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3장 위에 있는 권세와 사랑의 완성
13장은 두 주제로 구성된다 — 위에 있는 권세에 대한 복종(1-7절)과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는 선언(8-10절), 그리고 종말론적 긴박감(11-14절). 얼핏 무관해 보이는 세 단락이 공통 주제로 연결된다 — 그리스도인은 현재의 질서 안에서 어떻게 사는가.
위에 있는 권세들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3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러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 그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5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6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13:6-7의 조세·관세 — 바울이 이것을 쓸 때 로마는 세금 문제로 내부 갈등이 있었다.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는 네로 치세 초기(58년경), 간접세 징수에 대한 불만이 커져 황제가 세금 개혁을 검토했다고 기록한다(Annales 13.50-51). 바울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권면은 이 맥락에서 단순한 일반 원칙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안에 대한 답이었을 수 있다.
13:1-7은 신약 성경에서 정치 신학과 관련하여 가장 논쟁적인 단락이다.
바울이 이것을 쓴 배경: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Claudius, 재위 41-54년)가 41년 혹은 49년에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한 이력이 있었다(사도행전 18:2). 네로(Nero)가 황제였던 시기(54-68년)는 아직 그리스도인 박해가 본격화되기 전이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쓴 것으로 추정되는 57년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시기였다. 이 맥락에서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는 권면은, 무정부적 성향을 경계하고 로마 당국과의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라는 실천적 지침이었다.
그러나 이 본문은 이후 수천 년간 권력이 종교에 복종을 강요할 때마다 인용되었다. 식민지 지배의 정당화, 노예제도의 옹호, 나치 정권에 대한 침묵의 근거로 쓰였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이 구절을 정면으로 씨름했다. 그는 국가가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할 때에는 복종 대신 저항이 신학적 의무라고 보았다. 히틀러 암살 계획에 연루된 그는 1945년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처형되었다. 같은 성경 구절이 복종의 근거도 저항의 근거도 될 수 있었다 — 맥락이 어떻게 읽히느냐에 따라.
바울 자신도 이 원칙을 항상 따른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러 차례 투옥되었고, 권세에 복종보다 복음을 선택했다. 13:1-7은 무조건적 복종의 원칙이 아니라 일반적 지침으로 읽어야 한다.
사랑이 율법의 완성
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13:8-10은 12-15장 전체 윤리편의 신학적 토대다. 12장의 은사 목록, 13장의 권세 복종, 14-15장의 강한 자·약한 자 문제 — 이 모든 것의 뿌리는 사랑이다.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면, 사랑은 개별 계명들의 합산이 아니라 그것들을 통일하는 원리다.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13:8-10 — 사랑이 율법을 요약하고 완성한다. 이것은 예수의 이중 계명(마 22:36-40, 신 6:5와 레 19:18 인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갈라디아서 5:14도 같은 방향이다. 바울은 율법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핵심을 찾는다 — 그 핵심은 사랑이다.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 앞 단락(7절)에서 조세·관세를 “줄 것을 주라”고 했다. 이제 8절에서 “빚을 지지 말라”고 한다. 국가에 대한 의무는 갚으면 끝나지만, 사랑의 빚은 결코 다 갚을 수 없다. 이 대비가 두 단락을 연결한다. 국가에는 의무를 다하되, 형제에 대한 사랑의 책임은 영구적이다.
때가 가깝다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13:12 “빛의 갑옷을 입자” — 무기와 갑옷 은유는 에베소서 6:10-17의 “하나님의 전신 갑주”와 같은 흐름이다. 영적 삶이 전투라는 은유. 그러나 로마서 13장은 갑옷이 “빛”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말한다. 방어 장비가 아니라 존재 방식이다 — 빛 가운데 사는 삶이 갑옷이 된다.
13:11-14 — 윤리적 권면이 종말론적 배경을 얻는다. “때”에 대한 의식이 행동을 바꾼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깝다고 보았다. 이 긴박감은 초기 기독교 윤리의 특징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 — 354년에 태어난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오랫동안 그리스도교와 거리를 두었다. 386년 밀라노 정원에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어 읽어라(tolle lege)“를 반복하는 것을 들었다. 그가 집어 든 성경에서 눈에 들어온 구절이 바로 이 13:13-14였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그는 그 자리에서 회심했다고 고백록(Confessiones, 397-400년)에 기록한다.
13:1-7은 신약 성경에서 이후 가장 많이 오용된 본문 중 하나다. 중세 황제와 교황 사이의 권력 갈등, 근대 국가들의 교회 통제, 20세기 전체주의 국가에서의 교회 복종 요구 — 모두 이 단락을 인용했다. 그러나 바울이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라고 쓸 때, 그 권세를 지탱하는 것은 4절의 전제다 — “그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선을 이루지 않는 권세가 여전히 하나님의 일꾼인가, 이 질문에 바울 본문은 직접 답하지 않는다. 그 침묵이 이후 신학의 논쟁 지점이 되었다.
13장이 끝나는 곳에서 14장이 시작된다. 외부적 권세 관계(국가)에서 내부적 공동체 관계(강한 자와 약한 자)로 시선이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