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6장 52일, 그리고 도비야의 편지
협상이라는 함정
1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우리의 나머지 원수들이 내가 성벽을 건축하여 무너진 틈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아직 성문 문짝들을 달지는 않았을 때였다.
2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사람을 보내어 말했다.
“오라, 우리가 오노(Ono) 평원의 한 촌락에서 서로 만나자.”
그러나 그들은 나를 해치려 했다.
3 내가 그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말했다.
“나는 큰 역사를 하고 있어 내려가지 못하겠습니다. 어찌 역사를 중단하고 당신들에게 내려가겠습니까?”
4 그들이 이 같은 말로 네 번 내게 보냈고 나는 같은 말로 대답했다.
5 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냈다.
봉하지 않은 편지 — 고대 근동에서 편지는 점토판이나 파피루스에 써서 봉인하는 것이 관례였다. 봉하지 않은 편지는 누구나 읽을 수 있다. 이것은 의도적인 공개 압박이다. 편지 내용을 공공연하게 퍼뜨려 소문으로 만들겠다는 위협이었다.
6 그 안에 이렇게 기록되었다.
“이방 사람들 중에 ‘유다 사람과 유대인들이 반역하려 한다. 그러므로 성벽을 건축한다. 또한 네가 그 왕이 되려 한다’는 소문이 들린다. 게셈도 그 말을 전한다.
7 또한 ‘예루살렘에 왕이 있다’고 예루살렘에서 선포할 선지자들도 세웠다고 한다. 이제 이 말이 왕에게 들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함께 의논하자.”
8 내가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했다.
“당신이 말한 그런 일들이 없었습니다. 당신 마음에서 꾸며낸 것입니다.”
9 이는 그들이 모두 우리를 두렵게 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손이 약해지면 공사가 중단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내 손을 강하게 했다.
소문 전략은 단순하다 —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두려움을 만든다. “왕에게 들릴 것”이라는 말은 고발 협박이다. 아닥사스다 왕에게 반역 혐의로 보고되면 공사는 중단되고 느헤미야는 소환될 수 있다. 산발랏의 무기는 칼이 아니라 말이었다. 느헤미야의 방어도 말이었다 — 간단하고 명확한 부인.
스마야의 거짓 예언
10 내가 들라야(Delaiah)의 아들이요 므헤다벨(Mehetabel)의 손자인 스마야(Shemaiah)의 집에 들어갔다. 그가 거기서 문을 닫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읍시다. 그들이 당신을 죽이러 밤에 올 것입니다.”
11 내가 말했다.
“나 같은 사람이 도망가겠습니까? 나 같은 사람이 성전에 들어가 목숨을 보전하겠습니까? 나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12 내가 깨달았다. 하나님이 그를 보낸 것이 아니었다. 도비야와 산발랏이 그를 고용하여 예언하게 한 것이었다.
13 그가 나를 두렵게 하여 내가 그 말을 따라 죄를 범하게 하려 했다. 그래서 그들이 내게 악명을 씌워 나를 모함하려 했다.
성전은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다. 느헤미야는 제사장이 아니었다. 스마야의 제안을 따르면 느헤미야는 율법을 어기는 죄인이 된다. 도망친 겁쟁이가 되고 동시에 율법 위반자가 된다. 두 개의 함정이 하나의 제안 안에 숨어 있었다. 느헤미야는 즉시 그 구조를 파악했다.
14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의 행위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또 여선지자 노아댜(Noadiah)와 나를 두렵게 하려 하던 나머지 선지자들의 행위도 기억하여 주십시오.
52일 만의 완공
15 엘룰월(Elul — 히브리력 여섯 번째 달, 8–9월) 이십오 일에 성벽이 완공됐다. 오십이 일이 걸렸다.
52일 — 학자들이 주목하는 숫자다. 전문 건축가 없이, 무기를 들고, 협박과 음모 속에서 52일. 성벽이 짧지 않았다 — 예루살렘 성벽의 둘레는 약 2.5킬로미터였다. 이 속도가 가능했던 이유는 3장에 있다. 각자 자기 집 앞을, 자기 마을 몫을 맡았기 때문이다. 중앙 집중식 건설이 아니라 분산된 책임이었다.
16 우리의 모든 원수들이 듣고 주변의 모든 이방인들이 두려워하여 자존심을 잃었다. 이 역사가 우리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알았기 때문이었다.
17 그날들에도 유다 귀족들이 도비야에게 여러 번 편지를 보내었고, 도비야의 편지도 그들에게 왔다.
18 유다에서 많은 사람들이 도비야와 맹세한 관계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라(Arah)의 아들 스가냐(Shecaniah)의 사위였고, 그의 아들 여호하난(Jehohanan)은 베레갸(Berechiah)의 아들 므술람(Meshullam)의 딸과 결혼했다.
19 그들이 내 앞에서 도비야의 선행을 말하고, 또 내 말을 그에게 전했다. 도비야는 나를 두렵게 하려고 편지들을 보냈다.
성벽이 완공된 뒤에도 안에서는 도비야와의 연결이 끊이지 않았다. 귀족들이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가 사위로, 인척으로 공동체 안에 연결돼 있었다. 성벽은 닫혔지만 관계는 열려 있었다. 이 문제는 13장까지 이어진다.
느헤미야 6장 끝.
52일. 그 숫자가 이방인들을 두렵게 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진짜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돌과 흙으로 쌓은 성벽 안에서, 사람과 관계와 신뢰라는 더 무른 재료로 또 다른 성벽을 쌓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