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9장 날 때부터 맹인

진흙과 눈

1 가시는 길에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2 제자들이 물었다.

“랍비, 이 사람이 눈멀게 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아니면 그 부모의 죄입니까?”

3 예수가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일들이 그에게 나타나게 하려는 것이다.”

4 “우리를 보내신 분의 일을 우리는 낮 동안에 해야 한다. 아무도 일할 수 없는 밤이 온다.”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6 이 말씀을 하신 뒤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시고

7 말씀하셨다.

실로암(Siloam) 못에 가서 씻어라.” (실로암은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그가 가서 씻고 눈이 열린 채 돌아왔다.

실로암 못은 예루살렘 다윗 성 남쪽 끝에 있다. 기원전 8세기 히스기야 왕이 아시리아의 침략에 대비해 기혼 샘의 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533미터의 터널을 뚫어 만든 것이다. 2004년 발굴에서 1세기 실로암 못 계단이 발견되었다. 본문의 지리적 서술과 일치한다.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의 실로암 — 요한복음에서 예수 자신이 ‘보내심을 받은 자’이기도 하다.


바리새파의 심문

8 이웃과 전에 그가 구걸하는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말했다.

“이 사람이 앉아서 구걸하던 그 사람이 아닌가?”

9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이다”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아니다, 그를 닮은 사람이다”라고 했다.

그 사람은 “내가 그 사람이오”라고 말했다.

10 그들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눈이 열렸소?”

11 그가 대답했다.

“예수라는 분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12 그들이 물었다.

“그 사람이 어디 있소?”

“모릅니다.”

13 그들이 전에 눈멀었던 사람을 바리새파에게 데리고 갔다.

14 예수가 진흙을 이겨 그의 눈을 열어주신 날이 안식일이었다.

15 바리새파도 그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다시 물었다.

“그분이 내 눈에 진흙을 바르셨습니다. 내가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16 바리새파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말했다.

“이 사람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니 하나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

다른 사람들은 말했다.

“죄인이 어떻게 이런 표적들을 행할 수 있겠소?”

그들 사이에 분열이 생겼다.

17 그들이 다시 눈먼 사람에게 물었다.

“그 사람이 당신 눈을 열어주었으니 당신은 그에 대해 무엇이라 하오?”

“그분은 선지자이십니다.”

18 유대인들은 그가 눈멀었다가 보게 되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보게 된 사람의 부모를 불러

19 물었다.

“이 사람이 당신들 아들이오? 눈 먼 채 태어났다고 한 그 아들이오? 그러면 어떻게 지금 보게 되었소?”

20 그 부모가 대답했다.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이고 눈 먼 채 태어난 줄 압니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누가 눈을 열어주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에게 직접 물어보십시오. 나이가 찼으니 스스로 말할 것입니다.”

22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유대인들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이 이미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회당에서 추방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23 그래서 부모가 “나이가 찼으니 그에게 물어보십시오”라고 한 것이었다.

24 그들이 전에 눈멀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말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안다.”

25 그가 대답했다.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 한 가지는 압니다. 내가 눈멀었다가 지금 본다는 것입니다.”

26 그들이 물었다.

“그 사람이 당신에게 무엇을 했소? 어떻게 눈을 열었소?”

27 “내가 이미 말했는데 듣지 않으셨습니다. 왜 다시 들으려 하십니까? 당신들도 그분의 제자가 되려는 것입니까?”

28 그들이 그를 욕하며 말했다.

“당신은 그 사람의 제자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요.”

29 “우리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을 알고 있소. 그러나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모르오.”

30 그 사람이 대답했다.

“이상한 일이군요. 그분이 내 눈을 열어주셨는데 당신들이 어디서 오신 분인지 모른다니요.”

31 “하나님은 죄인의 말을 듣지 않으시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행하는 사람의 말은 들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32 “창세로부터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눈 뜨게 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33 “이 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34 그들이 대답했다.

“당신은 온통 죄 속에서 태어났는데 우리를 가르치려 하는 것이오?”

그리고 그를 쫓아냈다.


영적 시력과 영적 맹인

35 예수가 그들이 그를 쫓아냈다는 것을 들으셨다. 그를 만나 말씀하셨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 그가 대답했다.

“주님, 그분이 누구십니까? 내가 믿겠습니다.”

37 예수가 말씀하셨다.

“네가 그를 보았다. 지금 너와 말하는 사람이 그다.”

38 “주님, 믿습니다.”

그가 예수께 절했다.

39 예수가 말씀하셨다.

“나는 이 세상에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눈멀게 하려고.”

40 예수와 함께 있던 바리새파 가운데 어떤 이들이 이 말씀을 듣고 물었다.

“우리도 눈이 먼 것이오?”

41 예수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눈이 멀었더라면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다.”

9장의 구조는 치밀하다. 이야기는 단계적으로 올라간다 — 이웃들의 심문, 바리새파의 심문, 부모의 증언, 두 번째 심문. 눈먼 사람은 심문을 거듭하면서 더 선명한 고백으로 나아간다. 처음에 “예수라는 분”, 그다음 “선지자”, 마지막에 “주님”이라고 부른다. 바리새파는 심문할수록 더 눈이 멀어간다. 본문 전체가 ‘진정한 시각’에 관한 것이다 — 육체의 눈이 아니라 누가 예수를 알아보는가.

다음 장 — 선한 목자. 양의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