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3장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

형제 사랑과 손님 대접

1 형제 사랑을 계속하라.

2 나그네를 대접하기를 잊지 마라. 이것으로 어떤 이들은 모르는 중에 천사들을 대접하였다.

3 갇힌 자들을 생각하라, 마치 너희도 함께 갇힌 것처럼. 학대받는 자들을 생각하라, 너희도 몸 안에 있으므로.

13:2의 “모르는 중에 천사들을 대접하였다”는 창세기 18-19장을 암시한다. 아브라함이 세 나그네를 대접한 이야기, 그리고 롯이 소돔에서 두 천사를 맞이한 이야기다. 히브리서의 맥락에서 이것은 구체적 실천의 권면이다. 1장에서 천사들이 섬기는 영이라고 했는데, 나그네로 온 이들 중에 그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자 격려다.

4 결혼이 모든 사람에게 귀하게 여겨지게 하고, 잠자리를 더럽히지 마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지금 가진 것으로 만족하라. 그분께서 “나는 결코 너를 버리지 않겠고, 결코 너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하게 말할 수 있다. “주님은 내 도움이시니 나는 두려워하지 않겠다.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신명기 31:6과 시편 118:6-7의 조합. 히브리서가 인용하는 마지막 구약 인용 중 두 개다. “나는 결코 너를 버리지 않겠다” — 히브리어 원문은 세 개의 부정어가 겹쳐진다. “절대로 결코 버리지 않겠다”에 해당하는 강조법이다. 헬라어도 두 개의 부정어로 이 강도를 살렸다.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 독자들은 사람들의 박해가 두려워 돌아가려 했다. 저자는 이 질문으로 그 두려움의 근거를 다시 재보도록 한다.


지도자들을 기억하라

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을 기억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한 이들을. 그들의 삶의 마무리를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아라.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9 다양하고 이상한 가르침들에 이리저리 끌려다니지 마라. 마음을 음식이 아닌 은혜로 강하게 하는 것이 좋다. 음식으로 행하는 자들은 유익을 얻지 못하였다.

13:8은 히브리서에서, 아니 신약 전체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구절 중 하나다. 바로 앞절(7절)에서 죽은 지도자들을 기억하라고 했다. 지도자들은 왔다가 갔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 인간 지도자의 죽음이 남긴 공백을 채우는 선언이다. 그 공백 자리에 이 불변하는 이름이 선다.


영문 밖에서

10 우리에게는 제단이 있다.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것으로부터 먹을 권한이 없다.

11 속죄제를 위한 동물들의 피는 대제사장이 성소에 가지고 들어가지만, 그 몸들은 진영 밖에서 태워진다.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다.

13 그러므로 그를 향해 진영 밖으로 나아가자. 그의 수치를 짊어지고.

14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영구적인 성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다가올 성을 찾고 있다.

“진영 밖” 혹은 “영문 밖” — 이 이미지는 히브리서 전체의 결론적 초대다. 레위기 16장에서 속죄제물은 진영 밖에서 불태워졌다. 부정한 것, 제거해야 할 것을 짊어졌기 때문에 진영 안에 있을 수 없었다. 예수는 예루살렘 성문 밖, 골고다에서 죽으셨다. 당시의 규범에서 가장 불명예스럽고 가장 부정한 죽음의 방식이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그 “밖”으로 나오라고 한다. 안전한 회당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서 계신 자리 — 수치와 배제의 자리 — 로 나가라. “그의 수치를 짊어지고”라는 표현은 11장에서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수모를 더 큰 재물로 여겼다”(11:26)는 것과 맞닿아 있다. 히브리서는 이 반복으로 수미쌍관(首尾雙關)의 구조를 이룬다.

“영구적인 성이 없다” — 예루살렘 성전은 아직 서 있었다(이 서신이 AD 70년 전에 쓰였다면). 그러나 저자는 이미 그것을 영구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 신자들의 도성은 “다가올 성”이다. 그 도성은 11:10에서 아브라함이 기다린 “기초가 있는 성,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세우신 성”이다.


마지막 권면들

15 그러므로 그를 통해 찬양의 제사를 항상 하나님께 드리자. 그것은 그의 이름을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다.

16 선을 행하고 나눔을 잊지 마라. 이런 제사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그들에게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의 영혼들을 위해 지켜보는 자들로서 결산을 해야 한다. 그들이 기쁨으로 이 일을 하고 신음하며 하지 않도록 하라. 신음하며 하는 것은 너희에게 유익이 없다.

18 우리를 위해 기도하라.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다고 우리는 확신하며, 모든 일에서 바르게 행하기를 원한다.

19 내가 더욱 간절히 이것을 부탁하는 것은, 너희에게 빨리 돌아갈 수 있도록.


마지막 축복

20 평화의 하나님, 영원한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분,

21 그가 모든 좋은 것에서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그의 뜻을 행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의 앞에서 기쁘신 것을 우리 안에 이루시기를.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히브리서 13:20-21은 신약 전체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축복 문장 중 하나로 평가된다. “영원한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 서신 전체의 신학이 이 한 구절에 압축된다. “양들의 큰 목자” — 시편 23편과 요한복음 10장의 언어가 울린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이끌어 내신”으로 표현하는 것은, 마치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것처럼, 죽음이라는 마지막 속박에서 아들을 이끌어 내신 것을 암시한다.


마지막 인사

22 형제들이여, 이 권면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부탁한다. 내가 너희에게 간단히 썼다.

23 우리의 형제 디모데(Timothy · ㉸ 티모테오)가 석방된 것을 알기 바란다. 그가 속히 온다면, 그와 함께 너희를 볼 것이다.

24 너희를 인도하는 모든 자들과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라. 이탈리아에서 온 이들이 너희에게 문안한다.

25 은혜가 너희 모두에게 있을지어다.

“이탈리아에서 온 이들이 너희에게 문안한다” — 이 구절은 수신자가 이탈리아(로마)였는지, 아니면 저자가 이탈리아에 있었는지를 판단하기 어렵게 만든다. “디모데가 석방되었다” — 바울의 동역자 디모데와 동일 인물이라면, 저자와 바울권 사이의 연결을 암시한다. 그러나 저자가 누구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서신은 미상의 저자가 보내는 익명의 문서로 남아 있다. 그것이 오히려 이 글이 특정 인물의 신학이 아니라, 공동체의 고백으로 읽히게 한다.

히브리서 저자에 대한 주요 학설 — 바울(전통적 견해이나 헬라어 문체가 바울 서신들과 현저히 다름), 바나바(초대 교부 테르툴리아누스), 아볼로(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추정 —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성경에 능통하고 웅변에 뛰어났다고 사도행전 18:24-28이 전한다), 브리스길라(19세기 신학자 아돌프 폰 하르낙 — 저자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가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주장), 누가, 클레멘트 등. 2세기의 오리게네스는 “누가 이 편지를 썼는지 하나님만 아신다”고 했다.


히브리서는 하늘의 성소로 들어가신 대제사장에 대한 서신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초대는 “진영 밖으로 나아가라”이다. 아이러니이자 복음의 핵심 — 하늘의 영광은 영문 밖 수치의 자리를 통과한다. 서신은 끝나지만, 그 초대는 열려 있다.