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1장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요한의 질문
1 예수가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신 뒤에 그들의 도시들에서 가르치시고 선포하시러 거기서 떠나가셨다.
2 요한이 감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시는 일들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그에게 묻게 했다.
“오실 그분이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4 예수가 대답하셨다.
“가서 너희가 듣고 보는 것들을 요한에게 알려라.
5 맹인들이 보고, 다리 저는 자들이 걷고, 나병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자들이 듣고,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6 나를 인해 걸려 넘어지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
요한의 질문은 놀랍다. 예수의 세례를 준 요한이 감옥에서 의심하고 있다. 그는 메시아가 심판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다(3:12). 그런데 예수는 고치고 있다. 그 간격에서 요한의 질문이 나왔다. 예수의 답은 이사야 35:5-6, 61:1의 언어다. 기적들 자체가 답이다. “나를 인해 걸려 넘어지지 않는 자”는 기적이 아니라 복음 선포로 메시아를 확인하지 못할 때를 가리킨다.
요한에 대하여
7 그들이 떠나자 예수가 무리에게 요한에 대해 말씀하셨다.
“너희가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느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그러면 무엇을 보러 나갔느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는 자들은 왕궁에 있다.
9 그러면 무엇을 보러 나갔느냐? 선지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더 나은 사람이다.
10 그는 이렇게 기록된 자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할 것이다.’
11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들 중에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이가 없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도 그보다 크다.
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력을 받아왔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그것을 빼앗으려 한다.
13 모든 선지자들과 율법이 요한까지 예언하였다.
14 너희가 받아들이려 한다면, 그가 오리라고 한 엘리야다.
15 귀 있는 자는 들어라.”
“폭력을 받아왔다”(비아조 — βιάζεται)는 번역이 논쟁적이다. 헬라어 동사가 중간태(능동적 자기주장)와 수동태(외부 폭력의 대상) 양쪽으로 모두 분석 가능해 의미가 정반대로 갈린다.
능동적 의미(하늘 나라가 힘차게 전진한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마태복음 설교』 37) 이래 가톨릭 영성 전통과 종교개혁기 칼뱅 의 표준 해석. 1949년 G.E. 라드(George Eldon Ladd, 『하나님 나라의 임재』)가 현대적 변호 — 하나님 나라가 능동적으로 침투해 들어온다는 것.
수동적 의미(폭력에 시달려왔다): 1937년 에른스트 케제만(Ernst Käsemann)과 1956년 에른스트 헨헨, W.G. 큄멜(Werner Kümmel)이 정식 변호. 데이비스 & 앨리슨 ICC(1991)도 다수설로 수용.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혀 곧 처형될 상황(11:2), 그리고 곧 예수 자신이 당할 운명을 고려한 문맥적 독법.
이 세대는 어린아이 같다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겠느냐? 그들은 시장 안에서 앉아 다른 아이들에게 이렇게 부르는 아이들과 같다.
17 ‘우리가 피리를 불었지만 너희가 춤추지 않았다. 우리가 슬픈 노래를 불렀지만 너희가 울지 않았다.’
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그들이 ‘그는 귀신 들렸다’고 말했다.
19 인자가 와서 먹고 마시자 그들이 ‘보라, 먹기를 즐기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요,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는 그 행위들로 옳다 함을 받는다.”
회개하지 않은 도시들
20 그 때에 예수가 자기의 능한 일들을 가장 많이 행한 도시들이 회개하지 않으므로 꾸짖으셨다.
21 “화 있다, 고라신(Chorazin · ㉸ 코라진)아! 화 있다, 벳새다(Bethsaida · ㉸ 벳사이다)야! 너희 안에서 행해진 능한 일들이 두로(Tyre · ㉸ 티로)와 시돈(Sidon · ㉸ 시돈)에서 행해졌더라면 그들이 오래전에 베옷과 재로 회개하였을 것이다.
22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더 견딜 만할 것이다.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질 것이냐? 음부까지 낮아질 것이다. 네 안에서 행해진 능한 일들이 소돔에서 행해졌더라면 그것이 오늘날까지 있었을 것이다.
24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더 견딜 만할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25 그 때에 예수가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여, 이것들을 지혜롭고 깨닫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신 것을 감사합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여. 이것이 아버지 앞에서 기뻐하신 뜻이었습니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아들이 알리기 원하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모두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지고 내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쉼을 얻을 것이다.
30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
이 초청이 신약 전체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말 중 하나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 — 당시 유대 민중은 로마의 세금과 종교 지도자들이 부과한 율법 해석의 무게 아래 있었다. 예수는 그들에게 새 멍에를 제시한다. “멍에”는 랍비 전통에서 스승의 가르침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예수의 멍에가 쉽다는 것은 게으름을 허락한다는 뜻이 아니다. 무거운 종교적 짐과 다른 종류의 요구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