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5장 평화, 그리고 아담과 그리스도

로마서 5장은 4장의 결론(“예수는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4:25)을 받아 새로운 단락을 연다. 1-11장 중에서 5장은 중간 경첩이다 — 개인적 칭의(1-4장)에서 우주적 구원(5-8장)으로의 전환.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비(5:12-21)는 바울 신학에서 가장 넓은 시야를 가진 단락이다.

믿음으로 얻은 평화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5:1-11에서 바울은 이신칭의의 결과를 나열한다 — 하나님과의 화평(1절), 은혜 안에 섦(2절), 소망(2절), 고난 중의 기쁨(3-4절), 성령을 통한 사랑의 확신(5절). 이 목록의 중심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8절)는 선언이 있다. 의인을 위한 죽음이 아니라, 원수를 위한 죽음이다.

5:3-4의 연쇄 — 환난 → 인내 → 연단 → 소망. 헬라어 단어들을 살피면: 인내(ὑπομονή, 휘포모네)는 수동적 체념이 아니라 압박을 버티며 견뎌내는 힘이다. 연단(δοκιμή, 도키메)은 금속을 불로 시험하여 순도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고난이 인격을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정제한다는 방향이다. 단, 이 연쇄는 자동이 아니다 — 5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가 그 배경이 된다.

5:9-10 — “더욱”(폴로 말론) 논법. 이미 일어난 일(십자가의 죽음으로 의롭다 하심)이 앞으로 일어날 일(진노에서의 최종 구원)을 보장한다는 논리다. 가장 어려운 일이 이미 이루어졌다면, 그것보다 쉬운 나머지도 이루어질 것이다. 바울은 이 논법을 5장에서 두 번, 그리고 8:32에서 다시 사용한다.


아담과 그리스도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으며,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5:12의 문법 —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이 절이 아담의 죄로 인해 후손이 죄를 상속받는다는 원죄론인지, 아니면 아담을 따라 각각 죄를 범했기 때문인지에 대한 해석이 나뉜다. 헬라어 ἐφ᾽ ᾧ(에프 호)는 “그 안에서” 혹은 “그 결과로” 모두로 번역될 수 있다. 라틴어 불가타는 “그 안에서(in quo)“로 번역하여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 해석을 지지했다. 동방 교회 전통은 사망의 상속이지 죄책의 상속은 아니라는 방향으로 읽는 경향이 있다.

5장은 4장의 아브라함 이야기에서 넘어와 5-8장의 새 단락을 연다. 아브라함이 이신칭의의 역사적 선례라면, 5장은 이신칭의가 가져온 현재적 결과를 서술한다. 하나님과의 화평, 고난 중의 기쁨, 성령의 사랑, 그리고 아담-그리스도의 우주적 틀. 개인의 구원 이야기가 전 인류의 이야기로 확대된다.

5:12-21은 로마서에서 신학적으로 가장 무거운 단락 중 하나다. 아담(Adam)과 그리스도를 대비하는 이 평행 구조는 이후 기독교 신학 전체의 틀이 된다.

5:12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 북아프리카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는 이 구절을 라틴어 성경(불가타)에서 읽으며 원죄론(原罪論, peccatum originale)을 정초했다(5세기 초). 헬라어 원문과 라틴어 번역 사이에는 해석의 간격이 있었으나, 아우구스티누스의 독해가 서방 기독교 신학의 지배적 흐름이 되었다.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비는 단순한 비교가 아니다. 바울은 반복해서 “더욱”(폴로 말론)을 사용한다 — 죄가 가져온 것보다 은혜가 가져온 것이 더 크다. 이 구조는 비대칭이다. 한 사람의 불순종이 사망을 가져왔다면, 한 사람의 순종은 단순히 그 이전 상태를 회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을 가져온다.

5:14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 이 한 줄에서 기독교의 아담 신학이 시작된다. 예수를 두 번째 아담(Last Adam)으로 보는 시각은 여기서 비롯한다. 고린도전서 15:45-47에서 바울이 이 주제를 더 전개한다.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느니라.”

5:20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 율법의 역할에 대한 도발적인 진술이다. 율법은 죄를 줄이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었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바울의 답은 율법이 죄를 가시화하고 그 심각성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죄를 인식할 때 은혜의 필요성도 온전히 인식된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 이 진술이 6:1의 오해(“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를 불러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