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25장 예루살렘의 함락, BC 587

포위가 시작되다

1 시드기야 왕 구년 열째 달 열흘에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자기의 모든 군대와 함께 예루살렘을 치러 왔다. 성을 포위하고 사방에 공격용 둑을 쌓았다.

2 성이 시드기야 왕 십일년까지 포위되었다.

BC 588년 1월부터 BC 587년 7월까지, 약 18개월의 포위였다. 예루살렘 안에서는 굶주림이 극에 달했다. 예레미야애가는 이 포위의 공포를 시로 남겼다. “자기 자녀들을 자신이 먹었다” — 이것이 시적 과장이 아니라 실제였음을 신명기 28:53이 이미 경고했다.

3 사월 구일에 성 안에 기근이 심하여 나라 백성에게 먹을 것이 없었다.


성벽이 무너지다

4 성벽이 뚫렸다. 모든 군사가 밤에 성문 사이 왕의 동산 길을 통해 도망했다. 갈대아인들이 사방으로 성읍을 에워쌌으나 왕이 아라바 길로 갔다.

5 갈대아인의 군대가 왕을 뒤쫓아 여리고(Jericho · ㉸ 예리코) 평원에서 시드기야를 따라잡았다. 그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졌다.

6 그들이 왕을 잡아 리블라(Riblah)에 있는 바빌론 왕에게 데려갔다. 바빌론 왕이 그에게 판결을 내렸다.

7 그들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 앞에서 죽였다.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빌론으로 데려갔다.

시드기야의 운명은 성경에서 가장 잔혹한 장면 중 하나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이 자기 아들들의 죽음이었다. 그 다음 눈이 뽑혔다. 평생 그 기억만 남았다. 에스겔이 예언했다 — “그가 바빌론을 볼 것이나 그 땅을 보지 못하리라”(에스겔 12:13). 예루살렘에서 도망쳐 살아서 바빌론에 도착했으나, 눈이 없어 바빌론을 볼 수 없었다. 예언이 그렇게 성취됐다.


성전이 불타다

8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 십구년 다섯째 달 칠일에 바빌론 왕의 신하 느부사라단(Nebuzaradan · ㉸ 느부자르아단) 호위대장이 예루살렘에 왔다.

9 그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살랐다. 또 예루살렘의 모든 집들과 모든 큰 집들을 불살랐다.

10 호위대장과 함께 있는 갈대아인의 모든 군대가 예루살렘 사방 성벽을 헐었다.

11 성 안에 남아 있는 백성들과 바빌론 왕에게 항복한 자들과 나머지 무리를 느부사라단 호위대장이 사로잡아 갔다.

12 그러나 호위대장이 땅의 가난한 자들 일부를 남겨두어 포도원을 관리하고 밭을 갈게 했다.

BC 587년(혹은 586년 — 날짜 계산법에 따라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다)의 일이다. 이날이 유대력 아브(Av)월 9일이었다. 이 날을 티샤 베아브(Tisha B’Av)라 한다. 유대교 최대 금식일이다. 제1성전 파괴일, 그리고 훗날 제2성전도 로마에 의해 같은 날에 파괴됐다(AD 70년). 유대인들은 오늘도 이날 금식하고 예레미야애가를 읽는다. 이 하루가 유대 민족의 기억 속에 가장 깊이 박힌 날이다.


성전 기물들

13 갈대아인들이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청동 기둥들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놋바다를 부수어 그 청동을 바빌론으로 가져갔다.

14 그들이 냄비들과 부삽들과 부집게들과 대접들과 모든 청동 기물들도 가져갔다.

15 호위대장이 불 접시들과 대접들, 순금이나 순은으로 된 것들을 가져갔다.

16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해 만든 기둥 둘과 바다 하나와 받침들 — 이 기물들의 청동을 계산할 수 없었다.

17 기둥 하나의 높이가 열여덟 규빗이고, 위에 청동으로 만든 기둥 머리가 있었다. 기둥 머리의 높이가 세 규빗이고, 격자 모양과 석류들이 청동으로 기둥 머리 사방에 있었다. 다른 기둥도 격자 모양과 같았다.


지도자들의 처형

18 호위대장이 대제사장 스라야(Seraiah)와 버금 제사장 스바냐(Zephaniah · ㉸ 스파냐)와 세 문지기를 잡았다.

19 성 안에서 군사들을 맡은 환관 하나와, 성 안에서 발견된 왕의 측근 다섯 명과, 나라 백성을 징집하는 군대 장관의 서기관과, 성 안에서 발견된 나라 백성 육십 명을 잡았다.

20 느부사라단 호위대장이 이들을 잡아 리블라에 있는 바빌론 왕에게 데려갔다.

21 바빌론 왕이 하맛 땅(Hamath) 리블라에서 그들을 쳐서 죽였다.

이렇게 유다가 자기 땅에서 사로잡혀 갔다.


유다 땅의 총독

22 유다 땅에 남아 있는 백성 —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겨둔 자들 — 을 위해 왕이 사반(Shaphan)의 손자, 아히감(Ahikam)의 아들 그달리야(Gedaliah)를 총독으로 삼았다.

23 군대의 모든 장관들과 그들의 부하들이 바빌론 왕이 그달리야를 총독으로 삼았다는 소식을 듣고 미스바(Mizpah · ㉸ 미츠파)로 와서 그달리야에게 나아왔다. 느다냐(Nethaniah)의 아들 이스마엘(Ishmael)가레아(Careah)의 아들 요하난(Johanan)느도바(Netophah) 사람 단후멧(Tanhumeth)의 아들 스라야(Seraiah)마아가(Maacah) 사람의 아들 야아산야(Jaazaniah)가 그들과 함께였다.

24 그달리야가 그들과 그들의 부하들에게 맹세하며 말했다.

“갈대아인의 신하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 땅에 살며 바빌론 왕을 섬기십시오. 그러면 잘 될 것입니다.”

25 일곱째 달에 왕족인 엘리사마(Elishama)의 손자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열 명의 사람들과 함께 와서 그달리야를 쳐서 죽였다. 미스바에서 함께 있던 유다인들과 갈대아인들도 죽였다.

26 그러자 크고 작은 모든 백성들과 군대 장관들이 갈대아인들을 두려워하여 이집트로 갔다.

그달리야 암살로 유다 땅에 남은 지도부마저 사라졌다. 유대인들은 이 암살을 기억하기 위해 그달리야 금식(Tzom Gedaliah)을 매년 지킨다. 그달리야는 뭔가 가능성을 보여준 인물이었다. 무너진 땅에서 다시 시작하려 했다. 그 시작이 내부에서 잘렸다. 이스마엘은 왕족이었다 — 총독 자리를 탐낸 것이었다. 망국의 땅에서도 권력 다툼은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 빛

27 유다 왕 여호야긴(Jehoiachin · ㉸ 여호야킨)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되는 해, 바빌론 왕 에윌므로닥(Evil-merodach · ㉸ 에빌-므로닥)이 왕위에 오른 원년 열두째 달 스물일곱 날에 에윌므로닥이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풀어주었다.

28 그가 여호야긴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자기와 함께 바빌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 위에 두었다.

29 여호야긴이 죄수복을 벗었다. 남은 생애 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었다.

30 그가 사는 날 동안 날마다 왕에게서 양식을 받았다. 죽는 날까지 날마다.

열왕기의 마지막 장면이다. 성전은 불탔다. 예루살렘은 무너졌다. 백성은 흩어졌다. 그런데 마지막 다섯 절은 왕이 감옥에서 풀려나 왕의 식탁에서 먹는 이야기다. 파국 가운데 작은 빛이다. 이 장면은 바빌론 점토판으로 확인된다. 독일 고고학자 에른스트 발터 안드레(Ernst F. Weidner)가 1939년 베를린 박물관 보관 점토판들을 분석하여 여호야긴의 이름과 그의 다섯 아들들에게 지급된 기름과 식량 배급 목록을 확인했다. BC 592년경의 기록이다. “야우-킨, 유다의 왕” — 그렇게 새겨져 있었다. 감옥에서 왕의 식탁으로의 귀환. 그것이 열왕기가 멈추는 자리다.

왜 여기서 끝나는가. 절망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다. 민족이 망했다. 그러나 왕의 혈통이 살아남았다. 밥을 먹고 있다. 다윗에게 주어진 약속 — “네 후손의 나라가 영원하리라” — 이 불씨 하나로 남아 있다는 암시다. 열왕기는 거기서 이야기를 건넨다. 다음 이야기, 포로 이후의 이야기는 에스라와 느헤미야와 에스더가 이어받는다.


열왕기하 끝. 다윗이 왕이 되던 날부터 예루살렘이 불타는 날까지, 약 4백 년의 이야기였다. 하나님은 경고하셨다. 선지자들을 보내셨다. 기회를 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직 살아 있는 한 사람에게 밥을 먹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