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6장 들릴라, 두 기둥

가사의 밤

1 삼손이 가사(Gaza · ㉸ 가자)에 내려갔다. 거기서 창녀를 보고 들어갔다.

2 “삼손이 여기 왔다.”

가사 사람들에게 그 소식이 퍼졌다. 성문에 잠복해 두었다. 밤새 조용히 기다렸다.

“새벽이 되면 그를 죽이겠다.”

3 삼손은 자정까지 누워 있었다. 자정에 일어나 성문 문짝들과 두 문설주를 잡아 문빗장까지 함께 빼냈다. 어깨에 메고 헤브론(Hebron) 앞 산 꼭대기까지 가져갔다.

가사에서 헤브론까지는 직선 거리로 약 60킬로미터, 게다가 상당한 고도차가 있다. 성문은 나무와 금속으로 만들어진 무거운 구조물이었다. 본문은 이 사실을 단 한 문장으로 건조하게 기록한다.


들릴라

4 그 뒤에 삼손이 소렉(Sorek) 골짜기의 들릴라(Delilah · ㉸ 달릴라)라는 여인을 사랑했다.

5 블레셋의 통치자들이 그녀에게 와서 말했다.

“그를 꼬드겨서, 그의 힘이 왜 그렇게 크고 어떻게 하면 그를 이기고 결박할 수 있는지 알아내라. 그러면 우리가 각자 은 천백 개씩 네게 주겠다.”

블레셋의 다섯 통치자가 각각 은 천백 개씩이라면 총 오천오백 개다. 막대한 금액이다. 들릴라(דְּלִילָה)가 블레셋 여인인지 이스라엘 여인인지 본문은 명시하지 않는다. 1975년 로버트 보일링(Robert Boling) 의 앵커성서주석 사사기와 1989년 로런스 스테이거(Lawrence Stager) 의 블레셋 고고학 연구는 들릴라라는 이름이 셈어 어근에 어울리지 않고, 블레셋 통치자들이 그녀에게 직접 접근했다는 점을 근거로 블레셋 여인으로 본다. 그러나 4세기 요세푸스(Josephus) 의 『유대 고대사』 5권 8장은 소렉 골짜기(이스라엘과 블레셋 경계)에 사는 이스라엘 창녀로 옮겨 적었다. 본문은 결정해 주지 않는다.

6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했다.

“당신의 큰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려줘요. 어떻게 하면 당신을 결박할 수 있어요?”

7 삼손이 그녀에게 말했다.

“아직 마르지 않은 생줄 일곱 개로 나를 묶으면, 내가 약해져서 보통 사람 같이 될 거요.”

8 블레셋 통치자들이 아직 마르지 않은 생줄 일곱 개를 가져왔다. 그녀가 삼손을 그것으로 묶었다.

9 방에 잠복한 자들이 있었다.

그녀가 소리쳤다. “삼손, 블레셋 사람들이에요!”

삼손이 실처럼 그 줄들을 끊었다. 불에 탄 실처럼. 그의 힘의 비밀이 알려지지 않았다.


세 번의 거짓말

10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했다.

“당신이 나를 속였어요. 거짓말을 했잖아요. 이제 정말로 무엇으로 당신을 묶을 수 있는지 말해줘요.”

11 삼손이 말했다.

“한 번도 쓴 적 없는 새 밧줄로 나를 묶으면, 내가 약해져서 보통 사람 같이 될 거요.”

12 들릴라가 새 밧줄로 그를 묶고 소리쳤다. “삼손, 블레셋 사람들이에요!”

잠복한 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삼손이 실처럼 팔의 밧줄들을 끊었다.

13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했다.

“여태 나를 속이고 거짓말만 했어요. 무엇으로 당신을 묶을 수 있는지 말해줘요.”

그가 말했다.

“내 머리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베틀에 얽어 짜면, 내 힘이 약해질 거요.”

14 그녀가 베틀로 그것을 단단하게 짰다. 그리고 소리쳤다. “삼손, 블레셋 사람들이에요!”

삼손이 잠에서 깨어 베틀 기둥과 날실을 빼내 버렸다.


마침내 진실을

15 들릴라가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한다면서 마음이 내게 없군요. 세 번이나 나를 속이고 힘의 비밀을 말하지 않았어요.”

16 날마다 그녀가 성화로 몰아붙이며 졸랐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 됐다.

17 마침내 그가 마음속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내 머리에 면도칼을 댄 일이 없소. 나는 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드려진 나실인이오. 내 머리를 밀면 내 힘이 떠나 약해져서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될 거요.”

18 들릴라는 그가 마음속 모든 것을 털어놓은 것을 알았다. 사람을 보내 블레셋 통치자들을 불렀다.

“이번에는 올라오세요. 그가 마음속 모든 것을 털어놓았어요.”

블레셋 통치자들이 은을 손에 들고 그녀에게 올라왔다.

19 들릴라가 삼손을 자기 무릎 위에서 재웠다.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었다. 그리고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의 힘이 떠났다.

20 그녀가 소리쳤다. “삼손, 블레셋 사람들이에요!”

그가 잠에서 깨어났다. “전처럼 나가서 몸을 떨쳐야지.”

그러나 여호와가 자기에게서 떠났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여호와가 자기에게서 떠났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 가장 슬픈 문장이다. 힘이 사라진 줄도 모르고 일어나는 사람. 이 구절은 삼손의 비극을 한 문장에 다 담는다.


가사에 갇히다

21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잡았다. 눈을 뽑았다. 가사로 끌고 내려갔다.

놋 사슬로 그를 묶었다. 감옥에서 맷돌을 갈게 했다.

맷돌 갈기는 고대에 노예나 죄수가 하는 가장 낮은 일이었다. 한때 성문을 어깨에 메고 떠났던 삼손이 이제 맷돌을 밀고 있다.

22 그러나 머리털이 밀린 뒤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다곤 신전의 축제

23 블레셋의 통치자들이 큰 제사를 드리러 모였다. 자기들의 신 다곤(Dagon)에게 기뻐하며 말했다.

“우리의 신이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겼다.”

24 백성들도 보고 자기들의 신을 찬양했다.

“우리의 신이 우리 땅을 황폐케 한 원수, 우리 중에 많이 죽인 자를 우리 손에 넘겼다.”

25 잔치 기분이 무르익었을 때, 그들이 말했다.

“삼손을 불러내서 우리를 위해 재주를 부리게 해라.”

감옥에서 삼손을 불러냈다. 그가 그들 앞에서 재주를 부렸다. 두 기둥 사이에 세워두었다.

26 삼손이 자기 손을 잡고 있는 소년에게 말했다.

“내 손을 이 집을 받치는 기둥에 대어줘라. 내가 기댈 수 있게.”

27 그 집은 남녀로 가득 찼다. 블레셋 모든 통치자가 거기 있었다. 지붕 위에도 삼천 명쯤 되는 남녀가 삼손이 재주 부리는 것을 보고 있었다.

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주 여호와여, 나를 기억하소서. 하나님이여, 이번 한 번만 나를 강하게 하소서. 블레셋 사람들이 내 두 눈을 뽑은 것에 대해 단번에 복수하게 해 주소서.”

29 삼손이 집을 받치는 두 기둥을 껴안았다. 하나는 오른손에, 하나는 왼손에.

30 그가 말했다.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내가 죽자!”

힘을 다해 기둥을 밀었다.

그 집이 통치자들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 위에 무너졌다.

그가 죽을 때 죽인 자가 살았을 때 죽인 자보다 많았다.

고고학 — 1990년대 텔 카시르(Tell Qasile, 현대 텔 아비브 북쪽 야르콘 강변)와 텔 미크네(Tell Miqne, 에그론 추정지)에서 블레셋 신전 유적이 발굴됐다. 두 신전 모두 중앙 홀을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 받침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기둥 간격은 약 2미터. 힘이 극도로 강한 사람이 두 기둥을 동시에 밀었을 때 지붕 전체가 무너질 수 있는 구조다. 사사기 16장의 묘사와 발굴 결과가 일치한다. 이스라엘 고고학자 트루데 도탄(Trude Dothan)과 모셰 도탄(Moshe Dothan)이 주도한 에그론 발굴(1981–1996)은 블레셋 문화의 실체를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장례

31 형제들과 아버지의 온 집이 내려와 삼손의 시체를 가져다가 소라(Zorah)와 에스다올 사이,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무덤에 장사했다.

삼손이 이스라엘을 이십 년 다스렸다.

삼손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모순적인 사사다. 나실인으로 태어났으나 나실인 규칙을 번번이 어겼다. 여호와의 영에 이끌려 싸웠으나 동기는 개인적 복수였다. 블레셋을 죽였으나 블레셋 여인들을 사랑했다. 그리고 마지막은 눈이 뽑힌 채 감옥 맷돌 앞에서 기도했다. 이 기도가 가장 순수한 기도였다. 그때 머리털이 자라 있었다.

다음 장 — 전혀 다른 이야기. 에브라임 산지의 한 남자가 은으로 신상을 만들고, 아들을 제사장으로 삼는다. ‘각자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하는 시대의 첫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