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6장 완전한 데로 나아가자
기초를 떠나
1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도의 기초를 떠나 완전한 데로 나아가자. 죽은 행실에 대한 회개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
“완전한 데로 나아가자(에피 텐 텔레이오테타 페로메다, ἐπὶ τὴν τελειότητα φερώμεθα)” — “페로메다”는 수동태로 “운반되다”, “이끌려 가다”를 뜻하기도 한다. 완성을 향해 함께 나아가자, 혹은 함께 이끌려 가자. 저자는 독자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5장에서 진단한 영적 유아기를 극복하는 길은, 기초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초 위에 서서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다. “기초를 떠나”는 기초를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다. 기초에 앉아 있지 말라는 것이다.
2 세례들에 대한 가르침, 손 얹음, 죽은 자들의 부활, 영원한 심판 — 이런 기초적인 것들을 다시 놓지 않겠다.
3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그렇게 하겠다.
가장 어려운 경고
4 한번 빛을 받고, 하늘의 선물을 맛보고, 성령에 참여하는 자가 된 이들,
5 하나님의 좋은 말씀과 다가올 세대의 능력들을 맛본 이들,
6 그들이 타락한다면, 다시 회개로 새롭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자신들의 손으로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공개적으로 수치를 당하게 하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전체에서 가장 많이 논쟁된 단락이다(6:4-6). 세 가지 해석이 주요하게 경쟁한다. (1) 칼빈주의 — 이 사람들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표면적 경험만 했을 뿐이다. (2) 알미니우스주의 — 실제 구원을 받은 자가 구원을 잃을 수 있다. (3) 가상적 경고 — 저자가 독자들을 깨우기 위해 가정적 상황을 제시한 것이다. 어느 해석이든, 저자의 의도는 분명하다 — 타락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라는 경고다.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다” — 그리스도를 모욕하는 공개적 배교 행위를 가리킨다. 단순한 죄가 아니라, 철저하고 최종적인 거절이다.
7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경작하는 자들에게 유용한 채소를 내는 땅은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
8 그러나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땅은 버림받아 저주에 가깝고 결국 불에 태워진다.
더 좋은 것을 확신한다
9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말하지만, 여러분에 대해서는 구원에 관계된 더 좋은 것들을 확신한다.
10 하나님은 불의하지 않으시다. 여러분이 성도들을 섬기고 지금도 섬기면서 그의 이름을 위해 보여준 여러분의 사랑의 수고를 잊지 않으신다.
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여러분 각자가 소망의 완전한 확신에 이르기 위해 끝까지 이 열심을 보이는 것이다.
12 그렇게 해서 게으른 자들이 되지 말고, 믿음과 인내로 약속들을 상속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가 되라.
경고 다음에는 위로가 온다. 저자는 독자들을 낭떠러지 끝에 세워두지 않는다. “더 좋은 것들을 확신한다” — 히브리서 저자의 목회적 태도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경고는 낙인이 아니라 부름이다. 게으름에 대한 경고는, 그 게으름이 치명적이 되기 전에 돌아서라는 초대다.
두 가지 변할 수 없는 것
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자기보다 더 큰 이로 맹세할 것이 없으셨으므로, 자기 자신을 두고 맹세하셨다.
14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을 주고 복을 주겠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15 그리고 아브라함은 인내하여 약속을 받았다.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큰 이로 맹세한다. 맹세는 모든 다툼을 종결시키는 보증이다.
17 그래서 하나님은 약속의 상속자들에게 그 뜻이 변할 수 없음을 더 분명하게 보여주시려고, 맹세로 보증하셨다.
18 이 두 가지 — 약속과 맹세 — 는 변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하나님은 이것들에서 거짓말하실 수 없다. 우리는 앞에 있는 소망을 붙잡으려 피난처로 달려온 이들로서, 이것들을 통해 강한 격려를 받는다.
19 이 소망은 우리 영혼의 닻이다. 안전하고 확실한 것으로, 휘장 안쪽으로 들어간다.
20 거기에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앞서 들어가셨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영혼의 닻” —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닻은 폭풍 속 선박의 생명줄이었다. 이 은유는 이미 초대 교회의 상징이 되어, 카타콤 미술에도 닻이 등장한다. 소망이 단순한 낙관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현실에 고정된 것임을 말한다. 닻줄이 휘장 안쪽으로 뻗어 있다 — 우리가 갈 수 없는 지성소 안에, 예수가 이미 들어가 있다. 그것이 닻의 다른 쪽 끝이다.
6장은 히브리서에서 가장 어두운 경고(4-6절)와 가장 밝은 소망(17-20절)이 한 장 안에 공존하는 곳이다. 저자는 독자들을 벼랑 끝에 세워 두지 않는다. 경고 이후 바로 “더 좋은 것들을 확신한다”(9절)고 말한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 약속과 맹세, 두 가지 변하지 않는 것에 소망을 걸라고. 저자의 교육 방식이 여기서 드러난다. 두려움으로 막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이후에 반드시 소망을 제시한다. 경고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완전한 데로 나아가다
20 거기에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앞서 들어가셨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6장의 마지막 두 절이 가장 중요하다. “영혼의 닻”이라는 이미지와 “앞서 들어가신” 예수 — 이 두 이미지가 결합되어 있다. 닻줄이 드리워진 방향이 곧 예수가 들어가신 곳이다. 지성소.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에 그가 먼저 갔다. 그것이 닻의 안전을 보장한다. 폭풍이 불어도 닻이 고정된 곳이 있는 한, 배는 흘러가지 않는다. 저자는 5장에서 멜기세덱을 처음 언급했다가 독자들의 영적 상태 때문에 잠시 멈췄다. 이제 6장의 끝에서 다시 그 이름으로 돌아온다. 7장으로 가는 문이 열린다.
다음 장 — 멜기세덱이 누구인지, 그의 제사장직이 왜 아론의 제사장직보다 높은지, 마침내 본격적인 설명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