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6장 아하스, 앗수르의 손을 잡다

아하스의 등장

1 르말리야의 아들 베가 십칠년에 유다 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Ahaz · ㉸ 아하즈)가 왕이 되었다.

2 아하스가 왕이 될 때 스무 살이었다.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 동안 다스렸다.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하지 않았다. 그의 조상 다윗과 달랐다.

3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했다. 이방인들이 행한 가증스러운 일들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했다.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했다”는 몰렉(Molech) 신에게 자녀를 바치는 제의로 해석된다. 구체적으로 불 속에 던지는 것인지, 불 옆을 지나는 의식인지 학계는 논쟁 중이다. 예루살렘 남쪽 힌놈 골짜기(Valley of Hinnom — 게헨나)가 이 제의 장소로 지목된다. 게헨나는 훗날 신약에서 지옥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아하스 이후 므낫세도 같은 제의를 반복했고, 요시야가 그 장소를 더럽혀 폐기했다(왕하 23:10).

4 또 아하스가 산당들과 언덕들과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제사하고 분향했다.


시리아-에브라임 전쟁

5 아람 왕 르신(Rezin · ㉸ 르친)과 이스라엘 왕 르말리야의 아들 베가가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왔다. 그들이 아하스를 포위했으나 이기지 못했다.

6 그때 아람 왕 르신이 엘랏(Elath · ㉸ 에랏)을 아람에 회복시키고 유다 사람을 엘랏에서 쫓아냈다. 아람 사람이 엘랏에 와서 오늘까지 거기 살고 있다.

이 전쟁이 시리아-에브라임 전쟁(Syro-Ephraimite War, BC 734년경)이다. 아람(시리아)과 북이스라엘(에브라임)이 동맹을 맺고 유다에 압박을 가했다. 목적은 아하스 대신 친아람 왕을 세워 앗수르에 대항하는 반아시리아 연합을 구성하려는 것이었다. 이사야서 7장이 바로 이 위기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이사야가 “임마누엘”을 예언한 것도 이때다(이사야 7:14).


앗수르에 굴복하다

7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Tiglath-pileser · ㉸ 티글랏-필에세르)에게 사신을 보냈다.

“나는 당신의 종이요, 당신의 아들입니다. 올라와서 나를 치는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의 손에서 구해주십시오.”

8 아하스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가져다가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다.

9 앗수르 왕이 그의 청을 들었다. 앗수르 왕이 다메섹(Damascus · ㉸ 다마스쿠스)으로 올라가서 그것을 점령하고, 그 백성을 길(Kir)로 사로잡아 가고, 르신을 죽였다.

아하스의 선택이 가져온 결과는 짧게 보면 성공이었다. 포위가 풀렸고, 아람이 무너졌다. 그러나 이사야가 경고한 대로 앗수르를 불러들임으로써 유다 자신이 앗수르의 속국이 되었다. “당신의 종이요, 당신의 아들”이라는 아하스의 표현은 외교적 수사이지만, 동시에 주권의 포기 선언이기도 했다. 이후 유다는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는 처지가 된다.


다메섹의 제단

10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 다메섹에 있는 제단을 보았다. 아하스 왕이 그 제단의 모형과 모든 설계를 제사장 우리야(Uriah)에게 보냈다.

11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것에 따라 제단을 만들었다.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그대로 만들어 완성했다.

12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 제단을 보았다. 왕이 제단에 나아가 거기서 번제물을 드렸다.

13 그가 번제와 소제를 드리고, 전제를 부어 드리고, 화목제의 피를 그 제단에 뿌렸다.

14 여호와 앞에 있던 청동 제단은 성전 앞에서 — 새 제단과 여호와의 성전 사이 — 에서 가져다가 새 제단 북편에 두었다.

15 아하스 왕이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령했다.

“아침 번제물과 저녁 소제물, 왕의 번제물과 그 소제물, 온 나라 백성의 번제물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이 큰 제단 위에서 드리고, 모든 번제와 희생제의 피를 이 제단에 뿌려라. 청동 제단은 내가 생각할 것이다.”

16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명령한 대로 다 행했다.

아하스가 다메섹 제단을 예루살렘에 복사한 것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치적 종속의 종교적 표현이었다. 정복자의 신을 모심으로써 속국 관계를 신앙으로 확인하는 행위였다. 제사장 우리야가 왕의 명령을 순종한 것은 성경에서 사제가 권력에 굴복한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이사야서 8장 2절에 “우리야 제사장”이 신실한 증인으로 언급되는데, 이 우리야와 같은 인물인지는 불분명하다.


성전 개조

17 아하스 왕이 물두멍 받침대의 옆판을 떼어내고, 물두멍을 그것에서 내렸다. 또 바다(청동 대야)를 그 밑에 있는 청동 소들에서 내려 돌 받침 위에 놓았다.

18 또 안식일용으로 성전에 세운 덮개와 바깥문을 여호와의 성전에서 옮겼다. 앗수르 왕 때문이었다.

아하스가 성전의 기물들을 개조한 것은 아마도 앗수르에 바칠 조공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이거나, 속국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솔로몬이 공들여 만든 성전 시설들이 하나씩 원래 목적에서 벗어나 시작됐다. 성전의 영적 훼손은 군사적 패배보다 먼저 시작된다. 열왕기 저자는 이 점을 놓치지 않는다.

19 아하스의 나머지 일들과 그가 행한 모든 것은 유다 왕들의 역대기에 기록되어 있다.

20 아하스가 죽어 조상들과 함께 자니 다윗 성에 묻혔다. 그의 아들 히스기야(Hezekiah · ㉸ 히즈키야)가 그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다음 장 —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는 아버지와 정반대였다. 그러나 그가 즉위하기 직전, 북왕국 이스라엘이 무너진다. 사마리아가 함락되고 열 지파가 사라진다. BC 7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