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2장 예수를 바라보자
구름 같이 둘러싼 증인들
1 이러므로 이같이 큰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우리도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달려가자.
2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자기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자기에게 거역한 죄인들의 그 같은 대적 함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을 것이다.
12:1-2는 신약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구절 중 하나다. 11장 전체가 서론이었다. 그 긴 명단은 이 두 절을 위한 것이었다.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 이 표현은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을 연상시킨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경주자들은 관중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11장의 영웅들이 그 자리에 있다. 그들이 응원하고 있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 — 원문 ‘아르케고스 카이 텔레이오테스(ἀρχηγὸς καὶ τελειωτής)’. 아르케고스는 길을 먼저 가는 자, 개척자, 창시자를 뜻한다. 텔레이오테스는 완성하는 자. 예수는 믿음의 경주를 먼저 달리셨고, 또 그 경주를 완성하신 분이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분은 제도도, 규칙도, 철학도 아니라 한 인격이다.
아직 피를 흘리지 않았다
4 너희가 죄에 대항하여 싸우되 아직 피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않았다.
5 또 아들들에게 권고하는 것처럼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을 잊었느냐?
“내 아들아, 주의 훈련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가 사랑하는 자를 훈련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모든 아들을 채찍질하신다.”
잠언 3:11-12 인용. “아직 피를 흘리기까지는 않았다” — 저자는 독자들의 고난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실제로 고난을 받았다(10:32-34). 그러나 순교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그 기준으로 예수의 고난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이 비교는 독자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아직 버틸 수 있음을 믿는 것이다.
징계는 사랑이다
7 훈련으로 참아라. 하나님은 아들들에게 대하시듯 너희를 대하신다. 아버지가 훈련시키지 않는 아들이 있겠느냐?
8 만일 너희가 모든 사람이 받는 훈련에서 제외되었다면, 너희는 서자요 친아들이 아닌 것이다.
9 더욱이 우리에게는 육신의 아버지들이 있어서 우리를 훈련하였고, 우리는 그들을 공경하였다. 하물며 영들의 아버지께 복종하는 것이 훨씬 더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10 육신의 아버지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잠깐 우리를 훈련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거룩함에 참여하게 하려고 우리에게 유익한 것을 위해 훈련하신다.
11 모든 훈련은 당장에는 기쁜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나중에 그것으로 훈련받은 자들에게 의와 평화의 평온한 열매를 낳는다.
히브리서 12장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공헌 중 하나다. 고난은 하나님의 부재의 증거가 아니라, 아버지의 돌봄의 증거라는 역전이다. 이 논리는 독자들의 상황에 직접 대응한다 — 그들은 압박을 받고 있었다. “우리 신앙이 틀린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올 상황이었다. 저자는 그 압박이 오히려 아버지가 함께하심의 증거라고 말한다.
약한 손과 무릎을 세워라
12 그러므로 처진 손과 떨리는 무릎을 세워라.
13 발을 위해 곧은 길을 만들어라. 절뚝거리는 것이 탈구되지 않고 오히려 치유되도록.
14 모든 사람과 화평하고, 거룩함을 따라가라. 그것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보지 못할 것이다.
15 아무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어떤 쓴 뿌리가 싹나서 괴롭게 하고, 그것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16 한 끼 음식을 위해 자기 장자권을 팔아버린 에서(Esau · ㉸ 에사우)처럼, 음행하거나 세속적인 자가 없도록 하라.
17 그가 나중에 축복을 상속받기를 원했으나 거부당한 것을 너희가 알듯이, 눈물로 간절히 구했어도 마음을 바꿀 기회를 찾지 못했다.
에서의 이야기가 경고의 실례로 등장한다. 에서는 미래의 가치(장자권)를 현재의 필요(배고픔)보다 낮게 여겼다. 히브리서의 독자들이 회당으로 돌아가려는 것도 유사한 선택이다 — 현재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더 큰 것을 내어줄 위험. “눈물로 간절히 구했어도” — 후회는 있었지만 회복은 없었다. 이 경고는 잔인하게 보이지만, 저자의 목적은 단 하나 — 그 지점에 도달하지 말라는 것이다.
두 개의 산
18 너희는 만질 수 있는 것 — 불이 타오르며, 흑암과 어둠과 폭풍이 있는 산에 이른 것이 아니다.
19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었고, 그 소리를 들은 자들은 더 이상 말씀이 자기들에게 더해지지 않기를 구한 그 산이 아니다.
20 그들이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짐승이라도 그 산에 닿으면 돌에 맞아야 한다”는 명령을.
21 그 광경이 너무나 두려워서 모세(Moses)도 “나는 두렵고 떨린다”고 말하였다.
22 그러나 너희는 시온(Zion)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 하늘의 예루살렘(Jerusalem)에 이르렀다. 수만의 천사들의 모임,
23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 만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들,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고 아벨의 피보다 더 좋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에 이르렀다.
시내 산과 시온 산의 대조. 시내 산은 모세가 율법을 받은 곳이다(출애굽기 19-20장). 이스라엘이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경계가 쳐졌고, 천둥과 번개와 짙은 구름이 있었다. 시온 산은 하나님의 거처, 새 예루살렘, 하늘의 총회의 자리다. 저자는 독자들이 이미 두 번째 산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 앞으로 가야 할 곳이 아니라, 이미 서 있는 자리다. 그것을 알고 거기서 살아야 한다.
흔들리지 않는 나라
25 말씀하시는 분을 거역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땅에서 경고하신 분을 거역한 자들이 피하지 못하였다면, 하늘에서 경고하시는 분에게서 우리가 돌아서면 더욱 그럴 것이다.
26 그때 그의 음성이 땅을 흔들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이렇게 약속하셨다. “내가 다시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흔들겠다.”
27 “다시 한 번”이라는 말은 흔들리는 것들 — 곧 만들어진 것들 — 이 제거되어, 흔들리지 않는 것들이 남아 있음을 나타낸다.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으므로, 은혜를 받자. 그리하여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자.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기 때문이다.
학개 2:6 인용. “다시 한 번”의 흔들림은 창조 세계의 종말론적 갱신을 가리킨다. 흔들릴 수 있는 것은 모두 사라진다. 남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나라 — 이미 받은 나라다. 히브리서의 독자들은 현재의 압박 때문에 흔들리고 있었다. 저자는 그들이 서 있는 나라 자체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선언한다. 무너지는 것들은 무너지게 두라. 남는 것에 서라.
다음 장 — 마지막 권면들이 짧고 구체적으로 이어진다. 형제 사랑, 손님 대접, 결혼, 돈, 지도자에 대한 복종. 그리고 “영문 밖”이라는 마지막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