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6장 7일 왕과 이세벨
예후의 바아사 심판 선언
1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니(Hanani)의 아들 예후(Jehu)에게 임하여 바아사에게 전하라 하셨다.
2 “내가 너를 먼지 가운데서 들어올려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게 했다. 그런데 너는 여로보암의 길로 걸어 내 백성 이스라엘을 죄에 빠트려 그 죄로 나를 격분시켰다.
3 내가 바아사와 그의 집을 쓸어버리겠다. 여로보암의 집처럼 만들겠다.
4 바아사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으면 개가 먹고, 들에서 죽으면 하늘의 새가 먹을 것이다.”
5 바아사의 행적과 그가 한 일과 그의 능력이 이스라엘 왕들의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다.
6 바아사가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들어 디르사(Tirzah)에 장사되었다. 아들 엘라(Elah)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7 또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예언자 예후를 통해 바아사와 그의 집을 향해 임했다. 바아사가 행한 모든 악과 그 손으로 만든 것들로 여호와를 격분시켰기 때문이다. 또 여로보암의 집과 같이 되었기 때문이다.
엘라와 시므리
8 유다 왕 아사 이십육년에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디르사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 년 동안 왕이 되었다.
9 그의 신하 시므리(Zimri)가 그를 모반하였다. 시므리는 병거 절반을 지휘하는 장관이었다. 엘라가 디르사에서 신하인 아르사의 집에서 술에 취해 있을 때였다.
10 시므리가 들어와 그를 쳐죽이고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유다 왕 아사 이십칠년이었다.
11 시므리가 왕이 되어 왕위에 앉자마자 바아사의 온 집을 쳤다. 남자는 친족이든 친구든 한 사람도 남기지 않았다.
12 시므리가 바아사의 온 집을 멸하였다. 예언자 예후를 통해 여호와가 바아사에 대해 말씀하신 것과 같았다.
13 이는 바아사와 그의 아들 엘라의 모든 죄 때문이었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죄에 빠트려 헛된 것들로 여호와를 격분시킨 죄였다.
14 엘라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들의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다.
시므리의 7일
15 유다 왕 아사 이십칠년에 시므리가 디르사에서 칠 일 동안 왕이 되었다. 백성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속한 깁브돈(Gibbethon)에 진을 치고 있었다.
16 진에 있는 백성이 시므리가 모반하여 왕을 죽였다는 말을 들었다. 온 이스라엘이 그 날 진에서 군대 사령관 오므리(Omri)를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다.
17 오므리와 온 이스라엘이 깁브돈에서 올라와 디르사를 에워쌌다.
18 시므리가 성이 함락되는 것을 보고 왕궁 안으로 들어가 왕궁에 불을 놓아 그 안에서 죽었다.
19 이는 그가 범한 죄 때문이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로보암의 길로 걸으며 이스라엘을 죄에 빠트린 죄 때문이었다.
20 시므리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모반한 것은 이스라엘 왕들의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다.
시므리의 왕권은 7일로 끝났다. 성경에서 가장 짧은 왕위다. 그는 쿠데타로 집권했고, 더 강력한 쿠데타에 의해 끝났다. 그의 이름이 이후에도 배신자의 대명사로 쓰인다 — 열왕기하 9장에서 예후가 즉위할 때 요람이 “시므리야, 이 주인 살인자야”라고 외친다.
오므리 — 사마리아를 세우다
21 그 때 이스라엘 백성이 둘로 나뉘었다. 절반은 기낫(Ginath)의 아들 디브니(Tibni)를 왕으로 삼으려 했고, 절반은 오므리를 따랐다.
22 오므리를 따른 백성이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따른 백성을 이겼다. 디브니가 죽고 오므리가 왕이 되었다.
23 유다 왕 아사 삼십일년에 오므리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십이 년 동안 왕이 되었다. 디르사에서 육 년을 다스렸다.
24 그가 세멜(Shemer)에게서 은 두 달란트를 주고 사마리아(Samaria) 산을 샀다. 그 산 위에 성을 쌓고 그 산의 원래 주인 세멜의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라 불렀다.
오므리의 사마리아 건설은 BC 880년경의 일이다. 정치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새 왕조의 수도를 기존 지파 영토가 아닌 직접 구매한 땅에 세움으로써 어느 지파에도 종속되지 않는 왕의 도성을 만들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택한 것과 같은 논리다. 아시리아 비문들은 훗날 북왕국 이스라엘 전체를 “오므리의 집(Bit Humri)“이라고 불렀다. 1868년에 발견된 모압 석비(메사 비석, Mesha Stele) — 모압 왕 메사가 새긴 — 에도 오므리의 이름이 등장한다. 성경 밖에서 이스라엘 왕의 이름이 직접 확인되는 가장 이른 증거 중 하나다.
25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이전의 모든 왕보다 더 악하게 행하였다.
26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길로 행하며 이스라엘을 그 죄에 빠트려 헛된 것들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격분시켰다.
27 오므리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행한 능력이 이스라엘 왕들의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다.
28 오므리가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들어 사마리아에 장사되었다. 그의 아들 아합(Ahab)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아합과 이세벨
29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유다 왕 아사 삼십팔년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 이전의 모든 왕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더 악을 행하였다.
31 그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가볍게 여겨, 시돈 왕 엣바알(Ethbaal)의 딸 이세벨(Jezebel · ㉸ 이제벨)을 아내로 맞아 바알(Baal)을 섬기며 경배했다.
32 그가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을 세우고 바알을 위한 제단을 만들었다.
33 아합이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다. 아합이 그 이전의 이스라엘 모든 왕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더 격분시켰다.
이세벨 — 페니키아 시돈의 공주다. 시돈 왕 엣바알의 딸. 그녀는 바알과 아세라 숭배를 이스라엘 왕궁에 공식적으로 들여왔다.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왕실이 후원했다. 1964년 사마리아 발굴에서 상아 부조와 함께 “이세벨에게 속한”이라고 읽힐 수 있는 인장이 발견되었다. 학계에서는 그것이 이세벨의 것인지 논쟁 중이다.
34 아합 때에 벧엘(Bethel) 사람 히엘(Hiel)이 여리고(Jericho · ㉸ 예리코)를 건축했다. 기초를 놓을 때 맏아들 아비람(Abiram)을 잃었고, 문을 세울 때 막내아들 스굽(Segub)을 잃었다. 여호와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Joshua)를 통해 하신 말씀대로였다.
다음 장 — 엘리야가 처음 등장한다. 그가 아합 앞에 나타나 선언한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