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13장 웃사의 죽음
다윗의 제안
1 다윗이 천부장과 백부장 곧 모든 지도자들과 의논했다.
2 다윗이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했다.
“만약 여러분이 좋게 여기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면, 우리가 이스라엘 모든 지방에 남아 있는 우리 형제들과 초원 성읍들에 있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우리에게 모이게 하고,
3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옮겨 옵시다. 우리가 사울 때에는 그 앞에 구하지 않았습니다.”
4 온 회중이 그 일을 옳게 여겼다. 온 백성이 그 일을 옳게 여겼다.
역대기의 다윗은 독단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지도자들과 의논한다. 온 회중에게 묻는다. 이것이 역대기가 그리는 이상적인 왕의 모습이다. 사무엘하 6장에서도 다윗이 언약궤를 옮기려 했지만, 거기서 역대기처럼 의논과 동의의 과정이 강조되지는 않는다. 역대기는 이 과정을 전면에 둔다.
“사울 때에는 그 앞에 구하지 않았습니다.” — 이 한 마디가 사울과 다윗의 차이를 말한다. 사울은 하나님의 궤를 찾지 않았다. 다윗은 그것을 중심으로 삼으려 한다. 하나님께 묻는 왕과 묻지 않는 왕. 역대기가 반복하는 주제다.
기럇여아림에서 출발
5 다윗이 이스라엘 무리를 다 모으니, 애굽 강에서부터 하맛(Hamath) 어귀까지였다. 하나님의 궤를 기럇여아림(Kiriath-jearim)에서 가져오려 함이었다.
6 다윗이 온 이스라엘과 함께 유다의 바알라(Baalah — 기럇여아림의 또 다른 이름)로 올라갔다.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궤를 가져오려 함이었다.
7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아비나답(Abinadab)의 집에서 새 수레에 싣고 나왔다. 웃사(Uzzah)와 아히오(Ahio)가 그 수레를 몰았다.
8 다윗과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노래하였다.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을 연주했다.
음악이 있었다. 수금, 비파, 소고, 양금, 제금 — 다섯 가지 악기. 공동체 전체가 기쁨으로 참여한 행렬이었다. 그 기쁨이 한순간에 꺾인다.
웃사의 죽음
9 그들이 기돈(Chidon)의 타작마당에 이르렀다. 소들이 뛰었다. 웃사가 손을 내밀어 궤를 붙잡았다.
10 여호와가 웃사에게 진노하사 그가 손을 대었으므로 거기서 그를 치셨다. 그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었다.
11 다윗이 여호와가 웃사를 치셨으므로 분하여했다. 그 곳을 베레스 웃사(Perez-uzzah — ‘웃사의 터짐’) 라 불렀다. 지금까지 그 이름으로 불린다.
웃사는 왜 죽었는가. 이 질문은 성경 독자들이 오랫동안 씨름해 온 것이다. 역대기 15장 13절에 답이 있다 — “우리가 처음에는 하나님의 궤를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율법은 언약궤를 레위인이 어깨로 메도록 규정했다(민수기 4:15). 수레로 운반하는 것은 블레셋 방식이었다(사무엘상 6장). 이스라엘이 블레셋 방식을 그대로 따른 것이 문제였다. 웃사 개인의 의도가 아니라, 방식 자체가 어긋났다.
그러나 이것이 “충분한” 설명인지는 입장이 갈렸다. 소들이 뛰었다. 궤가 쓰러질 것 같았다. 웃사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죽었다.
신적 거룩함 변호: 4세기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의 『기독교 교리』 3권 22장은 웃사의 죽음을 거룩함의 침해 불가성으로 풀었다. 16세기 장 칼뱅(John Calvin) 의 사무엘서 주석은 의도와 무관하게 율법 위반은 죄가 된다는 더 강한 입장으로 발전시켰다 — “선의가 율법을 대신할 수 없다.”
본문의 윤리적 침묵을 인정: 1965년 헤르베르트 하그(Herbert Haag) 의 가톨릭 사무엘서 주석은 본문이 다윗의 분노를 그대로 기록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 11절의 “분하여했다(וַיִּחַר)“는 웃사의 죽음이 직관적 정의에 어긋난다는 다윗 자신의 항의로 읽힌다. 1986년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 의 사무엘서 주석은 이 본문을 “신학적 거리감”의 사례로 분석했다 — 본문이 답을 주지 않는 것 자체가 문학적 의도라는 입장.
12 다윗이 그 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말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궤를 내게 가져오리이까?”
13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City of David)으로 옮겨 오지 않고, 오벧에돔(Obed-edom)의 집으로 옮겨 두었다.
14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 가족과 함께 석 달을 머물렀다. 여호와가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두 가지 반응이 교차한다. 다윗의 분노 — “분하여했다.” 그리고 다윗의 두려움 —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궤를 내게 가져오리이까.” 이 두 감정이 솔직하게 기록된다. 역대기의 다윗은 완벽하지 않다. 분노하고, 두려워하고, 멈춘다.
오벧에돔의 집. 궤가 거기 석 달 머물렀다. 오벧에돔의 가족 전체에게 복이 임했다. 이 ‘복’이 다윗에게 다시 시도할 용기를 준다. 하나님의 궤는 저주가 아니라 복의 원천이었다 — 규정된 방식으로 다룰 때.
오벧에돔은 ‘가드 사람’이라는 표현이 사무엘하 6:10에 있다. 역대기는 그를 레위 사람으로 연결한다(15:18, 21). 같은 사람이 두 책에서 다르게 표현된다. 학자들은 이 차이를 두고 논한다 — 블레셋 가드 출신의 레위인이었는가, 아니면 레위 지파 내 장소 이름인 가드에서 온 것인가. 결론은 나지 않았다.
다음 장 — 다윗의 왕국 건설. 두로 왕 히람이 물자를 보내고, 블레셋이 침략해 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