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0장 다른 불
나답과 아비후
1 아론의 아들 나답(Nadab)과 아비후(Abihu)가 각자 향로를 가져다 거기에 불을 담고 향을 얹어 여호와 앞에 드렸다.
여호와가 명하지 않으신 다른 불이었다.
2 여호와 앞에서 불이 나와 그들을 태웠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었다.
“다른 불” — 히브리어 “에쉬 자라(אֵשׁ זָרָה)”, 직역하면 ‘낯선 불’, ‘이방의 불’. 문제는 정확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본문이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규정된 제단 불이 아닌 다른 불을 사용했는가? 규정되지 않은 시간에 향을 드렸는가? 규정되지 않은 방식으로 지성소에 들어갔는가? 술에 취한 채 들어갔는가(9절이 그 가능성을 암시한다)? 해석이 나뉜다. 본문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결과만 말한다.
충격의 맥락 — 9장 마지막 장면에서 온 백성이 소리를 지르며 엎드렸다. 그 기쁨의 절정에서 10장이 시작된다. 가장 높은 순간 바로 다음에 추락이 온다. 아론은 두 아들이 불에 타 죽는 것을 본 날 — 임직 8일째 날이다. 기쁨의 하루가 비극의 하루가 되었다.
모세의 말
3 모세가 아론에게 말했다.
“여호와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나를 가까이하는 자들에게서 거룩하다는 것을 나타낼 것이다. 내가 온 백성 앞에서 영광을 받을 것이다.’”
아론은 침묵했다.
아론의 침묵 — 히브리어 “바이돔 아하론(וַיִּדֹּם אַהֲרֹן)”. ‘잠잠했다’, ‘침묵했다’. 두 아들이 눈앞에서 불에 타 죽었다. 그리고 아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침묵이 무엇인지 — 복종인가, 공포인가, 이해인가, 절망인가 — 본문은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모세의 말을 들은 후 잠잠했다고만 한다. 성경에서 가장 무거운 침묵 중 하나다.
시체를 치우다
4 모세가 아론의 삼촌 웃시엘(Uzziel)의 아들 미사엘(Mishael)과 엘사반(Elzaphan)을 불렀다.
“가서 너희 형제들을 성소 앞에서 진영 밖으로 옮겨라.”
5 그들이 가서 그들을 옷째 진영 밖으로 옮겼다. 모세가 말한 대로였다.
6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 엘르아살(Eleazar · ㉸ 엘아자르)과 이다말(Ithamar · ㉸ 이타마르)에게 말했다.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마십시오. 죽지 않으려면, 온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으려면. 여호와의 불로 인해 죽은 형제들을 위해 이스라엘 온 족속이 슬피 울게 하십시오.
7 회막 문 밖으로 나가지 마십시오. 죽게 됩니다. 여호와의 기름이 여러분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모세의 말대로 했다.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마라 — 이것은 당시 유대 문화에서 애도의 의식이었다. 아론은 두 아들의 죽음에도 공식적인 애도 행위를 할 수 없었다. 제사장이 성막 봉사 중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백성은 울었다. 아론 대신 이스라엘 전체가 울었다. 이 장면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울 수도 없었다.
엘르아살과 이다말 — 아론의 남은 두 아들이 이 이름으로 처음 소개된다. 나답과 아비후가 죽으면서 이 두 아들이 아론의 후계자가 된다. 엘르아살이 훗날 대제사장직을 이어받는다(민수기 20장).
술 금지
8 여호와가 아론에게 직접 말씀하셨다.
9 “너나 네 아들들은 회막에 들어갈 때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마라. 죽지 않으려면. 이것은 대대로 영원한 규례다.
10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고,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구별하기 위해.
11 여호와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한 모든 율법을 그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술 금지와 나답·아비후의 연관 — 이 규례가 나답·아비후 사건 직후에 나온다는 점에서, 많은 해석자들은 그들이 술에 취한 채 분향했을 가능성을 읽는다. 직접 인과 관계는 명시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야기 배열이 그 가능성을 암시한다. 취한 상태의 판단력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못한다. 제사장의 가장 기본 능력이 구별(하브달라)이기 때문이다.
제사장의 몫을 먹어야 한다
12 모세가 아론과 남은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말했다.
“여호와의 화제에서 남은 소제를 가져다 제단 옆에서 발효시키지 않고 먹어라. 가장 거룩한 것이다.
13 거룩한 곳에서 먹어라. 여호와의 화제 중 네 몫, 네 아들들의 몫이다. 여호와가 나에게 명하신 대로다.
14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는 정한 곳에서 너와 네 아들딸들이 먹어라.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에서 네 몫, 네 아들들의 몫으로 준 것이다.
15 화목제 기름과 함께 든 뒷다리와 흔든 가슴을 가져와 여호와 앞에서 흔들어 요제로 드린다. 그것이 너와 네 아들들의 영원한 몫이다. 여호와가 명하신 대로다.”
속죄제 염소 — 태웠느냐, 먹었느냐
16 모세가 속죄제 염소를 열심히 찾았다. 그런데 벌써 다 태운 것이었다.
모세가 아론의 남은 두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화를 냈다.
17 “그 속죄제 고기를 왜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않았느냐? 가장 거룩한 것이다. 그걸 여러분에게 주신 것은 회중의 죄를 지고 여호와 앞에서 속죄하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18 “고기 피를 성소 안으로 가져가지 않았다면, 내가 명한 대로 거룩한 곳에서 먹어야 했다.”
19 아론이 모세에게 말했다.
“오늘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속죄제와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내가 오늘 속죄제 고기를 먹었다면, 여호와 보시기에 좋았겠습니까?”
20 모세가 듣고 좋게 여겼다.
아론의 단 두 마디 — 이 장에서 아론은 딱 한 번 말한다(19절). 두 아들이 죽은 날, 먹지 않은 제물에 대한 해명이다. 그는 변명하지 않는다. “오늘 이런 일이 생겼다”고만 한다. 슬픔 중에 먹을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모세가 좋게 여겼다. 레위기에서 가장 인간적인 장면이다. 규례 사이에서 한 아버지의 고통이 비친다.
나답·아비후 사건의 신학 — 이 사건이 왜 이렇게 극적인 결말로 끝났는지, 본문은 명시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여호와가 명하지 않으신 다른 불”이라는 표현만 있다. 권위 없는 예배의 위험성, 제사장적 거룩의 절대성, 하나님과의 만남이 인간의 방식으로 제어될 수 없다는 신학이 담겨 있다. 기독교 신학에서 이 사건은 “하나님이 예배받으시는 방법을 스스로 정하신다”는 원칙의 근거로 인용된다.
이스라엘 왕국 시대까지의 여파 — 나답의 이름은 나중에 이스라엘 왕(여로보암의 아들, 열왕기상 15장)에게 붙여지는데, 그도 죽임을 당한다. 이름의 반향인지 우연인지 본문은 말하지 않는다. 나답·아비후의 기억은 이스라엘 제사장 문화에 깊이 새겨졌다.
다음 장 — 드라마에서 일상으로 돌아온다. 어떤 동물을 먹어도 되고 안 되는지의 목록.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분류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