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2장 왕의 윤허, 밤의 답사
왕 앞에서의 슬픔
1 아닥사스다 왕 이십 년 니산월(Nisan — 히브리력 첫 번째 달, 3–4월에 해당)에 왕 앞에 포도주가 있었다. 내가 포도주를 들어 왕에게 드렸다. 나는 전에 왕 앞에서 수심을 보인 적이 없었다.
2 왕이 내게 말했다.
“네가 병이 없는데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것은 마음의 근심이 아니고 무엇이냐?”
내가 매우 두려워했다.
느헤미야가 두려워한 이유가 있다. 페르시아 궁정 예법상 왕 앞에서 슬픔을 드러내는 것은 엄격히 금지됐다. 왕의 면전에서 불행한 표정을 짓는 것은 왕의 행복을 위협하는 행위로 여겨졌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페르시아 왕의 면전에서는 축제와 기쁨만이 허용됐다. 느헤미야의 얼굴은 그가 숨기려 했던 것을 배신했다. 이제 피할 수 없다.
3 내가 왕에게 말했다.
“왕이시여, 만세를 누리소서. 내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성읍이 황폐하고 성문들이 불에 탔으니, 내 얼굴에 수심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4 왕이 말했다.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5 왕에게 대답했다.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앞에서 은혜를 얻었다면, 내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성읍 유다 예루살렘으로 나를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여 주십시오.”
“왕에게 대답하기 전에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했다” — 그 기도는 몇 초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짧은 묵도가 느헤미야서 전체의 리듬이다. 행동 전의 기도, 협상 중의 기도, 위기 앞의 기도. 느헤미야는 실용적인 행정가이면서 동시에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두 가지가 충돌하지 않았다.
6 왕비도 그 곁에 앉아 있었다. 왕이 내게 말했다.
“네가 며칠이나 걸려 갔다가 돌아오겠느냐?”
왕이 기뻐하며 나를 보내주었다. 내가 기한을 아뢰었다.
7 내가 또 왕에게 아뢰었다.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신다면, 유프라테스 강 서쪽 총독들에게 조서를 내려주십시오. 내가 유다에 이를 때까지 통과하게 하소서.
8 또 왕의 삼림 관리인 아삽(Asaph)에게 조서를 내리시어 성전에 딸린 영문의 문들과 성곽의 문들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해 나무를 내게 주게 하소서.”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셔서 왕이 허락했다.
예루살렘에 도착하다
9 내가 강 서쪽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조서를 그들에게 드렸다. 왕이 군대 장관들과 기마병들을 나와 함께 보냈다.
10 호론(Horon) 사람 산발랏(Sanballat)과 암몬(Ammon) 사람 관리 도비야(Tobiah · ㉸ 토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의 번영을 도모하는 사람이 왔다는 것을 듣고 심히 근심했다.
산발랏 — 사마리아 총독이었다. 1962년 요르단 와디 다일리예에서 발견된 사마리아 파피루스에는 BC 4세기에도 산발랏이라는 이름의 사마리아 총독 가문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가문은 대대로 총독 자리를 세습했던 것으로 보인다. 느헤미야 시대의 산발랏 자신은 이집트 파피루스 엘레판틴 문서(BC 407년)에도 그의 아들들의 이름과 함께 등장한다. 그의 반대는 단순한 개인적 적대감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부상이 사마리아의 권력을 위협한다는 정치적 계산이었다.
11 내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사흘을 지냈다.
밤의 답사
12 내가 밤에 일어났다. 나와 몇 사람뿐이었고,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위해 내 마음에 두신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내가 탄 짐승 외에 다른 짐승은 없었다.
13 밤에 골짜기 문(Valley Gate)을 통해 나가서 용의 우물(Dragon’s Well) 앞으로 거름 문(Dung Gate)을 향하여 예루살렘 성벽 무너진 것과 불에 탄 성문들을 살폈다.
14 샘 문(Fountain Gate)과 왕의 연못(King’s Pool)으로 가려 했으나 내가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었다.
15 그래서 밤에 시내를 따라 올라가 성벽을 살피고 골짜기 문으로 돌아왔다.
16 관리들은 내가 어디를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유다 사람들에게도, 제사장들에게도, 귀족들에게도, 관리들에게도, 나머지 일꾼들에게도 아직 말하지 않았다.
밤의 답사 — 느헤미야는 먼저 혼자 갔다. 직접 눈으로 봐야 했다. 전략은 현장에서 나온다. 사흘을 기다린 것도, 밤을 선택한 것도 — 적에게 먼저 알리지 않으려는 계산이었다. 느헤미야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철저히 실무적인 사람이었다. 두 가지는 그에게서 언제나 함께였다.
백성에게 선언하다
17 내가 그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환난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들이 불에 탔습니다. 자,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여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맙시다.”
18 내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한 말도 알려주었다.
그들이 말했다.
“일어나 건축하자.”
그들이 손을 강하게 하여 이 선한 일을 시작했다.
19 그러나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Geshem)이 이를 듣고 우리를 비웃고 멸시하며 말했다.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려는 것이냐?”
20 내가 그들에게 대답했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실 것이니, 우리 그의 종들이 일어나 건축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예루살렘에 아무 몫도, 권리도, 기억도 없다.”
“아무 몫도, 권리도, 기억도 없다” — 세 단어가 차례로 차단을 선언한다. 몫(몫을 나눌 자격), 권리(법적 청구권), 기억(역사적 연결). 느헤미야는 산발랏과 도비야의 반대를 정치적 논쟁으로 받아치지 않았다. 그들의 연결 자체를 끊었다. 이것이 경계의 언어다.
느헤미야 2장 끝.
왕의 서신을 받아 기마병을 이끌고 온 느헤미야. 그러나 밤에는 혼자 당나귀를 타고 무너진 돌들 사이를 걸었다. 낮의 권위와 밤의 답사 — 두 가지가 겹쳐 한 사람이 된다. 이제 성벽을 나눠 맡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