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3장 열둘

손 마른 사람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다. 거기에 한쪽 손이 마른 사람이 있었다.

2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하려고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가운데 서라.”

4 그리고 바리새인들에게 물으셨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냐, 악을 행하는 것이 옳으냐?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그들은 잠잠했다.

5 예수께서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들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시며 그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손을 내밀라.”

그가 내밀었다. 손이 회복되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가 화를 낸 것이 명시된 드문 장면이다.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시며’ — 분노와 슬픔이 동시에 있다. 인간의 완고함이 예수를 화나게 하는 동시에 슬프게 했다.

6 바리새인들이 나가 곧 헤롯(Herod) 당파 사람들과 어떻게 예수를 죽일지 모의했다.


바닷가의 군중

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셨다.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라왔다. 유대(Judea)예루살렘(Jerusalem), 이두매(Idumea), 요단(Jordan) 강 건너편, 두로(Tyre · ㉸ 티로)시돈(Sidon) 근처에서도 큰 무리가 그가 하신 일을 듣고 왔다.

8 예수께서 무리에게 밀리지 않도록 제자들에게 작은 배를 준비해 두라고 하셨다.

9 이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으므로 병이 있는 자들이 그를 만지려고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10 더러운 귀신들도 예수를 볼 때마다 그 앞에 엎드려 소리를 질렀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11 예수께서 자기를 알리지 말라고 엄히 경고하셨다.


열두 제자 임명

13 예수께서 산에 오르셔서 원하시는 자들을 부르시니 그들이 나아왔다.

14 열두 명을 세우셨다. 그들을 사도라 불렀다.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전도하게 보내시며, 귀신을 쫓아내는 권한을 주려 하셨다.

15 세우신 열둘은 이러하다.

16 시몬(Simon)에게는 베드로(Peter)라는 이름을 더 주셨다.

17 세베대(Zebedee)의 아들 야고보(James)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John) — 그들에게는 보아너게(Boanerges), 곧 ‘우레의 아들들’이라는 이름을 주셨다.

18 안드레(Andrew · ㉸ 안드레아), 빌립(Philip · ㉸ 필립보), 바돌로매(Bartholomew · ㉸ 바르톨로메오), 마태(Matthew · ㉸ 마태오), 도마(Thomas · ㉸ 토마스), 알패오(Alphaeus) 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Thaddaeus · ㉸ 타대오), 가나나인 시몬(Simon the Zealot · ㉸ 열혈당원 시몬),

19 가룟 유다(Judas Iscariot · ㉸ 이스카리옷 유다) — 그는 예수를 넘겨준 자다.

열두 명 —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숫자다. 새 이스라엘의 기초를 세우는 행위로 읽힌다. 가룟 유다의 이름 뒤에 마가는 한 마디만 달았다. ‘넘겨준 자.’ 배신을 설명하지 않는다. 독자는 이미 안다.


바알세붑 논쟁

20 예수께서 집으로 들어가셨다. 무리가 다시 모여들어 그들이 밥도 먹을 수 없었다.

21 예수의 가족이 듣고 그를 붙잡으러 왔다. 그가 정신이 나갔다고 했기 때문이다.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이 말했다.

“그는 바알세붑(Beelzebul · ㉸ 바알즈불)에게 들렸다. 귀신의 왕으로 귀신을 쫓아낸다.”

23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 비유로 말씀하셨다.

“사탄이 어떻게 사탄을 쫓아낼 수 있겠느냐?”

24 “나라가 자기 안에서 나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다.”

25 “집이 자기 안에서 나뉘면 그 집이 설 수 없다.”

26 “사탄이 자기를 대적하여 나뉘면 설 수 없고 망한다.”

27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려면 먼저 그 강한 자를 결박해야 한다. 결박한 뒤에야 그의 집을 강탈할 수 있다.”

28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의 모든 죄와 모독은 용서받을 수 있다.”

29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 영원한 죄에 처한다.”

30 이는 그들이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성령 모독’ —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많이 두려워한 구절 중 하나다. 많은 신자들이 자신이 이 죄를 지은 것이 아닌지 불안해했다. 문맥을 보면, 마가는 성령의 역사를 사탄의 것으로 돌리는 행위를 말하고 있다. 명백한 빛을 어둠이라 부르는 완고한 거부. 그것이 왜 용서될 수 없는지 — 용서를 받으려면 먼저 필요를 인정해야 하는데, 이 완고함은 그 인정 자체를 막기 때문이다.


참 가족

31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서서 예수를 불러 달라고 사람을 보냈다.

32 무리가 예수 곁에 앉아 있다가 말했다.

“보십시오, 당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서 찾습니다.”

33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가 누구냐?”

34 주위에 앉은 자들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다.”

35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누구든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가족을 거부한 것인가. 마가는 설명하지 않는다. 예수의 가족이 그를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해 데리러 온 것이 배경이다. 예수는 혈연 공동체보다 더 넓은 공동체를 선포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 — 그것이 새 기준이다.

다음 장 — 바닷가에서 비유가 시작된다. 씨 뿌리는 자의 이야기. 왜 비유로 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