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1장 입다의 서원

쫓겨난 아들

1 길르앗(Gilead) 사람 입다(Jephthah · ㉸ 입타)는 큰 용사였다. 그러나 그는 기생의 아들이었다. 길르앗이 입다를 낳았다.

2 길르앗의 아내도 그에게 아들들을 낳았다.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서 입다를 쫓아냈다.

“너는 다른 여인의 아들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얻지 못한다.”

3 입다가 자기 형제들을 피해 돕(Tob) 땅에 거주했다. 방탕한 자들이 입다에게 모여들었다. 그와 함께 나가게 되었다.

입다(יִפְתָּח)는 ‘그가 열다’라는 뜻이다. 출신이 정해 놓은 닫힌 문을 여는 이름이다. 기생(זוֹנָה, 조나)의 아들로서 정통 아들들에게 상속권을 박탈당했다. 고대 근동 법에서 서자는 합법적 재산권 주장이 어려웠다. BC 15세기 이라크 북부에서 발굴된 누지(Nuzi) 점토판에는 첩의 아들과 본처 아들 사이의 상속 분쟁 규정이 기록되어 있다. 입다의 상황은 당시 법적 현실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지도자가 될 인물은 바로 이 쫓겨난 자였다.


역전의 협상

4 때가 되어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과 싸우러 왔다.

5 암몬 자손이 싸울 때 길르앗의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으로 갔다.

6 길르앗의 장로들이 입다에게 말했다.

“와서 우리의 사령관이 되어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라.”

7 입다가 길르앗의 장로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이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낸 것이 아니오? 이제 환난을 당했다고 내게 온 것이오?”

8 길르앗의 장로들이 입다에게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당신에게로 돌아온 것이오. 당신이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면 당신이 우리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될 것이오.”

9 입다가 길르앗의 장로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이 나를 다시 데려가 암몬 자손과 싸울 때 여호와가 그들을 내 앞에 주시면, 내가 당신들의 머리가 될 것이오?”

10 길르앗의 장로들이 입다에게 말했다.

“여호와가 우리 사이에 증인이 되시리이다. 우리가 당신의 말대로 반드시 행할 것이오.”

11 입다가 길르앗의 장로들과 함께 갔다. 백성이 그를 머리와 사령관으로 삼았다. 입다가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서 자기 모든 말을 아뢰었다.

입다의 협상은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감사히 수락하지 않는다. 먼저 자신을 쫓아낸 사실을 상기시키고, 조건을 분명히 한다 — “내가 당신들의 머리가 될 것이오?” 쫓겨난 자가 스스로 조건을 제시한다. 이것이 나중에 서원에서도 나타나는 입다의 성격이다. 그는 말을 먼저 하고, 그 말의 대가를 나중에 치른다.


외교 실패

12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들을 보냈다.

“당신이 우리를 대적하여 내 땅에 싸우러 온 것이 무슨 일이오?”

13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사자들에게 대답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올라올 때 내 땅 아르논(Arnon)에서 얍복(Jabbok)까지, 요단 강까지 빼앗았기 때문이오. 이제 그것을 평화롭게 돌려주시오.”

14 입다가 다시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들을 보내었다.

15 “입다가 이같이 말한다. 이스라엘이 모압의 땅과 암몬 자손의 땅을 빼앗지 않았습니다.

16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올라올 때 홍해(Red Sea)까지 광야를 걸어 가데스(Kadesh)까지 왔습니다.

17 이스라엘이 에돔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당신의 땅으로 지나게 해 주십시오’ 하니 에돔 왕이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모압 왕에게도 보냈으나 그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가데스(Kadesh)에 머물렀습니다.

18 그 후에 광야를 통해 에돔의 땅과 모압의 땅을 돌아서 모압 땅 동편으로 와서 아르논(Arnon)을 건너지 않고 진을 쳤습니다. 아르논이 모압의 경계이기 때문입니다.

19 이스라엘이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Sihon)에게 사자들을 보냈습니다. 헤스본 왕에게. ‘당신의 땅으로 지나 내 곳에 이르게 해 주십시오’ 하였습니다.

20 그러나 시혼이 이스라엘을 믿지 않아 그의 땅으로 지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시혼이 자기 백성을 모두 모아 야하스(Jahaz)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과 싸웠습니다.

21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시혼과 그의 모든 백성을 이스라엘의 손에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들을 쳤습니다. 그 땅에 사는 아모리 사람의 온 땅을 이스라엘이 차지했습니다.

22 아르논에서 얍복까지, 광야에서 요단 강까지 아모리 사람의 온 지역을 차지했습니다.

23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자기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아모리 사람을 쫓아내신 것이오. 그런데 당신이 그 땅을 차지하려 하오?

24 당신의 신 그모스(Chemosh)가 당신에게 준 것은 당신이 차지하지 않겠소? 우리 하나님 여호와가 우리 앞에서 쫓아낸 것은 우리가 차지할 것이오.

25 이제 당신이 모압 왕 십볼(Zippor)의 아들 발락(Balak)보다 나은 점이 있소? 그가 이스라엘과 다투었소? 그들과 싸웠소?

26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마을들, 아로엘과 그 마을들, 아르논 강가의 모든 성읍들에서 삼백 년을 살았소. 그 동안에 왜 당신들이 되찾지 않았소?

27 나는 당신들에게 범죄하지 않았소. 당신들이 나를 대적하여 싸우는 것으로 내게 악하게 행하고 있소. 심판하시는 여호와가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에 판결하실 것이오.”

28 그러나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가 보낸 말을 듣지 않았다.

입다의 외교 서한은 구약에서 가장 길고 상세한 외교 협상 기록 중 하나다. 그는 이스라엘의 이동 경로를 재구성하고, 법적 선례를 제시하며, 삼백 년간의 실효 지배를 논거로 든다. 현대 국제법의 ‘취득 시효’ 개념과 유사하다. 암몬이 이를 무시한 것은 입다의 논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땅에 대한 요구 자체가 협상의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원

29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했다.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 길르앗의 미스바를 지나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갔다.

30 입다가 여호와께 서원했다.

“당신이 정녕 암몬 자손을 내 손에 주시면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 내 집 문에서 처음 나와 나를 영접하는 자가 여호와의 것이 될 것이며,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습니다.”

이 서원이 사사기 11장의 무게 전체를 짊어진다. 입다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처음 나오는 자’가 사람일 경우를 상상했을까, 아니면 가축을 예상했을까? 고대 근동에서 번제 서원은 대체로 동물을 대상으로 했다. 그러나 본문 구조가 그 다음에 무엇이 나오는지를 미리 알려주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어, 독자는 이미 비극을 예감한다. 입다 자신은 몰랐을 것이다.

32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건너가 싸웠다. 여호와가 그들을 그의 손에 주셨다.

33 입다가 아로엘(Aroer)에서 민닛(Minnith)에 이르기까지 이십 개 성읍과 아벨 그라밈(Abel-keramim)까지 매우 크게 쳤다.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굴복했다.


34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 딸이 소고를 치고 춤을 추며 나와 그를 영접했다.

외동딸이었다. 입다에게는 아들도 딸도 그 외에 없었다.

35 입다가 딸을 보자 자기 옷을 찢었다.

“아, 내 딸아! 너는 나를 심히 낮추는구나. 너는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자 가운데 있구나. 내가 여호와께 내 입을 열었으니 능히 되돌릴 수 없다.”

36 딸이 입다에게 말했다.

“아버지, 당신이 여호와께 입을 열었으면 여호와가 당신을 위해 원수들 암몬 자손에게서 원수 갚으신 후이니, 당신의 입에서 나온 대로 내게 행하십시오.”

37 딸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이것을 내게 허락하여 주십시오. 두 달 동안만 나를 내버려 두어 산에 가서 내 여자 친구들과 함께 내 처녀임을 위해 울게 해 주십시오.”

38 입다가 말했다. “가거라.”

딸을 두 달 동안 보냈다. 딸이 여자 친구들과 함께 산으로 가서 자기의 처녀임을 위해 울었다.

39 두 달 만에 딸이 아버지에게 돌아왔다. 입다가 자기 서원대로 딸에게 행했다. 딸이 남자를 알지 못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서 규례가 되었다.

40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나흘씩 나가 길르앗(Gilead)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해 애가를 불렀다.

입다의 딸 — 이름이 기록되지 않는다. 성경 전체에서 이름 없이 남은 여인들이 있다. 이 딸도 그 중 하나다.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는 유일한 방법은 매년 나흘간 이스라엘 여인들이 부르는 애가였다. 그 노래가 무엇이었는지 본문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그 노래가 있었다는 사실만 남아 있다.

이 서원의 결과에 대해 유대교·기독교·이슬람은 다르게 읽는다. 유대교 전통의 일부 해석자(예를 들어 미드라쉬 탄후마)는 입다의 딸이 실제로 죽지 않고 성전에 봉헌되어 독신으로 살았다고 본다 — 레위기 27장이 사람도 여호와께 봉헌할 수 있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다수 해석은 실제 번제로 죽임을 당했다고 본다 — 본문의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다”는 서원의 문자적 실행으로. 이슬람 전통은 이 사건을 언급하지 않는다. 꾸란에 입다에 해당하는 인물이 없다. 현대 페미니스트 신학자 필리스 트리블(Phyllis Trible)은 이 본문을 ‘공포의 텍스트’ 시리즈 중 하나로 분석한다 — 권력 없는 자가 권력자의 말 한마디로 소멸되는 구조.

번제가 이스라엘 율법에서 인간 번제를 금지하는 것과 충돌한다는 사실(레위기 18:21, 20:2-5)은 본문이 명시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입다의 서원이 경솔했다는 것은 본문 구조가 보여준다 — 그러나 본문의 저자는 직접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히브리서 11장 32절은 입다를 믿음의 목록에 포함시킨다. 그 판단의 무게도 독자에게 남겨진다.

다음 장 — 에브라임이 다시 다툰다. “당신들이 전쟁에 부를 때 우리를 부르지 않았소.” 에브라임과 길르앗 사이에 내전이 벌어진다. 삼십 년을 기다려 온 갈등이 터진다. 그리고 ‘쉽볼렛(shibboleth)‘이라는 한 단어가 생사를 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