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6장 광야의 샘가에서
사래의 제안
1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하갈(Hagar · ㉸ 하가르)이라는 이집트 여종이 있었다.
2 사래가 아브람에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나로 하여금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잖아요. 내 여종에게 들어가요. 그러면 내가 아들을 얻을 수도 있을 거예요.”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었다.
당시 관습에서 이것은 낯선 일이 아니었다. 1925년 이라크 북부에서 발굴된 누지(Nuzi, BC 15세기) 점토판들은 이 관행을 자세히 적는다 — 한 결혼 계약서는 “아내가 자녀를 낳지 못하면 여종을 들여 자손을 보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여종이 낳은 아이를 본부인의 자식으로 삼는 절차까지 규정한다. 족장 시대 관습이 고대 근동 사회의 법률 전통에 정확히 들어맞음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다만 관습이 맞다고 해서 결과까지 맞은 건 아니었다.
3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산 지 10년이 지난 뒤였다. 사래는 자기 여종 하갈을 데려다 남편 아브람에게 아내로 주었다.
하갈의 임신과 갈등
4 아브람이 하갈에게 들어갔다. 하갈이 임신했다.
그런데 임신한 것을 알게 된 하갈이 자기 여주인 사래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5 사래가 아브람에게 말했다.
“내가 받는 이 억울함은 당신이 책임져야 해요. 내가 내 여종을 당신 품에 두었더니, 그녀가 임신한 것을 알고 나를 무시하잖아요. 여호와께서 당신과 나 사이를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6 아브람이 말했다.
“당신의 여종은 당신 손에 있잖소. 당신 뜻대로 하시오.”
사래가 하갈을 가혹하게 대했다. 하갈은 사래 앞에서 도망쳤다.
광야의 샘가
7 여호와의 사자가 술(Shur) 가는 길 — 이집트와 가나안 사이 광야 — 광야의 샘가에서 하갈을 만났다.
8 그가 말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하갈이 대답했다.
“저는 내 여주인 사래에게서 도망치는 중입니다.”
9 여호와의 사자가 말했다.
“네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그녀 앞에 순종하라.”
10 “내가 네 자손을 크게 번성시켜, 셀 수 없을 만큼 많게 하겠다.”
11 “네가 임신하였고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기 때문이다.”
이스마엘(יִשְׁמָעֵאל)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뜻이다.
12 “그는 들나귀 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 것이며, 그는 모든 형제 앞에서 살리라.”
엘 로이 — 나를 보시는 하나님
13 하갈은 자기에게 말씀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당신은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여기서 나를 보시는 분을 보았다.”
14 그래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Beer Lahai Roi) 라고 불렀다. ‘나를 보시는 살아계신 분의 우물’이라는 뜻이다. 그 샘은 네게브(Negev) 광야에 있었다.
사래도 아니고, 아브람도 아니었다. 도망친 여종, 이집트인 하갈에게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셨다. 그리고 이름을 물으셨다. 그녀의 이름을 알고 계셨다.
이스마엘의 탄생
15 하갈이 아브람에게 아들을 낳았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Ishmael)이라 했다.
16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을 때 아브람의 나이는 86세였다.
75세에 떠나라는 명령을 받고, 11년이 흘렀다. 약속은 아직 정확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스마엘은 아브람의 아들이지만, 사래의 아들은 아니었다.
이스마엘 — 이슬람 전승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꾸란(2:127-129)은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함께 메카(Mecca)의 카바(Kaaba) 신전을 세웠다고 적는다. 무슬림은 자신의 신앙적 혈통을 이스마엘 — 특히 그의 둘째 아들 게달(Kedar, 25:13에 등장) — 을 거쳐 무함마드까지 잇는다. 같은 아브라함, 다른 아들에게서 출발하는 두 신앙의 갈래가 여기서 시작된다. 그 갈림은 17장(언약), 21장(추방), 22장(결박)에서 단계적으로 더 깊어진다.
다음 장 — 13년이 더 지난다. 아브람이 99세가 되던 날,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신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이름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