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영웅들
믿음이란 무엇인가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2 옛 사람들이 이 믿음으로 증언을 얻었다.
3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안다. 보이는 것들이 나타난 것들에서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히브리서 11:1은 신약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믿음의 정의다. “실상(휘포스타시스, ὑπόστασις)“은 본래 “아래에 서 있는 것”, 즉 기초나 보증을 뜻한다. “증거(엘렝코스, ἔλεγχος)“는 법정에서 유죄를 입증하는 증거를 가리키는 말이다. 믿음은 감정이 아니다. 바라는 것이 실재함을 보여주는 증거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확증이다. 그리스어의 두 단어 모두 무게 있는 법률·철학 용어다.
창세에서 족장들까지
4 믿음으로 아벨(Abel)은 가인(Cain · ㉸ 카인)보다 더 좋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 그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증언을 받았다. 하나님이 그의 예물에 대해 증언하셨다. 그는 죽었지만 그 믿음으로 여전히 말한다.
5 믿음으로 에녹(Enoch)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다. 하나님이 그를 옮기셨으므로 찾을 수가 없었다.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증언을 받았다.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그가 계신다는 것과,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7 믿음으로 노아(Noah)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들에 대한 경고를 받고, 경건한 두려움으로 그 집안을 구원하기 위해 방주를 준비했다. 그 믿음으로 그는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다.
아브라함의 믿음
8 믿음으로 아브라함(Abraham)은 부르심을 받아, 자신이 상속받을 곳으로 나아갔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나갔다.
9 믿음으로 그는 약속의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다. 마치 타향에 사는 것처럼, 같은 약속을 함께 상속받은 이삭(Isaac · ㉸ 이사악)과 야곱(Jacob)과 함께 천막에서 살았다.
10 그는 기초가 있는 성,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세우신 성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1장과 로마서 4장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장 깊이 다루는 두 신약 본문이다. 로마서 4장은 믿음과 율법의 관계에서 아브라함을 다룬다. 히브리서 11장은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자로 아브라함을 제시한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 이 한 구절이 아브라함의 믿음 전체를 요약한다. 목적지가 불분명했고, 이유도 설명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출발했다.
11 믿음으로 사라(Sarah)도 나이가 들어 임신할 능력을 얻었다. 약속하신 분을 신실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12 그러므로 죽은 것 같은 한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왔다.
13 이 모든 사람들은 믿음 안에서 죽었다. 약속을 받지 못한 채로.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자신들이 땅에서 나그네요 이방인임을 고백했다.
14 그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고향을 찾고 있음을 드러낸다.
15 그들이 나온 곳을 생각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16 그러나 그들은 더 좋은 곳을, 곧 하늘의 것을 사모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라 불리심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성을 준비하셨다.
모리아의 결박
17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 이삭을 드렸다. 약속들을 받은 자가 자기 독자를 드렸다.
18 그에게 이미 이렇게 말씀하셨음에도 — “이삭 안에서 네 자손이 불릴 것이다.”
19 그는 하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도 이삭을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를 부활의 모형으로 되돌려 받았다.
창세기 22장의 해석.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되돌려 받은 것이 “부활의 모형”이라고 말한다. 아들이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믿음 안에서는 이미 이삭이 드려진 것이었고, 되찾은 것이었다. 이 사건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미리 보여주는 모형으로 읽힌다.
20 믿음으로 이삭은 다가올 일들에 대해 야곱과 에서를 축복했다.
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두 아들 각각을 축복하고, 지팡이 머리에 기대어 경배하였다.
22 믿음으로 요셉(Joseph)은 임종할 때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나갈 것을 언급하고, 자기 뼈에 대해 명하였다.
모세의 믿음
23 믿음으로 모세(Moses)는 태어날 때 그 부모에게 석 달 동안 숨겨졌다. 그들은 아기가 아름다운 것을 보았고,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딸의 아들로 불리기를 거부했다.
25 죄의 잠깐의 즐거움을 누리기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학대받는 것을 선택하여,
26 이집트의 보화들보다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수모를 더 큰 재물로 여겼다. 그는 보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27 믿음으로 그는 왕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집트를 떠났다. 그는 보이지 않으시는 분을 보는 것처럼 굳게 인내하였다.
28 믿음으로 그는 유월절과 피 뿌리는 것을 제정했다. 맏아들들을 멸하는 자가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고.
29 믿음으로 그들은 마른 땅처럼 홍해(Red Sea)를 건넜다. 이집트인들이 이것을 시도하다가 삼켜졌다.
모세에게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수모”라는 표현이 쓰인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모세가 예수를 알았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때문에 받는 고난 전체가,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신학적 독법이다. 히브리서의 독자들이 압박 속에 있었음을 기억하면, 이 구절의 목적이 보인다 — 모세도 우리와 같은 선택의 자리에 있었다.
가나안 정복과 라합
30 믿음으로 여리고(Jericho · ㉸ 예리코)의 성벽들이 이레 동안 돌아다닌 후에 무너졌다.
31 믿음으로 기생 라합(Rahab)은 정탐꾼들을 평화롭게 맞이했으므로 불순종한 자들과 함께 멸망하지 않았다.
라합은 히브리서 11장에서, 그리고 야고보서 2:25에서 믿음과 행위의 연결을 보여주는 모범으로 제시된다. 이방 여인, 기생 —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자리에 있던 이가 믿음의 영웅 명단에 오른다. 히브리서는 이 점을 강조하지 않고 그냥 이름을 부른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름 없는 믿음의 사람들
32 또 내가 무엇을 더 말하겠느냐? 시간이 부족하여 기드온(Gideon), 바락(Barak), 삼손(Samson), 입다(Jephthah), 다윗, 사무엘 그리고 예언자들에 대해 다 말할 수가 없다.
33 믿음으로 그들은 나라들을 정복하고, 의를 실천하고, 약속들을 얻고, 사자들의 입을 막고,
34 불의 맹렬함을 끄고, 칼의 날을 피하고, 연약함에서 강하게 되고, 전쟁에서 용사가 되고, 외국 군대들을 물리쳤다.
35 여자들은 자기 죽은 자들을 부활로 돌려받았다. 또 다른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으려 하여 석방을 거부하고 고문을 받았다.
36 또 다른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을 받았고, 그 외에도 결박과 투옥을 당했다.
37 돌에 맞았고, 시험을 당했고, 톱으로 잘렸고, 칼에 죽었고, 양 가죽과 염소 가죽을 입고 떠돌며 궁핍함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다.
38 세상은 그들에게 합당하지 않았다. 그들은 광야와 산과 굴과 땅의 구멍들에서 방황했다.
11:35b-38은 명백히 마카베오 시대의 순교자들을 배경으로 한다. “톱으로 잘렸다” — 유대 전통에서 이사야의 순교 방식으로 전해진다. “고문을 받되 석방을 거부했다” — 주전 2세기 마카베오 시대의 순교자들 이야기다(마카베오하 6-7장). 이름이 없는 사람들이 절반 이상이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믿음들도 하나님께는 기억된다.
약속을 받지 못한 채로
39 이 모든 사람들이 믿음으로 증언을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했다.
40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것을 미리 보셨기 때문이다. 우리 없이 그들이 온전해지지 않도록.
11장의 마지막 두 절이 전체 명단의 의미를 결산한다. 믿음의 영웅들은 위대했다. 그러나 그들도 기다렸다. 약속을 보았지만 받지는 못했다. 완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왔고, 그 완성에 구약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도 함께 포함된다. “우리 없이 그들이 온전해지지 않도록” — 히브리서의 독자들, 즉 지금 압박 속에 있는 신자들이, 구약 성도들의 믿음의 완성에 필요한 존재라는 선언이다. 포기하면 그 명단의 고리 하나를 끊는 것이다.
다음 장 — 이 모든 증인들이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이제 우리가 뛸 차례다. “예수를 바라보자”는 명령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