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8장 정복의 기록

블레셋과 모압

1 이 일 뒤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정복하고 그들의 손에서 메덱암마(Metheg-ammah — ‘통제권’)를 빼앗았다.

2 다윗이 모압을 쳐서 그들을 땅에 엎드리게 하고 줄로 쟀다. 두 줄 길이는 죽이고 한 줄 길이는 살려 두었다. 모압이 다윗의 신하가 되어 조공을 바쳤다.

줄로 재서 삼등분하고 그 중 두 몫을 처형하는 방식은 고대 전쟁 포로 처리 방법 중 하나였다. 이 기록은 간결하게 서술되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죽음이 있었다. 다윗이 모압과 왜 이렇게 가혹하게 처리했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는다. 이전에 다윗의 부모를 모압 왕에게 맡긴 적도 있었다(사무엘상 22장).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본문은 침묵한다.


아람 원정

3 다윗이 유프라테스(Euphrates) 강 쪽 자기 세력을 회복하러 가던 소바(Zobah · ㉸ 초바)르홉(Rehob)의 아들 하닷에셀(Hadadezer)을 쳤다.

4 다윗이 그의 기병 천칠백과 보병 이만 명을 사로잡았다. 다윗이 병거 말 중에서 백 대는 남기고 나머지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다.

5 다마스쿠스(Damascus · ㉸ 다마스쿠스 — 현대 시리아 수도) 아람 사람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도우러 왔다. 다윗이 아람 사람 이만이천 명을 쳤다.

6 다윗이 다마스쿠스 아람에 수비대를 두었다. 아람이 다윗의 신하가 되어 조공을 바쳤다.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가 그를 이기게 하셨다.

7 다윗이 하닷에셀의 신하들이 가진 금 방패를 빼앗아 예루살렘으로 가져왔다.

8 하닷에셀의 성읍 베다(Betah)브로대(Berothai)에서 왕이 놋을 많이 빼앗아 왔다.


하맛 왕의 선물

9 하맛(Hamath)도이(Toi)가 다윗이 하닷에셀의 온 군대를 쳤다는 말을 듣고,

10 아들 요람(Joram)을 다윗 왕에게 보내어 안부를 묻고 하닷에셀을 친 것을 하례했다. 하닷에셀은 도이와 자주 전쟁했기 때문이었다. 요람이 은그릇, 금그릇, 놋그릇을 가져왔다.

11 다윗 왕이 그것도 이미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빼앗은 은금과 함께 여호와께 드렸다.

12 에돔, 모압, 암몬 자손, 블레셋 사람, 아말렉에서 빼앗은 것들과,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에게서 취한 노략물을 드렸다.


에돔 정복

13 다윗이 소금 골짜기(Valley of Salt)에서 에돔 사람 만팔천 명을 친 뒤에 돌아오며 이름을 얻었다.

14 다윗이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었다. 에돔이 모두 다윗의 신하가 되었다.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가 그를 이기게 하셨다.

에돔은 사해 동남쪽 산악 지대다. 현대 요르단 남부에 해당한다. 구리 광산이 있었다. 다윗의 에돔 지배는 구리 자원 확보를 의미했다. 훗날 솔로몬의 성전 건축에 쓰인 청동의 많은 부분이 이 지역에서 왔을 것으로 학자들은 본다.


다윗의 신하들

15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다윗이 그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했다.

16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군대장관이었다. 아힐룻(Ahilud)의 아들 여호사밧(Jehoshaphat)은 사관이었다.

17 아히둡(Ahitub)의 아들 사독(Zadok)아비아달(Abiathar)의 아들 아히멜렉(Ahimelech)은 제사장이었다. 스라야(Seraiah)는 서기관이었다.

18 여호야다(Jehoiada)의 아들 브나야(Benaiah)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통솔했다. 다윗의 아들들은 제사장이었다.

이 명단은 다윗 왕국의 관료 체계를 보여준다. 군대장관, 사관(서기관급 행정가), 제사장, 서기관, 친위대 지휘관. 이 구조는 이집트와 페니키아의 행정 모델을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다윗 왕국이 유목 지도자의 군사집단에서 정규 관료제를 가진 국가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목록이다.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은 크레타 출신 용병 집단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다윗의 친위대는 외국 용병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다음 장 — 전쟁 이야기가 멈춘다. 다윗이 묻는다. “요나단의 집에 남은 자가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