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8장 단 지파의 긴 행군
땅을 찾아서
1 그때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다. 그때 단(Dan) 지파는 살 땅을 찾고 있었다. 그 날까지 이스라엘 지파들 가운데서 유산으로 받은 땅이 그들에게 아직 배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호수아 19장은 단 지파에게 블레셋 평야 쪽 땅을 배분했다. 그러나 단은 그 땅을 차지하지 못했다. 블레셋과 아모리의 압박으로 산지로 밀려났다는 것이 여호수아 19장 47절과 사사기 1장 34절에 나온다. 삼손이 단 지파였다는 것을 여기서 기억하면 — 삼손의 블레셋과의 분쟁이 단 지파 전체의 땅 문제와 연결된다.
2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용사 다섯 명을 보냈다. 그 땅을 탐지하고 살피게 했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이르러 미가의 집에 묵었다.
3 미가 집 가까이 있을 때, 레위 젊은이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소? 누가 당신을 데려왔고, 여기서 무슨 일을 하고 있소?”
4 그가 말했다.
“미가가 이러저러하게 해서 나를 고용했소. 내가 그의 제사장이 되었소.”
5 그들이 말했다.
“하나님께 물어봐 주시오. 우리가 가는 이 길이 잘 될지.”
6 제사장이 말했다.
“평안히 가시오. 여호와의 눈이 너희가 가는 길을 보고 계시오.”
라이스 성읍
7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Laish)에 이르렀다.
거기 사는 백성이 안전하고 고요하게 살고 있었다. 시돈 사람의 방식대로. 부족함이 없었다. 땅도 넓었다.
시돈(Sidon)과도 멀고, 다른 어떤 민족과도 거래하지 않았다.
8 그들이 돌아와 형제들에게 말했다.
9 “올라갑시다! 그들을 쳐야 합니다. 우리가 그 땅을 보았소. 아주 좋았소. 너희가 가만히 있겠소? 망설이지 말고 올라가 그 땅을 차지합시다.
10 가면 아무 부족함도 없는 백성을 만날 것이오. 그 땅은 넓고, 하나님이 그것을 너희 손에 주셨소.”
신상을 빼앗다
11 단 자손 중에서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육백 명이 무장하고 출발했다.
12 유다의 기럇여아림(Kiriath-jearim) 뒤편에 진을 쳤다. 그래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마하네 단(Mahaneh-dan — ‘단의 진영’)이라 한다.
13 거기서 에브라임 산지로 지나 미가의 집에 이르렀다.
14 라이스 땅을 탐지했던 다섯 사람이 형제들에게 말했다.
“이 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소? 이제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시오.”
15 그들이 그쪽으로 방향을 틀어 레위 젊은이 집에 이르러 그에게 문안했다.
16 육백 명의 단 자손이 무기를 들고 문 입구에 서 있었다.
17 다섯 명이 들어가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져갔다. 제사장이 문 입구에 무장한 육백 명과 함께 서 있었다.
18 그들이 미가의 집에 들어가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져가려 하자, 제사장이 말했다.
“뭘 하시오?”
19 그들이 말했다.
“입 다물어요. 손에 손을 얹어요.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버지도 되고 제사장도 되어요. 한 사람의 집 제사장이 되는 게 낫겠소, 이스라엘의 한 지파 전체의 제사장이 되는 게 낫겠소?”
20 제사장의 마음이 기뻤다. 에봇과 드라빔과 신상을 가지고 그 무리 가운데 들어갔다.
미가의 추격
21 그들이 돌아서서 어린이들과 가축들과 짐을 앞에 두고 출발했다.
22 미가의 집에서 꽤 멀리 왔을 때, 미가의 이웃집 사람들이 모여 단 자손을 뒤쫓았다.
23 그들이 단 자손을 불렀다. 단 자손이 돌아보며 미가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오? 이렇게 사람들을 불러 모았소?”
24 미가가 말했다.
“내가 만든 신들과 제사장을 가져갔소. 나에게 남은 게 무엇이오? 어떻게 나에게 왜 그러냐고 할 수 있소?”
25 단 자손이 말했다.
“우리에게 더 이상 말 걸지 마시오. 그렇지 않으면 화가 난 자들이 당신을 치고 당신 집도 죽일 거요.”
26 단 자손이 길을 갔다.
미가는 그들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아서서 집으로 갔다.
라이스의 함락
27 그들이 미가가 만든 것들과 그의 제사장을 데리고 라이스(Laish), 평안하고 조용한 백성에게 이르렀다. 칼날로 그들을 쳤다. 성읍을 불살랐다.
28 라이스와 시돈 사이가 멀어서 구출할 자가 없었다. 어떤 민족과도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성읍은 벧르홉(Beth-rehob) 평야에 있었다.
그들이 성읍을 다시 짓고, 거기에 살았다.
29 이스라엘의 아버지 단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 이름을 단(Dan)이라 했다. 그 성읍 이름이 전에는 라이스였다.
텔 단(Tel Dan) — 현대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 북쪽, 헬몬산 기슭에 위치한다. 1966년부터 아브라함 비란(Avraham Biran)이 이끄는 히브리 연합 대학 발굴팀이 이 유적지를 발굴했다. BC 12세기 층에서 단 지파의 정착 흔적이 확인됐다. 또한 BC 9세기경의 것으로 보이는 뿔 제단과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신전 관련 유적이 발굴됐다 — 이 신전은 훗날 왕상 12장에 나오는 여로보암의 배교 예배 장소가 된다. 1993년 같은 장소에서 ‘다윗 왕조(בית דוד, Beit David)‘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텔 단 비문, Tel Dan Stele)이 발굴됐다. BC 9세기 아람어 비문으로, 성경 밖에서 다윗 왕조의 존재를 처음 입증한 고고학 자료다.
신상이 자리를 잡다
30 단 자손이 자기들을 위해 그 신상을 세웠다. 모세(Moses)의 아들 게르솜의 아들 요나단(Jonathan)과 그 아들들이 그 땅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됐다.
31 하나님의 집이 실로(Shiloh)에 있는 동안 내내, 미가가 만든 신상이 단에 세워져 있었다.
모세의 손자가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이 됐다. 일부 히브리어 사본(마소라 본문)에는 ‘모세(מֹשֶׁה)’ 위에 작은 ‘נ’(nun) 글자가 매달려 있다 — 이른바 누운 톨루야(נון תלויה, “매달린 눈”) 라는 본문비평 표지로, 읽을 때 ‘므낫세(מְנַשֶּׁה)‘로 바꾸도록 유도한다. 바벨론 탈무드 바바 바트라 109b는 이 변경의 동기를 명시한다 — “모세의 손자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이 부끄러워” 랍비들이 글자를 끼워 넣었다. 1907년 C. F. 무어(C. F. Moore) 의 ICC 사사기 주석과 칠십인역(LXX), 라틴어 불가타가 모두 원래 표기를 ‘모세’로 복원한다. 본문이 민족적 수치를 보존한 흔적이다.
다음 장 — 레위인이 에브라임 산지에 첩과 함께 살고 있었다. 첩이 그를 떠나 베들레헴으로 갔다. 레위인이 데리러 간다. 돌아오는 길에 기브아에서 밤을 보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