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베오기 상권 9장 망치가 쓰러지다

1 데메트리오스는 박키데스와 알키무스를 또다시 대군과 함께 보냈다.

2 이번에는 훨씬 큰 병력이었다.

3 소식을 들은 유다의 병사들이 두려움을 느꼈다.

많은 이가 진영을 떠났다.

4 유다 곁에 남은 자가 팔백 명이었다.

5 유다가 말했다.

“우리가 일어나 저들과 맞서자.”

6 남은 이들이 말했다.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늘은 목숨을 살려 나중을 도모하는 것이 낫습니다.”

7 유다가 대답했다.

“그렇게 도망치지는 않겠다. 때가 되었다면, 형제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다 죽겠다. 우리의 영광을 더럽히지 말자.”


엘아사 전투

8 엘아사(Elasa) 들판에서 두 군대가 마주섰다.

9 유다 팔백 대 박키데스의 대군.

10 전투가 시작되었다.

유다 군대의 오른쪽 날개가 적의 왼쪽을 밀어붙였다.

한동안 기세를 탔다.

11 그러나 중앙이 무너졌다.

양쪽에서 포위당했다.

12 유다가 쓰러졌다.

BC 160년이었다.

13 나머지는 흩어졌다.


장례

14 시몬과 요나탄이 유다의 몸을 거두었다.

15 조상들이 묻힌 모디인에 묻었다.

16 온 이스라엘이 그를 위해 울었다.

오랫동안 애도했다.

17 사람들이 말했다.

“이스라엘을 구하던 사람이 어떻게 쓰러진 것인가.”

유다 마카베오는 BC 167년부터 160년까지 약 7년 동안 항쟁을 이끌었다. 그의 사후 항쟁 세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 로마와의 동맹도, 성전 봉헌의 영광도, 당장의 군사 현실을 바꾸지 못했다.


요나탄이 지도자가 되다

18 유다가 죽은 뒤 이스라엘 전역에서 배교자들이 고개를 들었다.

19 기근이 겹쳤다.

20 마카베오 세력의 남은 무리가 요나탄(Jonathan)을 지도자로 뽑았다.

“당신이 형 유다의 자리를 잇고 우리를 이끌어 주십시오.”

21 요나탄이 지도권을 받았다.

22 박키데스는 남은 마카베오 세력을 추적했다.

23 요나탄은 형제 요한을 후방 기지로 보냈다.

24 요한이 적대적인 얌브리(Jambri) 족속에게 붙잡혀 목숨을 잃었다.

요나탄과 시몬이 그 원수를 갚았다.


요르단 강변의 탈출

25 박키데스가 요나탄을 압박하며 쫓아왔다.

26 요나탄과 시몬은 요르단 강까지 밀렸다.

안식일이었다.

27 강을 건너 피했다.

박키데스는 강을 넘지 않았다.

28 요나탄 세력은 유대 광야(유다 광야) 지역에 머물렀다.


알키무스의 죽음

29 대제사장 알키무스는 성전 내부 벽을 허물려는 공사를 시작했다.

30 예언자들이 쌓은 성벽이었다.

31 공사를 시작한 직후 알키무스가 쓰러졌다.

반신불수가 되어 말을 잃었다.

BC 159년이었다.

32 공사는 중단되었다.

33 알키무스가 숨을 거두었다.

34 대제사장 자리가 비었다.

알키무스 사후 대제사장 자리는 7년간 공석이었다. BC 152년에 요나탄이 이 자리를 맡게 되는데, 이것은 마카베오 가문이 정치 권력뿐 아니라 종교 권력도 장악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박키데스의 마지막 원정

35 박키데스는 알키무스가 죽은 뒤 시리아로 돌아갔다.

2년 동안 유대아에는 전쟁이 없었다.

36 BC 157년, 배교자들이 다시 데메트리오스에게 청했다.

“박키데스를 다시 보내달라.”

37 박키데스가 다시 내려왔다.

요나탄 세력에 은밀히 배신자가 생겼다.

38 요나탄은 배신자들을 먼저 처단했다.

39 박키데스는 요나탄의 근거지를 포위했다.

40 그러나 함락하지 못했다.

41 오히려 배신자들과의 관계를 따지다 자기 편에서도 배신감을 샀다.

42 요나탄이 박키데스에게 평화 협상을 제안했다.

“포로를 교환하고 서로 해치지 말자.”

43 박키데스가 받아들였다.

44 시리아로 철수했다. 다시는 오지 않았다.

45 이스라엘에 칼이 잠잠해졌다.

46 요나탄은 믹마스(Michmash)에 자리를 잡았다.

백성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다음 장 — 셀류쿠스 왕조 내부에 내전이 일어난다. 그 혼란 속에서 요나탄은 정치 게임의 고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