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3장 에서의 포옹
400인이 온다
1 야곱이 고개를 들어 보니 에서가 400인을 거느리고 오고 있었다.
어젯밤 얍복강에서 씨름한 자리가 아직 욱신거렸다. 넓적다리 관절이 어긋난 채로, 야곱은 절뚝이며 서 있었다.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았지만, 몸은 아직 낡은 야곱의 것이었다.
야곱은 자녀들을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나누어 세웠다.
2 여종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맨 앞에, 레아와 그의 자녀들을 다음에, 라헬과 요셉을 맨 뒤에 두었다.
순서가 말해준다. 야곱이 가장 아끼는 자들을 가장 안전한 자리에 놓았다. 2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3 야곱 자신은 그들보다 앞에서 나아가며 형에게 가까이 이를 때까지 일곱 번 땅에 몸을 굽혔다.
일곱 번이다. 고대 근동의 외교 예법상 최고의 복종을 나타내는 몸짓이었다. 한때 형의 복을 훔쳤던 자가, 이제 형 앞에 일곱 번 엎드렸다.
에서가 달려오다
4 에서가 달려와서 야곱을 맞이했다.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
둘이 울었다.
400인이 칼을 들고 온 것이 아니었다. 에서는 복수를 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20년의 시간이 그 분노를 어딘가에 내려놓았다. 아니면 하나님이 그 마음을 여셨거나. 야곱이 밤새 씨름하며 얻어낸 것이 이것이었는지도 몰랐다.
5 에서가 고개를 들어 여인들과 아이들을 보고 물었다. “이 사람들은 누구냐?”
야곱이 말했다. “하나님이 이 종에게 은혜로 주신 아이들이에요.”
6 여종들이 자기 자녀들과 함께 나아와 절했다.
7 레아도 자기 자녀들과 함께 나아와 절했다. 그 후 요셉과 라헬이 나아와 절했다.
8 에서가 물었다. “오다가 만난 그 많은 떼들은 뭐냐?”
야곱이 말했다. “형에게 은혜를 얻으려고 드리는 것들이에요.”
9 에서가 말했다. “아우야, 나는 이미 충분히 가졌다. 네 것은 네가 가져라.”
10 야곱이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형이 나를 반겨주셨으니, 이 예물을 받아 주세요. 형의 얼굴을 보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아요. 형이 나를 기뻐해 주시니까요.”
11 “하나님이 제게 넘치도록 주셨으니 형, 이것 받아 주세요.”
야곱이 강권하니 에서가 받았다.
다른 길
12 에서가 말했다. “그럼 같이 떠나자. 내가 앞장서 갈게.”
13 야곱이 말했다. “형도 아시다시피,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젖 먹이는 짐승들이 있잖아요. 하루만 무리하게 몰면 양 떼가 다 죽어요.”
14 “형은 먼저 가세요. 저는 가축과 아이들 속도에 맞춰 천천히 가다가 세일(Seir, 현재 요르단 남부 에돔 산지)에서 형을 뵙겠습니다.”
15 에서가 말했다. “그러면 내 사람들 몇을 남겨줄게.”
야곱이 말했다. “괜찮아요. 형이 이렇게 잘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야곱은 세일로 가지 않았다. 에서와 함께 가는 대신 다른 방향을 택했다. 형제의 포옹은 진심이었지만, 야곱은 여전히 거리를 유지했다. 외교였다.
16 에서는 그날 세일로 돌아갔다.
숙곳, 그리고 세겜
17 야곱은 숙곳(Succoth, 현재 요단강 동편 얍복 근처)으로 갔다. 거기서 자기를 위해 집을 짓고, 짐승을 위해 우릿간을 만들었다. 그래서 그 곳 이름을 숙곳이라 했다.
에서에게 ‘세일에서 만나겠다’고 했지만 야곱은 반대 방향으로 발을 돌렸다. 거짓말이었는지, 상황을 보며 마음이 바뀐 것인지, 본문은 말하지 않는다. 다만 야곱은 언제나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18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나와 가나안 땅 세겜(Shechem, 현재 팔레스타인 나블루스) 성에 평안히 이르러, 성 앞에 천막을 쳤다.
이것이 20년 만의 귀환이었다. 지팡이 하나 들고 요단강을 건넜던 자가, 이제 두 가족과 두 떼의 가축과 수많은 종들을 이끌고 돌아왔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였다.
19 천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에게 100크시타를 주고 샀다.
처음으로 가나안 땅에 야곱의 이름으로 등록된 땅이었다. 작은 밭 하나였지만, 족장들이 약속의 땅 한 귀퉁이를 발로 밟고 돈을 내고 산다는 것 — 그 행위 자체가 믿음의 언어였다.
20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하였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얍복강에서 새 이름을 받은 자가, 가나안 땅에 처음 발을 내딛으며 그 이름으로 제단을 쌓았다. 벧엘에서 서원했던 것의 첫 이행이었다.
다음 장 — 야곱의 딸 디나가 성 안 여자들을 보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다. 그리고 두 형제가 칼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