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2장 슬픔의 편지, 용서의 지시
왜 다시 슬픔으로 가지 않으려 했나
1 내가 다시 너희에게 근심으로 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라.
2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내가 근심하게 한 자 외에 누가 나를 기쁘게 하겠느냐?
3 내가 이것을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받을까 염려함이요, 또 나의 기쁨이 너희 무리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라.
4 내가 마음에 큰 환난과 애통함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보다 앞서 바울이 보낸 이른바 “눈물의 편지”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일부 학자들은 고린도후서 10-13장이 그 편지의 일부라고 주장하지만, 다수는 별개의 분실된 편지로 본다. 바울은 그 편지를 쓸 때 울었다고 고백한다. 편지는 훈계가 아니었다 — 고통에서 나온 사랑의 토로였다.
죄 지은 자를 용서하라
5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그가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 내가 너무 심하게 말하지 아니하려 하여 — 너희 무리를 근심하게 한 것이라.
6 이러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서 받은 벌이 족하도다.
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8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에게 나타내라.
9 내가 이를 위하여 너희에게 썼노니, 너희가 모든 일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함이라.
10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11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니라.
5절에서 언급되는 “근심하게 한 자”의 신원은 불분명하다. 고린도전서 5장의 근친상간 사건과 연관된 인물인지, 바울을 공개적으로 모욕한 별개의 인물인지 — 본문은 말하지 않는다. 바울은 구체적 이름 대신 사건의 윤리적 결론을 향해 나아간다. 징계는 이미 충분했다. 이제는 용서할 때다.
디도를 만나기까지
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Troas · ㉸ 트로아스)에 이르렀을 때에 주 안에서 내게 문이 열렸으되,
13 내 형제 디도(Titus · ㉸ 티토)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에게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향기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17 우리는 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로서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바울은 드로아에서 선교의 문이 열렸음에도 디도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떠난다. 이것은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선교 기회보다 동역자의 안부가 더 급했다는 뜻인가 — 아니면 디도가 고린도에서 가져올 소식이 선교 전략 전체를 결정할 만큼 중요했다는 것인가. 7장에서 디도와의 재회가 어떻게 바울에게 기쁨을 가져다주는지 서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