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장 산 위에서

올라가시다

1 그가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셨다. 앉으시니 제자들이 그에게 나아왔다.

2 그가 입을 열어 가르치셨다.

예수가 앉는다. 랍비 전통에서 가르치는 자는 앉는다. 일어서는 것은 다른 행위다. 제자들이 나아온다 — 무리가 아니라 제자들에게 먼저 가르치신다. 산은 모세가 율법을 받은 시내산을 연상시킨다. 마태는 의도적으로 이 자리를 고른다.


팔복

3 “마음이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슬퍼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온유한 자들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이어받을 것이다.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7 긍휼히 여기는 자들은 복이 있다.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8 마음이 청결한 자들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9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릴 것이다.

10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들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나로 인해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 너희는 복이 있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다. 너희보다 앞선 선지자들을 이와 같이 박해했다.”

팔복(八福 — Beatitudes)에서 여덟 번 반복되는 구조가 있다. “~한 자들은 복이 있다. ~하리라.” 첫 번째(3절)와 마지막(10절)은 같은 결론이다 —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나머지 여섯은 미래형이다. 복은 지금 조건이 좋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가난하고, 슬프고, 박해받는 자들이 선언된다. 이것이 선언이지 격언이 아닌 이유다.

누가복음 6:20-22의 ‘평지수훈’과 비교하면 차이가 있다. 누가는 “가난한 자들”이라고 하고 마태는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라고 한다. 누가에는 “화 있을진저”의 대조 쌍이 있지만 마태에는 없다. 마태의 복음은 더 많은 사람을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열려 있다.


소금과 빛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겠느냐? 더이상 쓸 데가 없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도시는 숨길 수 없다.

15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않는다. 등경 위에 두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빛을 준다.

16 이와 같이 너희 빛이 사람들 앞에 비추게 하여 그들이 너희 선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율법을 완성하러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중에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 불릴 것이다. 그러나 이를 행하고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크다 불릴 것이다.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의 의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더 낫지 않으면 하늘 나라에 결코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이 선언은 뒤에 이어지는 여섯 대조를 위한 서론이다. 마태는 예수가 율법을 폐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한다. “완성”(플레로사이 — πληρῶσαι)의 의미를 놓고 해석이 갈린다.

예언 성취설: 이레네우스(『이단 반박』 IV) 이래 교부 다수와 종교개혁가들의 표준 — 율법 전체가 메시아를 향한 예언이고 예수가 그 의미를 성취한다는 입장. R.T. 프랜스(NICNT 마태복음 주석 2007)가 현대의 정교한 변호.

도덕적 충만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칼뱅(『기독교 강요』 II.7–8)이 강조 — 율법의 외적 요구를 더 철저히 내면화해 채운다는 뜻.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 하인리히 율리우스 홀츠만도 같은 노선.

종말론적 변혁설: W.D. 데이비스(『바울과 랍비 유대교』 1948), 데일 앨리슨(『새 모세 마태』 1993)은 메시아 시대에 율법이 새 차원으로 변형된다는 종말론적 토라(Eschatological Torah) 가설을 정교화 — 쿰란 문서(11QTemple)에서도 확인되는 1세기 유대교 내부의 메시아 시대 율법 갱신 기대를 마태가 차용했다고 본다.

율법 종결설: 19세기 F.C. 바우어 와 일부 자유주의자는 마태가 본래 폐기적 예수를 보수화한 것으로 본다 — 다만 본문 자체는 명백히 반대로 말하므로 소수설.


여섯 대조

21 “옛 사람들에게 ‘살인하지 말라, 살인하는 자는 심판을 받는다’ 하였음을 너희가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화내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을 것이다. 형제에게 ‘라가(쓸모없는 자)‘라고 하는 자는 공의회 앞에 설 것이다. ‘미련한 자’라고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던져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제단에 예물을 드리다가 형제가 너에게 원망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거기서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해하고, 그런 다음에 예물을 드려라.

25 너를 고소하는 자와 길에 있을 때 빨리 화해하라. 그 고소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재판관이 옥리에게 넘겨줄 수 있다. 그러면 네가 감옥에 갇힌다.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마지막 한 푼까지 갚기 전에는 거기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27 “옛 사람들에게 ‘간음하지 말라’ 하였음을 너희가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마음으로 그녀와 간음한 것이다.

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버려라.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한 지체를 잃는 것이 낫다.

30 만일 네 오른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잘라 버려라. 온 몸이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한 지체를 잃는 것이 낫다.”

31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써주라’ 하였다.

3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면 그녀를 간음하게 하는 것이다. 버림받은 아내를 취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33 “또 옛 사람들에게 ‘거짓 맹세를 하지 마라, 주께 맹세한 것은 지키라’ 하였음을 너희가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마라. 하늘로도 하지 마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이기 때문이다.

35 땅으로도 하지 마라. 이는 그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마라. 이는 큰 왕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36 네 머리로도 맹세하지 마라. 너는 머리카락 하나도 희고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37 오직 너희 말은 ‘예’면 ‘예’, ‘아니오’면 ‘아니오’라 하라. 이것을 넘어서는 것은 악에서 나는 것이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였음을 너희가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마라. 누구든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 대라.

40 또 너를 고소하여 속옷을 빼앗으려는 자에게 겉옷도 주어라.

41 누구든지 너를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와 함께 십 리를 가라.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서 빌리고자 하는 자를 돌아서지 말아라.”

43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음을 너희가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는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들이 되게 하려 함이다.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에게 해를 비추시며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비를 내리신다.

46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겠느냐? 세리도 그렇게 하지 않느냐?

47 또 너희가 형제들만 인사하면 남보다 더한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그렇게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온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옛 사람들에게 들었다 —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대조 구조가 여섯 번 반복된다. 이것은 율법을 폐기하는 선언이 아니다. 율법의 외적 준수에서 내면의 동기까지 파고드는 심화다. 살인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분노의 뿌리를 다스려야 한다.

“옛 사람들에게 들었다(에레테 — ἐρρέθη)“의 대상이 무엇인가? 모세 율법 자체설: 16세기 소키누스(반삼위일체 신학자)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이 채택 — 예수가 토라를 직접 폐기·갱신했다는 입장. 랍비 전통설: 요아힘 예레미아스(『예수의 메시지』 1971), 데이비드 도브(『랍비 유대교와 신약』 1956), W.D. 데이비스(『산상설교의 배경』 1964)가 정식 변호 — ‘에레테’는 랍비 인용 도입구의 셈어 어법(쉐넨 — שנן)에 대응되며, 예수는 모세가 아니라 당대 랍비들의 표층 해석을 비판한다. 사해문서 4QMMT의 율법 해석 논쟁이 비슷한 패턴을 보여준다는 것이 추가 근거.

“눈은 눈으로” — 탈리오 법칙(lex talionis)이다. 원래 이 법은 복수의 상한선을 정한 것이었다 — 눈 하나를 잃었으면 최대 눈 하나만 가져올 수 있다는 제한 원칙. 무제한 보복을 막기 위한 법이었다. 예수는 그 제한 원칙을 넘어 아예 보복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