 세겜(Shechem · ㉸ 스켐)으로 갔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를 왕으로 삼으려고 세겜에 왔기 때문이었다.

2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Jeroboam)이 그 일을 들었다. 그는 솔로몬 왕의 낯을 피해 이집트로 달아난 사람이었다. 여로보암이 이집트에서 돌아왔다.

역대기는 여로보암이 왜 이집트에 있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열왕기상 11장에서 그 이유가 나온다 — 선지자 아히야가 여로보암에게 나타나 열 지파를 주겠다고 예언했고, 솔로몬이 그것을 알고 여로보암을 죽이려 했다. 역대기 저자는 그 앞의 이야기 — 솔로몬의 우상숭배와 신의 심판 선포 — 를 수록하지 않았으므로, 여로보암의 이집트 망명 이유도 독자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이 생략은 역대기의 구조적 특징이다 — 솔로몬의 실패는 지우되, 그 결과(분열)는 기록한다.

3 사람들이 그를 불러왔다.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말했다.

4 “당신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습니다. 이제 당신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부과한 고역과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5 르호보암이 말했다. “사흘 후에 다시 내게 오라.” 백성이 떠나갔다.


두 종류의 조언

6 르호보암 왕이 그의 아버지 솔로몬이 살아 있을 때 그 앞에 섰던 노인들에게 물어보았다.

“이 백성에게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좋겠소?”

7 그들이 왕에게 말했다.

“왕이 이 백성을 선대하여 그들을 기쁘게 하고 좋은 말씀을 하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될 것입니다.”

8 그러나 왕이 노인들의 조언을 버렸다. 왕과 함께 자란 자기와 함께 서 있는 젊은이들에게 물어보았다.

9 “이 백성이 ‘당신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부과한 멍에를 가볍게 해 달라’고 말한 이것을 어떻게 대답할까?”

10 왕과 함께 자란 젊은이들이 말했다.

“이 백성이 왕에게 ‘당신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했으니 가볍게 해 달라’고 했으니,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내 새끼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다.

11 내 아버지가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했다면, 나는 거기에 더할 것이다.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다스렸지만, 나는 전갈로 다스릴 것이다.’”

“채찍과 전갈” — 이 대비는 고대 세계의 권력 수사에서 흔하지 않은 표현이다. “전갈”은 쇠갈고리가 달린 채찍의 일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르호보암의 젊은 참모들은 강경책을 권했다. 이들의 언어 자체가 과시와 위협으로 가득 차 있다. “내 새끼손가락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다” — 자기 아버지 솔로몬을 깎아내리면서 자신은 더 강력하다고 주장한다. 권력 언어의 교과서적인 자기 과시.


르호보암의 대답

12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셋째 날에 왕에게 나아왔다. 왕이 “사흘 후에 오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13 왕이 노인들의 조언을 버리고 가혹하게 백성에게 대답했다.

14 젊은이들의 조언대로 그들에게 말했다.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했지만, 나는 거기에 더할 것이다.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다스렸지만, 나는 전갈로 다스릴 것이다.”

15 왕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실로 사람 아히야를 통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여호와가 이루신 것이었다.

역대기는 열왕기상과 같이 이 분열을 신의 뜻이라고 해석한다. 르호보암의 어리석음이 직접적 원인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신의 섭리가 있었다. 솔로몬이 신의 뜻을 어겼기 때문에 왕국이 분열되었다 — 그러나 역대기는 그 근본 원인(솔로몬의 죄)을 삭제했으므로, 분열의 신학적 설명이 어색해진다. 이것은 역대기의 서술 구조가 낳은 긴장이다. 사건은 기록하되 그 원인은 빠진 자리에서 생기는 서술의 공백.


왕국이 갈라지다

16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왕이 자기들의 말을 듣지 않음을 보고 왕에게 대답했다.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다. 이스라엘아, 너희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네 집이나 돌보라.”

이스라엘이 자기 장막으로 돌아갔다.

17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다.

18 르호보암 왕이 부역을 감독하던 하도람(Hadoram)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보내자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돌로 쳐 죽였다. 르호보암 왕이 급히 병거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도망쳤다.

19 이스라엘이 다윗 왕조를 거슬러 반역한 것이 오늘까지 이르렀다.

역대기는 분열 왕국의 북쪽, 즉 북이스라엘에 대해 이후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역대기의 초점은 철저히 유다 왕조와 예루살렘 성전이다. 북이스라엘은 잘못된 예배(금송아지)로 시작한 왕국이었다. 역대기 저자에게 그들은 사실상 이스라엘 역사의 주류에서 벗어난 지류였다. 포로 귀환 공동체는 남유다의 후손들이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곧 이스라엘의 이야기였다.


다음 장 — 르호보암이 남유다를 강화하고, 북왕국에서 레위인들이 남쪽으로 내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