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2장 약함이 자랑이 된다
셋째 하늘의 환상
1 내가 부득불 자랑하겠으나 무익하도다. 이제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에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서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자랑을 그치노라.
바울은 자신의 신비 경험을 3인칭으로 서술한다 — “내가 한 사람을 아노니.” 이것은 겸손의 장치다. 환상을 직접 자랑하는 대신 거리를 두어 말한다. “십사 년 전”이라는 구체적 언급은 AD 42년경을 가리킨다 — 바울의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 직전쯤이다. “셋째 하늘”은 유대 묵시 문학에서 하나님의 거처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바울은 그곳에서 무엇을 들었는지 말하지 않는다 — “말할 수 없는 말”이었다고만 한다.
사탄의 가시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사탄의 가시(σκόλοψ τῇ σαρκί)“의 정체는 알 수 없다. 가장 많이 제안된 학설은 안질(갈라디아서 4:15에서 바울이 “할 수 있었다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을 것”이라 말한 것에 근거함), 말라리아, 간질, 언어 장애, 우울증이다. 바울 자신은 설명하지 않는다. 그가 이야기하는 것은 정체가 아니라 그 경험에서 받은 응답이다.
9절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ἀρκεῖ σοι ἡ χάρις μου)” — 이 구절은 신약에서 가장 많이 위로로 인용되는 말 중 하나다. 바울은 세 번 기도했고, 거절당했다. 하나님의 응답은 제거가 아니라 충분한 은혜였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ἡ γὰρ δύναμις ἐν ἀσθενείᾳ τελεῖται)” — 이 역설이 고린도후서 전체의 신학적 핵심이다. 약함은 제거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능력이 드러나는 장소다.
다시 어리석은 자의 자랑
11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하겠거늘 너희가 나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하였으니 내가 아무것도 아닐지라도 저 지극히 크다 하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12 사도의 표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13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다른 교회들만 못한 것이 무엇이냐? 다만 내가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것인가? 너희는 이 불공평한 것을 용서하라.
14 보라 이제 내가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고 있는데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너희니라. 자녀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자녀를 위하여 하는 것이니라.
15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며 재물을 쓰겠고 또 나 자신까지도 쓰리라. 내가 너희를 더 사랑할수록 너희는 나를 덜 사랑하겠느냐?
바울을 향한 혐의들
16 그러나 내가 짐이 되지는 아니하였으나 교활하여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리로다.
17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들 중에 누구로 너희를 이익 취한 일이 있더냐?
18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는데, 디도가 너희 것을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동일한 보행 중에 처하지 아니하였느냐?
19 너희는 우리가 너희에게 핑계하는 줄로 생각하겠느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20 내가 두려워하건대 내가 갈 때에 너희가 내 뜻과 같지 않고, 내가 너희 뜻과 같지 않아서 혹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21 내가 다시 올 때에 나의 하나님이 너희 앞에서 나를 낮추실까, 또는 내가 전에 죄를 지은 많은 사람이 자기 더러움과 음행과 호색을 행한 것을 회개하지 아니함으로 나는 슬픔이 있을까 두려워하노라.
고린도후서는 이 시점에서 두 가지 두려움을 나란히 놓는다. 바울이 갔을 때 공동체가 분열되어 있을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회개하지 않은 자들로 인한 슬픔에 대한 두려움. 이 고백은 강한 사도의 언어가 아니다. 사랑하는 공동체를 앞에 두고 내면을 드러내는 목회자의 언어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에게 자랑이었고 동시에 근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