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6장 일곱째 날의 함성

문이 닫혔다

1 여리고는 이스라엘 자손으로 인해 굳게 닫혀 있었다.

아무도 나가지 못하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했다.

2 여호와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주었다.

3 너는 모든 전사와 함께 성 주위를 돌아라. 하루에 한 번. 엿새 동안.

4 일곱 제사장이 언약궤 앞에서 양의 뿔로 만든 나팔 일곱 개를 들고 가라. 일곱째 날에는 성을 일곱 번 돌고,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어라.

5 제사장들이 숫양 뿔 나팔을 길게 불어 그 소리가 들릴 때, 온 백성이 크게 소리를 질러라. 성벽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백성이 각자 곧장 올라가라.”

숫양 뿔 나팔은 히브리어로 “쇼파르(שׁוֹפָר, shofar)“다. 유대교 예배에서 지금도 사용된다. 특히 나팔절(로쉬 하샤나)과 속죄일(욤 키푸르)에 분다. 여리고 앞에서 울린 쇼파르 소리는 전쟁 신호이면서 동시에 예배의 악기였다.


엿새 동안

6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 말했다.

“언약궤를 메라. 일곱 제사장이 일곱 나팔을 들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걸어라.”

7 백성에게는 말했다. “나아가라. 성을 돌아라.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 가라.”

8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자 일곱 제사장이 일곱 숫양 뿔 나팔을 들고 여호와 앞에서 나아가 나팔을 불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뒤를 따랐다.

9 무장한 자들은 나팔을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걷고, 후위대는 궤 뒤에서 걸었다. 나팔이 계속 울렸다.

10 그런데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했다.

“외치지 마라. 너희 목소리를 들리게 하지 마라. 어떤 말도 입에서 나오게 하지 마라. 내가 ‘외쳐라’고 하는 날까지. 그 날 외쳐라.”

11 여호와의 궤가 성을 한 번 돌았다. 그들이 진영으로 돌아와 거기서 잤다.

12 여호수아가 아침 일찍 일어났다.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멨다.

13 일곱 제사장이 일곱 숫양 뿔 나팔을 들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걸으며 나팔을 불었다. 무장한 자들이 그 앞에서 걸었다. 후위대는 여호와의 궤 뒤에서 걸었다. 나팔이 계속 울렸다.

14 이틀째에도 성을 한 번 돌고 돌아왔다. 엿새 동안 이같이 했다.


일곱째 날

15 일곱째 날이 밝아올 때, 그들이 새벽 이른 때에 일어나 여느 때처럼 성을 돌았다. 그러나 그 날은 일곱 번을 돌았다.

16 일곱 번째,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말했다.

“외쳐라! 여호와가 이 성을 너희에게 주셨다.

17 이 성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헤렘(herem)으로 여호와께 바쳐진다. 창녀 라합과 그녀와 함께 집에 있는 모든 자는 살려라. 우리가 보낸 사자들을 숨겨주었기 때문이다.

18 너희는 헤렘으로 구별된 것에서 삼가라. 탐내어 그것을 가져가면 이스라엘 진영이 헤렘이 되고 재앙을 가져올 것이다.

19 모든 은과 금, 놋과 철 그릇은 여호와께 거룩하게 구별된다. 그것들은 여호와의 창고로 들어갈 것이다.”

헤렘(חֵרֶם, herem) — 완전히 구별하여 여호와께 바친다는 개념. 그 실행은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불태우는 것으로 나타난다. 고대 근동에서 헤렘은 이스라엘만의 관행이 아니었다 — BC 9세기 모압 왕 메사의 기념비(Mesha Stele)는 이스라엘 도시 느보를 함락시키며 “그모스 신을 위해 헤렘으로 삼았다(החרמתי)“고 새긴다. 동일 어근이다.

해석은 갈렸다: 1991년 수잔 니디치(Susan Niditch) 의 『전쟁과 히브리 성경』은 헤렘을 고대 근동 공통의 종교 전쟁 관습으로 해석했다. 1996년 트램퍼 롱맨(Tremper Longman) 의 『거룩한 전쟁』은 헤렘 명령이 가나안 한정의 일회적 사건임을 강조했다. 2014년 폴 코판(Paul Copan) 의 『하나님은 도덕적 괴물인가』는 본문의 군사적 과장(전멸 표현이 실제로는 도시 점령을 가리키는 고대 근동 수사)을 분석했다. 본문은 이 윤리적 긴장을 해소하지 않는다.


성벽이 무너지다

20 백성이 외쳤다. 나팔 소리가 울렸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자 크게 소리를 질렀다.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백성이 각자 곧바로 성으로 올라가 그 성을 점령했다.

여리고 성벽의 역사성 — 이것이 여호수아서에서 가장 집중적인 고고학 논쟁의 대상이다. 영국 고고학자 존 가스탱(John Garstang)은 1930년대 발굴에서 무너진 성벽층을 발견하고 BC 1400년경으로 연대를 추정했다 — 출애굽의 이른 연대(BC 1450년경)와 맞아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캐슬린 케년(Kathleen Kenyon)이 1952–1958년 발굴을 통해 그 성벽층은 사실 BC 2200년경(후기 청동기 이전)에 해당한다고 재연대했다. 케년의 결론은 후기 청동기(BC 1550–1200) 여리고에 도시 성벽이 없었다는 것 — 즉 여호수아 시대의 여리고에는 무너질 성벽 자체가 없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결론은 학계 다수설이 되었으나, 이탈리아 고고학자 브라이언트 우드(Bryant Wood)는 1990년 케년의 해석에 반박하며 가스탱의 연대로 돌아갔다. 논쟁은 현재도 계속된다. 본문은 고고학적 증거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고학은 그 질문을 계속 던진다.

21 성 안에 있는 것들을 다 쳤다. 남자와 여자, 젊은이와 노인, 소와 양과 나귀까지 칼날로 쳤다.

22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말했다.

“그 창녀의 집으로 가서 그 여자와 그녀에게 속한 모든 것을 데리고 나와라. 맹세한 대로 해라.”

23 정탐꾼으로 갔던 젊은이들이 들어가 라합과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제들과 그녀에게 속한 모든 것을 데리고 나왔다. 그들이 이스라엘 진영 밖에 데려다 두었다.

24 그들이 성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불살랐다. 은, 금, 놋 그릇과 철 그릇만은 여호와의 전 창고에 두었다.

25 창녀 라합과 그녀의 아버지 집 식구들과 그녀에게 속한 모든 것을 여호수아가 살려주었다. 라합이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도록 보낸 사자들을 숨겨주었기 때문이다. 라합이 오늘까지 이스라엘 가운데 살았다.

“오늘까지” — 이 표현은 이 글을 기록할 당시 라합이 여전히 살아 있었거나, 그녀의 후손이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1장 5절은 라합을 솔로몬의 할아버지 보아스의 어머니로 기록한다. 여리고의 창녀가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된다.


여리고에 내린 저주

26 여호수아가 그 때 맹세로 경고했다.

“이 여리고 성을 일으켜 세우는 자에게 저주가 있으리라. 여호와 앞에서. 그 기초를 쌓는 자는 맏아들을 잃고, 그 성문을 세우는 자는 막내를 잃을 것이다.”

이 저주는 수백 년 뒤 실현된다. 열왕기상 16장 34절 — “아합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기초를 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아들 스굽을 잃었다.” 여호수아의 저주가 문자 그대로 이루어진 것으로 기록자는 보았다.

27 여호와가 여호수아와 함께하셨다. 그의 명성이 그 온 땅에 퍼졌다.

다음 장 — 첫 번째 패배. 아이성 앞에서 이스라엘 병사들이 도망친다.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린다. 한 남자의 탐욕이 모든 것을 흔들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