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3장 그날
성전이 무너지리라
1 예수께서 성전을 나가실 때 제자 중 하나가 말씀드렸다.
“선생님, 보십시오.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합니까?”
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헤롯 성전 — 기원전 20년경 헤롯 대왕이 대대적으로 확장했다. 흰 대리석과 금으로 장식된 건물은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장대한 건축물 중 하나였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는 그 돌 하나의 무게가 100톤에 달했다고 기록한다. 예수의 예언은 기원후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Titus)에 의해 성취된다.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종말의 징조
3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바라보고 앉으셨을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따로 물었다.
4 “이런 일이 언제 있겠습니까?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
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주의하라.”
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다’라고 하며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다.”
7 “전쟁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마라. 이런 일은 있어야 하겠으나 아직 끝이 아니다.”
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적대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과 기근이 있을 것이다. 이는 재난의 시작이다.”
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가 회당에서 매를 맞겠으며, 나로 인하여 통치자들과 왕들 앞에 서게 되리라. 그것이 그들에게 증거가 되리라.”
10 “또 복음이 먼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한다.”
11 “사람들이 너희를 잡아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마라. 무엇이든지 그때에 네게 주시는 것을 말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다.”
12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음에 넘겨주겠고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만들 것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큰 환난
14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 읽는 자는 깨달으라 —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가라.”
15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 말며 집 안에 있는 것을 가지러 들어가지 마라.”
16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돌이키지 마라.”
17 “그 날에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라.”
18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라.”
19 “그 날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 시작부터 지금까지 없었던 큰 환난이 있겠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20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줄이지 않으셨더라면 아무 육체도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줄이셨다.”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 — 다니엘 9:27, 11:31, 12:11에 나오는 표현이다. 다니엘의 예언에서는 기원전 167년 셀레우코스 왕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운 사건을 가리켰다. 마가는 괄호를 열어 ‘읽는 자는 깨달으라’고 쓴다. 저자가 직접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이례적인 구절이다.
21 “그때에 누가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고 해도 믿지 마라.”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한 자들을 미혹하려 할 것이다.”
23 “너희는 주의하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인자의 오심
24 “그 날들의 환난 뒤에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25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6 “그때에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으로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27 “그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한 자들을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무화과나무의 교훈
28 “무화과나무에서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가 날 때에는 여름이 가까운 줄 안다.”
29 “이와 같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문 앞에 이른 줄 알아라.”
30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않겠다.”
그날을 아무도 모른다
32 “그러나 그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
33 “주의하라, 깨어 있어라. 그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34 “그것은 집을 떠나 여행하는 사람이 종들에게 각각 자기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고 명령한 것과 같다.”
35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집 주인이 언제 오는지 — 저녁에 오는지, 밤중에 오는지, 닭이 울 때 오는지, 아침에 오는지 —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36 “그가 갑자기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볼까 주의하라.”
37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아들도 모른다’ — 기독교 신학에서 이 구절은 난제 중 하나다.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아버지만 아는 것을 모를 수 있는가. 마태복음(24:36)도 같은 표현을 기록한다.
4세기 아리우스가 이 절을 그리스도의 종속(피조물성)을 입증하는 본문으로 사용했다. 이에 맞서 아타나시우스(『아리우스 반박 연설』 III.42–50)는 성자가 신성에 따라서는 모든 것을 알지만 인성에 따라서는 모르는 척했다는 ‘에코노미아(섭리적 무지)’ 해석을 내놓았다. 키프로스의 에피파니우스는 한 발 더 나아가 일부 사본이 마태 24:36에서 ‘아들도’를 빼고 있다며 본문 변형을 시도했다. 6세기 다마스쿠스의 요한은 양성론(兩性論)에 따라 인성의 무지로 정리했고, 칼뱅(『기독교 강요』 II.14)은 직무론적 해석 — 계시자로서의 직무에 속하지 않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표현했다고 — 을 제시했다. 현대 케노시스(자기비움) 신학 — 19세기 독일의 고트프리드 토마지우스, 20세기의 위르겐 몰트만 — 은 성육신 자체가 신적 속성의 자발적 자제를 포함한다고 본다.
다음 장 — 향유 기름부음, 최후 만찬, 겟세마네, 체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