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장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되도다
빈 무덤
1 주간의 첫날, 아직 어두울 때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왔다. 무덤을 막은 돌이 옮겨진 것을 보았다.
2 그녀가 달려가서 시몬 베드로와 예수가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말했다.
“누군가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릅니다.”
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와서 무덤을 향해 갔다.
4 둘이 함께 달렸는데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서 먼저 무덤에 이르렀다.
5 몸을 숙여 들여다보니 세마포가 놓여 있었다. 그러나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 와서 무덤 안에 들어갔다. 세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그리고 예수의 머리를 쌌던 수건도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따로 한 곳에 개어 있었다.
8 그러자 먼저 무덤에 이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보고 믿었다.
9 아직 그들은 예수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야 한다는 성경을 이해하지 못했다.
10 제자들이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수건(소우다리온 — σουδάριον)이 “따로 한 곳에 개어(엔테튈리그메논 — ἐντετυλιγμένον, 둘둘 말려)” 있었다. 헬라어 분사가 ‘개어 있다’와 ‘말려 있다’로 모두 옮겨질 수 있다.
도굴 반증설: 5세기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요한복음 설교』 85)가 처음 정식화 — 도둑이라면 시신과 함께 천을 가져가거나 어지럽게 던졌을 텐데 정돈된 모습은 의도적 부활을 시사한다는 변증학적 논증.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부활의 역사적 변호』 1989)가 현대의 대표적 옹호자.
허물벗기 모티프설: 1969년 레이먼드 브라운(Anchor Bible 요한복음)은 나사로(11:44)와 대조시킨다 — 나사로는 천에 묶인 채 나왔지만(천을 풀어주어야 했다), 부활한 예수는 천만 남기고 빠져나갔다는 것. 죽음 자체를 벗어났다는 신학적 표지.
세마포·수건 분리설: N.T. 라이트(『하나님의 아들의 부활』 2003)는 머리 수건이 별도 위치에 놓인 점을 1세기 유대 매장 관습 — 머리는 별도 천으로 감쌌다 — 의 정확한 반영으로 본다. 다만 그것을 본 제자가 믿었다고 한다. 믿음은 사진이 아니라 실재의 흔적에서 시작된다.
마리아에게 나타나시다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울면서 무덤 안을 들여다보았다.
12 흰옷을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신이 놓여 있던 곳에 앉아 있었다. 하나는 머리 쪽에, 하나는 발 쪽에.
13 그들이 마리아에게 물었다.
“여인이여, 왜 울고 있습니까?”
“누군가 내 주님을 가져갔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모릅니다.”
14 이 말을 하고 뒤를 돌아봤다. 예수가 서 계셨다. 그러나 예수인 줄 알지 못했다.
15 예수가 말씀하셨다.
“여인이여, 왜 울고 있습니까? 누구를 찾습니까?”
마리아는 동산지기인 줄 알고 말했다.
“선생님, 당신이 그분을 옮겨놓았다면, 어디에 두었는지 말해주십시오. 내가 가져가겠습니다.”
16 예수가 말씀하셨다.
“마리아야!”
그녀가 돌아서서 히브리어로 말했다.
“랍오니(Rabboni)!”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17 예수가 말씀하셨다.
“나를 붙잡지 마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 내 형제들에게 가서 말해라.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18 막달라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가서 알렸다.
“주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자기에게 하신 말씀들을 전했다.
막달라 마리아 — 빈 무덤의 첫 목격자, 부활하신 예수를 처음 본 사람,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부활을 알린 사람. 공관복음도, 요한복음도 모두 이 사실을 기록한다. 1세기 유대 사회에서 여성의 증언은 법적 효력이 없었다. 그러나 복음서는 모두 여성을 부활의 첫 증인으로 기록한다. 후대에 이를 창작했다면 남성 증인을 내세웠을 것이다. 역사가들은 이 점을 부활 전승의 진정성 논거 중 하나로 보기도 한다.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다
19 그날 — 주간의 첫날 — 저녁이었다.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잠그고 모여 있었다.
예수가 오셔서 가운데 서시며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주셨다.
제자들이 주님을 보고 기뻐했다.
21 예수가 다시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아버지가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면 그들의 죄가 용서될 것이다. 너희가 누구의 죄를 붙들면 붙들린 것이다.”
“숨을 불어넣으시며” — 창세기 2:7에서 하나님이 아담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장면과 같은 동사다(에네퓌세센). 첫 창조에서 생명을 준 방식으로 새 창조가 시작된다. 성령을 받는 것은 새로운 탄생이다 — 3장의 “다시 태어나야 한다”가 여기서 실현된다.
도마
24 열두 제자 중 하나인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가 오셨을 때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말했다.
“우리가 주님을 보았소.”
도마가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그분의 손에서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못 자국에 넣어보고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으면 믿지 않겠소.”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었고 도마도 함께 있었다. 문이 잠겨 있었는데 예수가 오셔서 가운데 서시며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27 그리고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어라.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라. 믿지 않는 사람이 되지 말고 믿는 사람이 되어라.”
28 도마가 대답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29 예수가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사람들이 복되도다.”
도마의 고백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호 퀴리오스 무 카이 호 테오스 무)” — 요한복음의 절정이다. 처음에 “나는 믿지 않겠다”고 했던 사람이 예수를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1:1 “말씀은 하나님이셨다”에서 시작된 고백이 20:28에서 육성으로 완성된다. 처음과 끝이 맞닿는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 — 이 축복은 독자를 향한 것이다. 도마는 보았다. 그러나 요한복음을 읽는 사람은 보지 못한다. 그럼에도 믿는 사람 — 요한이 이 책을 쓴 이유가 그들을 위해서다(31절).
이 책을 쓴 이유
30 예수가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적들도 행하셨다.
31 그러나 이것들을 기록한 것은 너희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믿어서 그의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들을 기록한 것은” — 요한복음 자체가 그 목적을 명시한다. 선택된 기록이다. 모든 것을 담지 않았다. 이 표적들, 이 말씀들 — 독자가 믿고 생명을 얻도록 선별된 것들이다. 요한복음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 중 하나가 된 것은 이 의도가 2천 년을 버텨온 결과다.
다음 장 — 갈릴리 해변. 새벽. 숯불. 물고기. “내 양을 먹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